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 앞의 생 문예출판사 세계문학 (문예 세계문학선) 16
에밀 아자르 지음, 지정숙 옮김 / 문예출판사 / 199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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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 책 제목은 책 속에 들어 있는 내용을 총체적이고 함축적으로 표현한다. 그러나 이 책 <자기 앞의 생>은 아무리 긍정적인 방향에서 이해하려고 해도 왜 제목이 이래야 하는 지 알 수가 없다. 앞으로 남은 자기 앞의 생을 긍정적이고 행복하게 살자는 얘기인가? 그런 의미라면 아주 잘 지은 제목이긴 한데.

주인공 '모모'는 아랍 꼬마(?)다. 창녀들의 아이만 맡아서 길러주는 아줌마 밑에서 벌써 몇 년 째 살고 있다. 독일인에게 쫓기며 살았던 유태인 아줌마와 유색인종, 그것도 천대받는 아랍 꼬마 사이에는 알지 못할 유대감이 형성되어 있다. 그런 유대감을 바탕으로 피붙이 하나 없는 아줌마와 역시 아줌마가 아니곤 갈 곳이 없는 '모모'는 남몰래 깊은 애정도 키워가고 있다.

치매임이 분명한 아줌마는 가끔씩 정신을 놓곤 한다. 혼자 몸을 가누지 못한 지도 한참이고 치료받을 길도 없다. 그러나 정신만 돌아오면 병원에서 죽고 싶지 않다는 말을 되풀이하는데.....

배경이나 소재나 결코 밝고 희망적일 수가 없는 이야기임에도 불구하고 평범한 일상처럼 그려낸다. 어둡거나 궁상맞지 않고 전혀 동정심도 일지 않게 이성적이다. 어려운 현실을 딛고 꿋꿋하게 살아가는 소년의 이야기를 기대한다면 포기하시라. 그저 평범한 하루하루를 살아갈 뿐이고 우리가 나쁘다고 생각하는 그들의 일상도 사실은 별 거 아닌 보통의 삶임을 보여준다. 행복도 불행도 없는, 정말이지 너무도 평범한 날들의 이야기.

나의 잣대로, 혹은 세상의 잣대로 누군가의 인생을 행복하냐 불행하냐 재지 말라. 내 앞의 주어진 생이 어떠한 지는 오직 나만이 아는 법이다. 지 앞가림에 정신 없어야 할 '모모'가 행복한(?) 아줌마의 마지막 인생을 위해 발버둥치는 모습 - 거기에 해답이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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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네 시
아멜리 노통브 지음, 김남주 옮김 / 열린책들 / 200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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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아멜리 노통'의 마니아가 될란다. <이토록 아름다운 세 살>도 기절하는 줄 알았는데 이 책도 기절하시겠다. ㅋㅋ 재미나지만 결코 가볍지 않고, 철학적이나 어렵지 않으면서 언제나 기막힌(정말 기가 막혀서) 웃음을 터뜨리게 만든다.

정년 퇴직한 노부부가 전원주택으로 이사온다. 그들이 원한 것은 그저 조용한 일상. 전원 주택은 그들이 원하던대로 덜렁 이웃집 한 채만이 있는 외딴 곳. 드디어 행복 시작이다.

이러면 재미가 없지. 노부부의 행복은 사흘 이상 가면 안 된다. 그들이 그냥 그렇게 행복하면 이야기가 얼마나 따분하고 지루하겠는가. 그래서 옆집 노신사가 오후 네 시만 되면 방문한다.

여기서부터 영화 '조용한 가족'이 시작된다. ㅋㅋㅋ (생각만 해도 너무 웃겨) 노부부는 매일매일 방문하는 옆집 사람을 퇴치하기 위하야 정말로 머리 싸매고 고민한다. (이 부분에서 작가 '아멜리 노통'의 박식함이 지루하리 만치 드러난다. 또 주인공 각자의 캐릭터에 맞는 심리 묘사가 아주 끝내주지. 나아가 한 남자의 방문이 남편에게 가져다 주는 정신적 피폐함, 그로 인해 일어나는 자아분열의 - 거의 정신분열의 수준임 - 과정이 잘 드러난다.)

결국 노부부, 정확히 말해서 노부부의 남편이 옆집 신사도 해결하고 아내의 근심마저 덜어주는 묘안(?)을 찾아내는데, 이 또한 걸작이지 않을 수 없다. (역자는 '동화 -> 블랙코미디 -> 컬트'의 변화라고 표현했다. 이것이 정답!!) 가볍고 얇은 책이다. 부담없이 읽어보시라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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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만근은 이렇게 말했다
성석제 지음 / 창비 / 200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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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어쩌란 말인가. 이 삐져나오는 웃음을.
아~ 어쩌란 말인가. 이 가슴 찡한 감동을.
아~ 어쩌란 말인가. 터져 나오는 이 울분(?)을.

책 뒤의 해설에서 정호웅은 이렇게 말한다. '성석제의 문체는 빠르다. 접속사 없이 단문들을 숨가쁘게 이어 만들어내는 그 문체는 (중략) 다만 보여줄 뿐인데, 그래서 더욱 빠르게 내달린다. (중략) 그러면서도 성석제의 문체는 날카롭다.' 이 말이 정답이다. 작가 성석제의 문체는 빠르다. 질질 끌지 않고 묘사하지 않는다. 모든 상황을 설명할 따름이다. 속도감에 당황할 정도다. '이거 이렇게 빨리 읽어버려도 되는건가....'라는 생각이 들 만큼.

