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부인의 남자 치치스베오 - 18세기 이탈리아 귀족 계층의 성과 사랑 그리고 여성
로베르토 비조키 지음, 임동현 옮김 / 서해문집 / 2018년 10월
평점 :
절판


 

 

치치스베오.

처음 듣는 말이다.

18세기에 이탈리아 지역에 잠깐 등장했다 사라졌다는 관습.

어릴 적 가슴을 설레게 했던 영화 속 장면 - 화려한 드레스를 입은 파티 장면과 살롱의 모습이 눈앞에 펼쳐진다.

풍만한 가슴을 드러낸 귀부인과 그 옆을 지키던 사내.

그 사내가 귀부인의 남자 치치스베오였나보다. (라고 추측하며 책을 펼친다.)



1.

이 책은 연구서다.

남편이 아닌 존재면서 귀부인의 남자인 치치스베오는 퇴폐와 향락의 존재로 생각되기 쉽지만 절대 그렇지 않다는 주장.

그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한 근거를 드러내고 있다.

당시의 문헌과 문학작품을 통해 치치스베오가 담당했던 역할이 무엇이었는가를 밝히는데,

저자의 주장을 내세우고 문헌자료를 제시하거나, 문헌자료를 통해 당시 상황을 파악해가는 방식.

자료의 양도, 책의 분량도 상당하니 각 챕터별 주제가 무엇인지 중간중간 되새기며 읽길 권한다.


2.

모든 사회, 문화 현상은 단 하나의 이유로 생겨나거나 사라지지 않는다.

귀부인의 남자 치치스베오 역시 간단히 설명할 수 없는 목적을 가지고 등장한다.

세계사 지식이 조금 있다면 그 등장배경과 목적을 쉽게 이해하겠고,

세계사 지식이 없다면 18세기 전후의 유럽 역사를 배우게 될 것이다.

'이탈리아'의 치치스베오가 아니라 베니스, 제노바, 피렌체.... 의 치치스베오라 부르는 건 공화국 형태였기 때문이고,

재력가인 귀족은 유산상속으로 부를 나누기 싫어 결혼을 하지 않아 독신 풍조가 만연했다는 사실같은 것들을 말이다.


3.

'귀부인의 남자' 라 불렸지만 치치스베오는 모두 귀족이었고,

귀부인이 아랫사람처럼 부리는 개념이 아니라 치치스베오가 '갑' 의 위치를 잡은 것처럼 보인다.

치치스베오가 연락 없이 나타나지 않으면 귀부인은 두 달을 기다리고, 다시 또 두 달을 기다리고, 연락하고 또 두 달을 기다리고.......

말장난일 뿐, 결국은 계속 기다리며 기회를 줘야 한다.

공연엘 가거나 외출시에 귀부인은 마차에 치치스베오의 자리를 항상 비워둬야 하지만 치치스베오는 항상 동행해야 하는 건 아니다.

사교모임에 홀로 참석할 수 없는 귀부인은 바깥 출입을 위해 치치스베오가 꼭 필요했다.


4.

독신풍조가 만연한 사회에서 독신 귀족 남성이 귀부인과 함께 온종일 붙어 있다면 쾌락에 빠진 사회라 단정짓기 쉽지만,

그들은 이런 방식으로 그들만의 귀족사회를 단단하게 유지했다.

남편과 가족 모두가 인정하는 치치스베오라는 존재를 통해 귀부인이 불륜에 빠지지 않게 통제(?)도 가능했고,

가문의 재산도 지켜낼 수 있었던 것이다.

사회, 문화적 산물이었던 귀부인의 남자 치치스베오는 시민혁명으로 귀족계급이 사라지면서 존재의 이유가 없어진다.


5.

이렇게 색칠 많이 하며 읽은 책도 처음이다.

레포트 제출하는 맘으로 읽으며 최대한 내 것으로 소화하기 위해 애썼는데 제대로 이해했는가 모르겠군. ㅡㅡ;;

책의 저자보다 역자에게 박수를 보내고 싶다.

