널 떠나지 않았더라면
티에리 코엔 지음, 이세진 옮김 / 밝은세상 / 2010년 7월
평점 :
절판


왠지 불편할듯한 느낌의 책, 표지, 심상치 않아 보이는 책 한권, 붉은 색의 상의를 입고 한손에는 찢긴 종이와 컵을 들고있는 소년, 책에서부터 묘한 느낌이 밀려온다. 도대체 어떤 일들이 , 어떤 이야기가 책 속을 가득 매우고 있을지, 감히 생각해 하고 싶어지지 않는다. 책을 펼치기도 전에 불편한 마음을 느끼고 싶지 않다. 하지만 왠지 강렬하게 내 마음을 끌어 당기는 책이다.
 
책의 첫 페이지를 넘기고, 두번째 장을 넘겨도 차례 목록이 보이지 않는다. 곧바로 프롤로그로 시작하더니, '다니엘' 이라는 큰 글씨의 소제목을 시작으로 이야기를 이끌어 간다. 다니엘의 일인칭 주인공 시점으로 이야기를 시작하다가, 갑자기 다른 인물의 이름이 불쑥 나온다 이번엔 '장' 이라는 인물이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이렇게 스토리는 '다니엘'과 '장' 이라는 인물이 번갈아 가며 이야기를 이끌어 간다. 하지만 두 사람이 관계가 어떻게 되는건지, 연관성이 무엇인지 알수가 없다. 다니엘의 이야기에서는 그의 과거와 현재를 계속 번갈아 가며 이야기를 해준다.
 
다니엘은 폭탄 테러로 첫째 아들 '제롬'을 잃는다. 그로 인해 행복한 가족들을 일순간 어두운 그늘진 , 생기와 웃음이 사라진채 모든 것이 변해버렸다. 아름다웠던 다니엘의 아내 '베티'는 웃음을 잃었고, 어린 둘째 아들 피에르는 아빠와 엄마,어느 쪽에도 사랑을 못느끼고 두 사람 사이에서 방황한다. 다니엘은 자신이 아들을 데리러 가지 않음에 , 그 잘못으로 자신 때문에 아들을 잃었다는 죄책감에 ,  그리고 자신의 아들을 죽음으로 몰아간 테러범들에게 분노를 느낀다. 그리고 테러를 사주했을 유력한 인물이 호화롭게 버젓이 범의 재판도 받지 않고, 생활하고 있음에 분노를 참지 못하고, 아들의 복수와 자신의 죽음을 각오하고 천천히 하나씩 준비를 해나간다.
 

제롬이 폭탄테러에 갈가리 찢겨진 그날, 나는 정체성을 잃었다. 이성도 잃었다. 다른 어떤 일도 내 관심을 끌지 못한다 _ p 57

 
아들을 잃은 아빠의 심경은 어떨지 감히 나 스스로는 상상할수가 없다. 난 아직 미혼이기에 더욱 자식을 가진,그리고 자식에 대한 사랑이 어느정도일지 지례짐작도 되지 않는다. 책의 중반까지 읽어가면서 되도록이면 다니엘의 감정으로 다니엘의 마음으로 읽어가려 노력했다. 다니엘이 표현 그대로 정말 이런 감정이고 이런 기분이고 , 이런 분노일까? 하며 끝없이 책속을 파고들려고 노력했지만, 전혀 나에게는 단 1%로의 감정도 전달되지 않는듯 하다. 그냥 막연하게 자식을 잃는다는건 아마, 정말 이런 기분일꺼야. 하면서 무심히 책 페이지를 한장 한장 넘겨 나갔다.
 
