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잡한 도시를 떠나 살고 있는 이들에게 이 작품집의 소설 속 주인공은 이해하기 어려운 대상일 것이다. 이 작품집은 한 해 동안 여러 지면에 실렸던 소설들 가운데 잘된 것들을 골라 묶어놓은 것일 터. 하지만 하나의 주제를 두고 제각각 다른 소재로 글을 지어낸 느낌이다. 도시 속에서 살아가는 현대인의 內外面을 파헤친 내용으로 모아진다. 砂上에 지어진 집에 살고 있는 듯 우리 현대인의 삶은 이렇듯 위태한 것이었나 싶을 정도이다. 죽음으로서의 火葬과 아름다움으로서의 化粧과 같이 모순은 늘 내 안에서 나를 괴롭히고 있다. 속도감에 못 이겨 따라간 일상의 길은 결국 공허함으로 드러나 갈등을 안겨준다. 사람과의 관계도, 특히나 사랑도 달디 달지만 결국 녹아버리는 사탕과 같다. 이러한 도저히 종잡을 수 없는 환경 속에서는 나 자신의 존재감마저 믿을 수 없게 되어버린다. 결국 남는 것은, 믿을 수 있는 것은 자신의 육체로부터 전달된 느낌일 수밖에 없는데, 이 또한 선명한 느낌이 아닐뿐더러 느낌 또한 외부로 만들어진 것일 수 있다는 의혹을 뿌리치지 못하는 게 비극이다. 나는 거대한 帳幕으로 둘러 싸여 있다. 일상이란 장막 속에 갇힌 존재는 그 구속 때문에 자신의 존재마저도 쉽사리 믿을 수 없다. 하물며 타인을 믿을 수 있을까. 타인 역시 나를 결정하는 거대한 장막의 일부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거대한 대중 속에 갇힌 익명성, 고립감, 고독감. 그로부터 벗어나려 발버둥치는 순간 너구리가 될 것이며, 인간의 外皮를 놓쳐버리는 순간 지금 가진 두려움에다가 낙오라는 형벌을 안게 될 것이다. 그럼에도 너구리가 되고자 한다면?이제는 희망을 읽고 싶다. 그렇지 못하면 매트릭스에 영원히 갇혀 自尊感을 상실한 채 날아가는 시간의 화살에 언제 靈魂이 실려 있게 될지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