생소한 분야의 연구서를, 그것도 500쪽이 넘는 긴긴 이야기를, 불편함 없이 읽을 수 있도록 써낸 능력과 노력이 돋보인다.


6.

'낭만' 같은 건 찾기 힘들었던 시대, 정략결혼으로 맺어진 부부.

정숙한 아내이길 요구받고, 남편이 아닌 치치스베오라는 존재와 사교모임을 통해 귀족사회를 떠받치는 귀부인들.

세계사 교과서를 통해 절대왕정 - 계몽주의 - 시민혁명으로 이어지는 정치 사건만이 아니라

당시의  사회모습을 깊이 있게 들여다볼 수 있었던, 귀부인의 남자 치치스베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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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울 속 외딴 성
츠지무라 미즈키 지음, 서혜영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8년 8월
평점 :
품절


 

 

최고의 책을 만났다.

후반부에 오타만 없었으면 인생 최고의 책이 될 뻔 했는데.

오타때문에 급브레이크가 걸려가지고......... (오타 잘 보는 내 눈을 탓하자. ㅠㅠ)


리뷰가 너무 좋다고 칭찬받는 건 대부분 내가 좋아하지 않는 책이다.

감정이 싹 빠진 상태에서 덤덤하고 침착하게 리뷰를 쓰니 글이 좋아지는 모양이다.

내가 무지막지하게 좋았던 책은 감정과잉의 상태로 리뷰를 쓰게 되서 별로인 모양.

그래서 미리 밝히고 시작.

거울 속 외딴 성!!!

진짜진짜 좋아서 소장해야 한다고 동네방네 외치고픈 책이닷!!!!!



 

입학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왕따를 당하는 중학교 1학년 여학생.

답답할 정도로 소심하다.

원래 소심해서 왕따를 당하게 된 것인지 왕따를 당해서 소심하게 된 것인지,

그냥 대충 넘어가도 될 말 한 마디, 행동 하나가 없다.

그렇게 답답하게 학교도 가지 않고 집에서만 지내던 어느 날, 거울에서 빛이 나고 거울 안으로 들어가며 사건이 펼쳐진다.


거울 속 외딴 성에 모이는 7명의 아이들.

늑대 가면을 쓴 여자 아이의 인솔(?) 아래 정해진 기간까지 소원을 푸는 열쇠를 찾는 게임 아닌 게임의 시작.


633쪽에 달하는 장편이다.

633쪽 마지막 장까지 긴장의 끈을 놓지 마시라.

후반부로 갈수록 탄탄해지는 구성은 '이것이 작가지!!!' 라는 감탄을 절로 부른다.

고전처럼 내용을 곱씹고 책이 던지는 화두를 생각할 필요 없이

저자가 이끄는대로 따르기만 하면 감동이 밀려오는 친절함이 있으니

페이지 수에 당황하지 않아도 된다. ^^


7명의 아이들이 거울 밖 세상에서 왜 만나지 못하는지는 금방 눈치챘다.

비슷한 영화나 이야기들이 꽤 있어서 추리소설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쉽게 알아챌 수 있겠으나

여타의 미스터리 작품과 달리 그건 중요한 것이 아니다.

그들이 서로에게 힘이 되어주는 과정, 거울 속 외딴 성을 벗어나 자신만의 세상으로 돌아가는 과정이 눈물겹고 따듯하다.

나는 두 번이나 울었음. ㅠㅠ


세상을 보는 작가의 긍정적인 시선이 참 좋구나.

누군가는 어른이 되는 일 자체도 큰 용기가 필요하겠다는 깨달음을 얻고,

나도 좋은 어른이 되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만들었던, 거울 속 외딴 성.


좋은 책을 만나면 한동안은 다른 책을 잡을 수가 없다.

긴 여운으로 몇 날을 허우적대며 보냈다.

누구에게나 강력 추천, 거울 속 외딴 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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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모든 것을 만든 기막힌 우연들 - 우주.지구.생명.인류에 관한 빅 히스토리
월터 앨버레즈 지음, 이강환.이정은 옮김 / arte(아르테) / 201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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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기대를 좀 했다.