책의 반 정도를 읽었음에도 도저히 장과 다니엘의 연관성을 찾지 못하고, 도대체 서로 다른 이야기를 하고 있는 두 사람은 도대체 어떤 관계인건지, 왜 계속 두 사람이 이야기를 번갈아 가며 들려주는지 머릿속의 의문이 백개쯤 생길뿐, 책의 흐름을 그대로  따라가는 수밖에 방법이 없었다. 책의 마지막 100페이지쯤 남았을까? 점점 나의 의문은 나의 눈이 글씨들을 빠르게 읽어 나감으로써 하나둘씩 풀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다니엘이 아닌 다른 인물이 다니엘에 대한 이야기를 항변하듯 들려줄때 나도 모르게 울컥함과 동시에 눈시울이 붉어졌다. 스스로가 아닌 타인의 입을 통해 다니엘에 대한 깊은 슬픔이 고스란히 내게도 전해지는것 같았다. 처음에는 죽은 아들 제롬이 불쌍하다고 가벼운 안타까움만 느껴질 뿐이였는데 어느새 마지막 페이지로 점점 다가갈수록 아빠인 다니엘의 슬픔이 너무 크게 다가왔다.
 


언제부터 내가 복수의 히스테리 상태에 빠져들게 되었을까? 제롬이 죽던 날부터인가? 그 아이의 장례식을 치른 날부터 인가? (중략) 무엇이든 상관없다. 나는 내 정신착란을 그대로 수용했다. 미치는 것이 미치지 않는 것에 비해 못할 게 없지 않은가? (중략) 불의를 단호하게 비판하고 대항하기 보다는 살인자들에게 동정이나 보내는 미치광이들의 신경증에 비해 내 광기가 정당하지 못할 이유는 그 어디에도 없었다.


 


이 혼탁한 사회에서 광기는 어차피 도처에 비집고 들어서 있다. 사람들은 분별을 잃어버려 어느 부분을 이성적으로 바라보아야 하는지, 어느 부분에 인간적 연민의 여지를 두어야 하는지 알지 못했다. 적어도 내 분노가 그들의 미망(迷妄)보다 나쁘지 않단 말이다 _ p 241


 
이야기는 단순히 아들을 잃은 아빠의 슬픔과 분노만을 다루지 않았다. 정치 , 사회에 대한 비판, 그리고 왜곡된 진실을 알리는 대중 매체들에 대한 문제점들이 담겨져 있었다. 정치인들, 그들은 테러의 범죄를 진실되게 다루기보다는 자신들의 명예와 직위에 손상이 가지 않을까, 국민들의 시선들에만 급급하다. 왠지 우리의 정치 , 사회와 별반 다르지 않다는 생각에 씁쓸한 고소만 입가에 생길뿐,,, 기대를 했던 것보다 더 많은 일깨움과 많은 감정기복을 안겨준 책이다. 작가의 표현력, 어쩌면 옮긴이의 능력일지 모르나, 일인칭 주인공 시점 같지만, 다른 인물들의 감정이나 심리를 잘 표현해 주었던 것 같다. 생각치 않았던 반전, 그리도 또다른 반전에 나의 눈은 빠르게 이야기를 따라 가느라 쉴새없이 움직였다. 책을 덮고 나니, 그제서야 머릿속에서 다시한번 글자 하나하나, 장과 다니엘의 이야기들이 반복재생되듯, 퍼즐을 맞추듯 조각조각 떠오른다.
 
기대를 많이 한것도 아니지만, 그래도 전혀 생각없이 읽기 시작한 것도 아니다. 하지만 처음에는 조금은 독특한 형식으로 시작되는 이책의 이야기를 온전히 내 것으로 만들고 그 속으로 흡수되기에는 조금 시간이 걸리기도 했다. 초반에 적응을 못하고 책 페이지를 뒤적이며 허우적 거리기시작했지만, 어느새 나는 책 속의 다니엘이 되기도, 장이 되기도 하면서 그들과 같이 호흡하고 있었다. 내가 책의 마지막쯔음 읽으면서 감정에 복받쳐 울컥했던 것도, 작가의 뛰어난 표현력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왠지 참 오랫동안 여운이 남을 것 같은 한권의 책을 만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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