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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남자네 집
박완서 지음 / 현대문학 / 2004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그 남자네 집, 그 여자네 집...
누군들 아련한 옛 추억이 없을쏘냐.
어느 날 학교 가는 길에 그애를 보았다. 버스를 기다리고 있는 듯 버스 정류장에 서 있었다. 나는 당시 자전거를 타고 통학했기 때문에 그애를 알아본 시간은 그야말로 찰나였다. 그 다음날 혹시나 했는데 또 그애를 보았다. 같은 장소 같은 시간이었다. 그 다음날은 시간 계산을 하고 집에서 나와 정류장에 못 미쳐 자전거에서 내려 끌고 갔다.
짧은 단발의 앞머리 한쪽에 핀을 꽂고 찬바람에 코가 빨갛게 되어 버스를 기다리고 있는 그애의 옆모습이 왜 그리도 청순해보였을까. 옆모습을 본 것만으로도 사춘기 여드름투성이의 가슴은 하루 종일 들떠 있었다. 비록 옆모습만 보았지만 국민학교 동창이었던 그애의 얼굴은 사방의 각도에서 입체적으로 만들어졌다.
그뒤로도 자주 등교 길에서 그애를 볼 수 있었다. 여전히 그 버스 정류장에 못 미쳐 자전거에서 내렸고, 또 늘 그렇듯 힐끔거리며 그애의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행인의 역할을 충실히 했다. 행인 1, 그리고 어제 그 행인 1.
그애가 사는 구역을 알고 있었다. 그 근처를 서성거려보면 그애가 사는 집도 기억해낼 수 있을 것 같았다. 어떻게 알고 있는지는 나도 모른다. 예전에 그애를 따라갔거나, 그 근처에 사는 친구 녀석이 가르쳐주었는지 확실하지 않다. 아무튼 나는 그애가 사는 집을 찾아낼 수 있을 것 같았다. 일요일 오후에 자전거를 타고 그 근처를 돌았다. 한가로운 휴일 오후 자전거를 타고 시간을 때우려는 한심한 청춘처럼 두리번거리며 말이다.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아 그애의 집이 구십오 퍼센트는 확실한 집 하나를 찍었다. 그리 넓지 않은 마당에는 수종을 모르겠는 큰 나무 한 그루가 있었고 담은 꽤나 높았다. 지붕은 삼각형이었고 햇볕이 잘 들지 않을 것 같은 방향을 하고 있었다. 대문 앞에 다가가 문패의 이름을 보았다. 그리고 나는 그 집의 주소를 알아냈다. 그러고 나서 페달을 굴려 한달음에 집으로 갔다. 레마르크의 『개선문』이나 도스토예프스키의 『까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을 무슨 사명감으로 읽어내던 문학도는 밤을 새워 세상에서 가장 진실된 편지를 썼다. 그리고 다음날 우체통 아가리에 편지를 반쯤 걸쳐놓고 영겁의 시간을 갈등했다. 이 무슨 짓이란 말인가...
그뒤로도 종종 등교 길에 그애의 뒤를 소리 없이 지나쳐갔고, 하교 길이나 일요일 오후에는 그애의 집 근처에서 자전거 배회를 일삼았으며, 두 통의 편지를 더 썼다.
그러나 답장을 받을 수는 없었다. 왜냐하면 보내는 이의 주소를 쓰지 않았으므로...
교실에 난로를 떼면서부터 자전거를 끌고 걸어가는 일은 너무 성가신 일이 되어버렸고, 시간을 계산하면서 부지런을 떨며 이부자리를 털고 일어나기엔 바깥의 추위가 너무 매서웠다. 기말고사가 다가오고 있었고 진실된 편지에 쓸 문구는 바닥이 났다.
괜히 무료함에 병이 나던 여드름투성이 시절 그렇게 그애는 행인2가 되어 나의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지나갔다. 누가 말했던가. 누군가를 사랑하는 것은 실은 그를 사랑하는 게 아니라 그를 사랑하는 자신의 감정을 사랑하는 것이라고.
박완서의 소설에도 최소한 이런 유치함이 줄기일 줄 알았다. 결혼을 전후한 평범한 여인의 살림살이가 반을 차지하리라고 어느 누가 『그 남자네 집』이라는 제목을 보고 상상하겠는가? ‘그 많던 거시기는 거시기했을까?’ 시리즈와 연결된 내용이 아닐까 여겼다. 자전적 소설의 연장으로서 말이다. 박완서의 편안한 글투로 첫사랑을 썼으니 진실된 편지에 써먹을 기가 막힌 문장을 발견할 거라 기대했건만...
그렇다고 나쁘다는 얘기는 아니다. 자전적 소설 쪽에 비중을 더 두었더라면 제목과 카피 때문에 가지게 된 기대감이 배신감으로 바뀌지는 않았을 거란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