융합이든 통섭이든 복합이든 - 이름이야 뭐라고 부르든,

여러 학문과 정보와 지식을 서로 엮어내는 이야기의 재미를 알기에, 어쩔 수 없이 기대감이 생겨났다.

더구나 지질학자가 바라보는 세상과 세상의 역사라니.

처음 접하는 분야다.


'빅 히스토리'라 이름 지은 모든 것의 역사.

지구가 태초에 생겨난 역사.

공룡이 사라지게 된 역사.

문명이 생기고 인류가 생긴 역사.

큰 카테고리로 묶이는 역사를 넘어 포르투갈과 스페인에 의한 신항로 개척을 지도가 만들어지는 과정으로 보는 역사.

사람의 몸 역시 생명 역사의 기록으로 본다.

이 모든 것은 알게 모르게 서로 이어져 있고, 이 모든 것을 만든 기막힌 우연들을 알려주는 책.


"나" 라는 존재가 세상에 나타나기 위해 정자와 난자가 만나 어마어마한 확률을 뚫었다는 것.

그것을 저자는 '우연'이라 말하고 나는 '필연'이라 말한다.

지극히 감정적인데다, 하나씩 따지기보단 여러 개 묶어서 두루뭉술 넘어가는 나에겐 거리감이 느껴졌던 빅 히스토리.


책을 보는 내내 교수님의 강의를 듣는 기분이었다.

그냥 말로만 하는 강의가 아니라 반드시 영상을 동반한 강의.

교수님은 영상을 바라보며 프리젠테이션하는 것만 같은데 그 영상이 눈에 보이지 않으니 답답한 느낌이랄까?

기본적인 정보와 지식을 갖췄다는 가정 하에 글이 진행되서 내가 모르는 생소한 분야는 큰 감흥없이 페이지만 넘어간다.

나의 소양이 아직도 많이 부족한 것인가.........


과학 분야를 좀 더 챙겨서 봐야겠단 결심을 남긴, 이 모든 것을 만든 기막힌 우연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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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것도 안 해도 아무렇지 않구나
김신회 지음 / 놀 / 201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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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노보노처럼 살다니 다행이야'의 작가 김신회의 신작이다.

전작이 너무 좋았어서 일부러 챙겨 읽는 작가의 에세이.

이번엔 '아무것도 안 해도 아무렇지 않구나' 로 돌아오시었다.


원래 세상이 그렇지.

아무것도 안 해도 아무렇지 않고,

내가 없어져도 눈 하나 꿈쩍하지 않고 잘 돌아가는 거지.

세상에겐 너무도 하찮은 '나' 의 소소한  깨달음의 시간을 담은 이야기.


김신회 자신이 아무것도 안 할 때의 이야기를 써서 그런 것일까?

웃음기가 싹 빠지고 진지하다.

타의 (내 의도가 아니라면 천재지변도 타의라고, 내가 정의내림)에 의해 일없이 쉬게 된 상태.

바쁘게 살았던 사람은 안다.

갑자기 시간이 넘쳐나면 맘을 잡을 수 없어 허둥대고, 허둥대는 나를 보며 심난해진다는 것을.

생산적인 일을 해내지 못하는 내가 한없이 초라해보이니 예민해지는 순간,

인간관계도 하나씩 삐그덕거리기 시작하는 총체적 난국의 시기.

그런 시간을 담고 있다.


인생의 교훈을 전달하지 않는다.

내가 이렇게 극복했으니 너도 해보라고 말하지도 않는다.

그래도 앞으로 살아갈 날이 많으니 희망을 갖고 다시 도전하자고, 나 자신을 사랑하라고 노래하지도 않는다.

담담하게 하루의 삶을 쓰고 흘러가는 생각을 잡아둔다.

그렇게 나이 먹어가고

세상과 주변 사람을 받아들이는 소소한 이야기.