빠르면서 아주 재미있다. 공 들여서 썼다는 인상을 주지 않는다. 툭, 툭 농담 던지듯 내뱉는 말들이 평소의 언어습관을 그대로 보여주는 듯 하다. 그래서 아주 재미있다. 그의 가볍게 내던지듯 말하는 표현력은 언어의 마술사라 불러도 손색이 없을 정도.

빠르고 재미난 문체에 가시가 없다면 싱겁지 뭔가. 삼박자를 고루 갖춰 날카로운 풍자까지 가미했으니 '황만근은 이렇게 말했다' 마니아가 있다는 말이 거짓은 아니리라. 눈도 못 떼고 웃어대며 가슴 짠한 - 도저히 뭐라 정의할 수 없는 감정상태로 몰아가는 마력을 지닌 소설, 이것이 바로 '황만근은 이렇게 말했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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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뿔 - 이외수 우화상자(寓畵箱子)
이외수 지음 / 해냄 / 200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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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이외수는 기인이다. 그의 겉모습을 보면 '맞아, 맞아'라고 두 번 수긍하게 되며, 소설을 쓰기 위해 방에다 철창까지 쳤다는 일화를 알게 되면 '그럼 그렇지'라고 명명백백한 진실로 받아들인다. 그리고 추측한다. '그의 글은 분명히 어렵고 난해하면서 우울할 거야. 확실해.'그러나 그의 글은 어렵지 않다. 난해하지도 않다. 절대로 우울하지 않다. 오히려 터져 나오는 웃음을 어찌해야 좋을지 몰라하며 이외수라는 사람에 대해 심각한 고민(?)에 빠지게 된다. '이 사람이 이런 글을 쓸 리가 없는데....'이런 것을 작가의 내공이라 정의하고 싶다. 일단 독자들이 1차적으로 추측하는 무겁고 진지한 이야기에 대한 기대를 확실하게 배신한다. 가볍게, 읽기 편하게, 웃음이 나오도록 쓴다. 여기서 그냥 끝이 난다면 이외수라는 사람에게 열광할 이유가 없겠지. 웃음 뒤에 느껴지는 씁쓸함..... 그는 가장 적절한 단어 하나를 찾기 위해 온 밤을 지새우는 작가로 불려진다. 그런 그가 선택한 단어들이 이루는 문장은 슬렁슬렁 보며 넘어가도 가슴에 비수처럼 남는다. 이게 바로 그의 내공이다. '외뿔'은 이외수 내공서다. 삐뚤삐뚤 곱지 않은 선으로 그림까지 그려가며 - 그놈의 미국 물고기는 그림인데도 얼마나 미운지 모른다 - 잔소리(?)를 해댄다. 잔소리다 보니, 별 얘기도 아닌듯 페이지가 어찌나 잘 넘어가는지.... 반나절도 안 되서 모두 읽어버리지만 '제대로 살아야겠다'는 의지를 용솟음치게 만들지 뭔가. 분명 그의 내공이 듬뿍 담긴 내공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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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니문
요시모토 바나나 지음, 마야 막스 그림, 김난주 옮김 / 민음사 / 200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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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보스런 얘기지만 '정말 허니문이네'라며 놀라버렸다. ^^ 나 어릴 적에 신비스런(?) 상상에 들떠 꿈꿨던 옆집 아이와의 결혼과 황당하게 이어지는 결혼생활이 이 책 '허니문' 안에 담겨있다. 그리고 둘이 떠나는 여행, 우리네 절차로 따진다면 결혼식을 올리고 떠나야 하는 허니문을 이네들은 뒤죽박죽 순서없이 저지르고 있는 것이다. 나이는 어리지만 법적인 부부고 공식적(?)으로도 부부로 인정받았고 둘도 서로를 부부로 받아들이고 떠난 여행이니 허니문은 허니문이지.

그러나 나이 어린 청소년들이다. 기성세대들이 알고있는 - 현실에 찌든 결혼생활을 이야기하지 않는다. 피붙이처럼 늘 곁에 있던 사람과 너무도 자연스럽게, 그렇게 해야할 것만 같은 당위성까지 느끼며 한 결혼, 결혼은 했으나 전처럼 각자의 집에서 각자 살던대로 살아가는 퓨전식 결혼생활이 이어진다.그 결혼 위에 바나나가 즐겨쓰는 모티브, 죽음이 다시 등장한다. 아끼며 키우던 개의 죽음과 남편의 보호자인 할아버지의 죽음으로 평온하던 생활이 흔들리기 시작한다. 언제나 할아버지가 죽으면 어쩌나 전전긍긍하던 남편의 숨겨진 모습을 발견하게 되고 뒤이어 '나'의 죽음까지 사서 걱정하는 남편. 내가 경험했던 개(올리브)의 죽음에 대한 느낌과는 사뭇 다르다. 그는 내가 경험하지 못했던 아픔을 갖고 있다. 난 지금까지 그의 아픔, 생각, 취향 등을 모르고 지냈다. 우린 지나치게 서로에 대해 모르고 살았다.

사람의 삶이 늘 상처로만 얼룩질 수는 없다. 상처는 아물게 되고 상처입은 자리는 더욱 단단하게 만들어진다. 상처는 상처로 남게 되고. 나는 대부분의 날을 그 상처따윈 잊고 지낸다. 바나나는 유치한 풋내기 부부의 어처구니 없는 결혼생활을 통해 '상처'를 이야기한다. '상처'를 통해 얻는 것이 더 많다는 거, 아픔에만 빠져서 살 수는 없다고 이야기한다. 그냥 그렇게 견디며 살아가라고 이야기한다. 더 멋진 세상이 반드시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고 이야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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