차가운 밤 세계문학의 숲 4
바진 지음, 김하림 옮김 / 시공사 / 201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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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 장미가 그려진 치마를 입은 강렬한 표지와는 다르게 제목은 차디찬 느낌을 고스란히 전해주듯 <차가운 밤>이라 쓰여있다. 많은 양의 독서를 하지도, 또한 한쪽으로 치우치는 편독. 그것들을 고쳐보려고도 하지만 왠지 고전은 어렵고 무겁고 답답한, 딱딱한 느낌일듯한 생각의 고정관념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늘 머릿속으로만 무수히 발버둥 치는듯하다. 이 모든것들은 無言의 압박을 하듯 선뜻 다른 분야의 책들을 쉽게 접어들지 못하게 한다. 그러던 중 우연히 나에게 한 권의 책의 쥐어진다. 지극히 개인적인 취향일뿐인 이 표지 하나가 이 책을 읽게끔 만들었다. 처음으로 아니 내 생애 몇권 안될지도 모르는 내가 읽은 고전 중 한 권이 되지 않을까 싶기도 하지만 말이다.

 

작가 바진은 1904년에 태어나 2005년에 생을 마감한 딱 백한살을 살아온 작가. 한세기도 살기 힘든 이 세상에 그의 오랜 삶이 말해주듯 바진은 자신의 삶에서 겪어온 중국의 소용돌이 같은 삶을 바탕으로 소설을 써 내려갔다. 이 소설은 고부갈등, 그리고 그들의 고달픈 삶들을 대변하듯 한 한 가정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바탕으로 흐르기 시작한다. 우리나라에서도 오랜 옛시절에서나 볼수있을듯한 고부갈등은 중국 또한 다르지 않다는걸 보여준다. 이 책에 등장하는 주인공이라 할수 있는 세사람. 왕원쉬안과 그의 아내인 청수성, 그리고 시어머니가 등장한다. 세사람을 중심으로 모든 이야기들은 끊임없이 진행된다. 주인공 왕원쉬안과 청수성은 대학시절에 만나 열정적인 지식인이였지만 그들은 정식 혼례를 치루지 않고 14년이란 긴 시간을 아들을 낳고 지낸다. 하지만 전쟁이 일어나고 그들은 하루하루 연명하는데 급급한 초라하고 처량한 모습을 보여준다. 하루하루 먹고 살기도 힘든 형편에 아들을 귀족학교에 보내며 은행에서 근무하는 며느리를 보며 늘 그녀가 못마땅하고 불만스럽다. 고부갈등이 끊이지 않는 두 사람 사이에 왕원쉬안이 있다. 그는 고학력의 지식인이였지만 이제는 출판사에서 교정일을 보며 변변치 못한 월급으로 가정을 이끌어가는 무능한 남편이고 아들이고 가장일 뿐이다. 그는우유부단하고 안일한, 소심하기도 해서 아내와 어머니 사이에서 떠도는 방랑자처럼 아무런 해결책을 주지 못한다. 왕원쉬안은 아내가 어머니와의 갈등으로 집을 나갈까 늘 노심초사하며 늘 긴장속과 스트레스 속에 살고있다.그러던중 왕원쉬안은 폐결핵에 걸리고 점점 기력을 잃어가며 점차 삶의 희망이 사라진다. 그런 그의 곁에서  아내 수성 또한 이 불안한 가정속에서 자신의 앞날이 불안하기만 하다.

 

"당신이 이렇게 떠나면 나는 마음을 놓을 수가 없어요. 당신은 여기서 잘 지낼 수가 없어요" 그의 말에 그녀는 다른 일이 떠올랐다. 갑자기 떠올라서 그녀도 어쩔수가 없었다. 울고 싶었으나 애써 참았다. 따뜻함이라고는 하나 없는 집. 선량하나 유약하고 병든 남편, 극히 이기적이고 완고하며 보수적인 어머니, 사움과 질시, 적막과 빈곤, 전쟁 중에 사라진 청춘, 자신이 추구했으나 날아가 버린 행복, 어두운 앞날, 이 모든 것이 그녀 가슴속에서 파도처럼 용솟음쳤다 (152쪽) 아내가 느낀 가정이라는것이 온통 짙은 어둠속을 걷는 것과 같다면, 나 또한 이런 미칠듯한 이곳에서 벗어나려 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아내 수성은 시어머니와 자신의 남편에게 늘 최선이였다. 넉넉치 못한 남편의 월급때문에 늘 집안의 가장 역할은 수성의 몫이었다. 그런 그녀를 어찌 미워할수 있느냔 말이다.

 

"흥! 나와 비교를 하다니! 넌 내 아들의 정부일 뿐이야. 나는 정식으로 혼인을 해서 이 집안에 들어왔다." 이 모습을 보는 그의 마음은 심란하기만 했다. '두 사람은 도대체 왜 끊임없이 다투기만 할까? 가족도 몇 안되는데 왜 화목하게 지내지 못하는 것일까? 왜 내가 사랑하는 두 여인은 서로 공격하고 물고 싸우며 원수처럼 지내는 것일까?'이 오래된 문제가 그를 괴롭혔다. '사랑스러운 언어들은 어디로 사라졌단 말인가! 오직 증오와 경멸의 눈빛만 가득하고, 나는 안중에도 없군. 이 싸움은 언제까지 계속될 것인가. 언제가 되어야 비로소 휴식을 얻을 수 있을까.' (184쪽)시어머니는 며느리에게 떳떳히 내세울 것은 오로지 정식 혼인으로 집안 사람이 되었다는 것 뿐이다. 정식 혼례없이 살고있는 며느리에게 어찌 그리 비수같은 말을 할수 있는가! 그 두사람의 끝없는 분쟁을 보며 왕원쉬안의 내면이 울부짖음이 그대로 느껴진다.

 

결국 이 소설의 세 사람의 결말은 어둡고 우울하다. 각자의 삶에 ,각자의 이야기가 그대로 베어 나오는 소설이다. 그래서 누구 한사람의 편이 되어주기도, 누구를 원망하기도 참 애매함이 느껴진다. 그들 각자의 내면의 모든 이야기들을 읽으며 나는 그들의 갈등이 빚어낸 참극이 아닐까 생각이 든다. 작가 바진은 이렇게 말한다. "나는 세 명의 주인공을 모두 동정하지만, 그러나 또한 그들 모두를 비판한다" 아마 바진 또한 각 주인공의 입장에서는 그들을 모두 이해할수있지만, 가정을 파탄과 파멸로 이끌고간 이해와 소통이 없었던 그들을 비판했을지도 모른다. 아마 이것이 내가 느낀 것과 마찬가지인 것이다. 이들의 갈등과 다툼은 결국1940년대 불공평한 사회와 전쟁으로 왕원쉬안의 가정처럼 평범한 그들의 안정적 삶을 지켜주지 못해서 이다. 하지만 지금의 우리 사회는 어떠한가? 그때와는 비교도 할수 없을만큼 발전이 있고, 풍요로워 졌지만 아직도 불평등한 사회는 여전히 남아있고, 어려운 삶을 영위해가는 그들은 여전히 지켜주지 못하고 있다. 여전히 현재에도 고부갈등은 남아있고, 이해하지 못하고 이해할수 없는 그들은 아직도 수없이 그들만의 전쟁을 시작하고 있다. 책 제목이 말해주듯 읽는내내 싸늘한 냉기가 책 속속들이 차오르듯 한기가 느껴지는듯 하다. 씁쓸함과 허탈함과 허무감이 베어나오기만 할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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