- 완벽주의의 가장 큰 폐해는 사람을 소진시키는 것. (47쪽)

- 상대방을 생각해서 베푼 호의는 결국 본전 생각을 몰고 온다. (67쪽)

- 마음에 여유가 없으면 귀가 닫힌다. (140쪽)

- 정체성은 우겨서 얻게 되는 것이 아니다. 말하지 않아도 묻어나는 것이다. (204쪽)

- 마음은 액체다. 가고 싶은 대로 흐른다. (208쪽)




내가 좋아하는 자조적 웃음 코드가 빠져서 섭섭하기 짝이 없었던, 아무것도 안 해도 아무렇지 않구나.

다음엔 발랄하게 스스로를 디스하는 모습으로 돌아와 주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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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정록 - 조선군 사령관 신류의 흑룡강원정 참전기 서해문집 오래된책방 22
신류 지음, 계승범 옮김 / 서해문집 / 201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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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정록.

처음 듣는다.

흑령강 원정 참전기라는데 흑룡강 원정은 무엇이더냐.

내용은 생소한데 책 표지는 익숙하다.

소장중인 징비록과 같은 출판사.

의도치 않게 나의 책꽂이는 자꾸 전집화 되어간다. ㅎㅎㅎㅎ


흑룡강원정 참전기라는 북정록은 책을 펼쳐봐야 낯선 이야기가 아니라는 걸 알 수 있다.

이미 구닥다리가 되버린 내게 익숙한 '나선정벌'.

나선정벌이라고 쓰인 것을 확인하는 순간 '아~ 그거!!!' 라며 무릎을 친다.

청나라가 파병을 요청해 조선 군대가 러시아를 정벌하러 나선 기록.


책은 굉장히 얇다.

역사 기록물임에도 불구하고 앉은 자리에서 무리 없이 다 읽을 정도의 분량이고 가독성 또한 좋다.

북정록 본편에 들어가기 앞서 옮긴이가 쓴 '북정록에 대하여' 에 이미 밝힌 것처럼

중고등학생도 충분히 읽을 수 있도록 매끄러운 문장에 감탄할 정도.


내가 감동에 감동을 더해 등줄기를 타고 소름이 돋는 경험을 하게 만든 부분이 바로 "북정록에 대하여".

옮긴이 계승범 님이 쓴 글이다.

역사를 말랑말랑하게 만들어 팬시화시킨 현 세태를 경계하며 1차 사료의 중요성을 강조하는데,

1차 사료를 통해 우리가 얻을 수 있는 것이 무엇이고 왜 그것이 중요한가 하신 말씀에 고개를 격하게 끄덕끄덕.

200 % 공감할 수 있었다.


내가 몰랐던 것을 배우는 기쁨,

부유하며 떠도는 나의 잡다한 지식이 한 꼬치에 꿰듯 정리될 때의 희열,

귀에 쏙쏙 박힐듯 논리정연하고 설득력 있는 문장과의 만남.

결국 새벽까지 앉아 완독하고 만다.​

 


북정록 본편이 시작되자마자 웃음이 터진다.

초반엔 날짜와 날씨만 한가득. ㅎㅎㅎㅎ

전쟁통에 이런 기록을 남기신 '신류'는 여러 모로 매력적인 인물이다.

자신의 욕심때문에 적군 배에 불을 지르지 못하게 해 사상자를 늘어나게 하는 청나라 대장을 보며,

결국 죽을 수밖에 없는 아픈 환자를 전쟁터로 내보낸 관리를 보며,

사망한 병사, 추위에 떠는 병사를 보며,

군량미는 내어주지 않고 본국에서 가져오라, 전투도 없는데 돌아가지 못하게 붙잡아 두는 행태를 보며,

그가 감내하는 분노와 애달픔이 고스란히 전해진다.

 


약소국의 비애라 여기며 넘어가지지 않는 내 조국의 역사.

씁쓸함이 한 보따리.

신류라는 장수와 계승범이라는 사학자와 북정록이라는 책을 알게 된 기쁨 한 보따리.

좋은 일과 나쁜 일은 함께 온다더니 북정록도 둘을 함께 데려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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