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024  

 우엘벡은 주인공 제드의 생애와 작품 세계를 묘사하면서 자신이 구축한 미의식을 직접적으로 드러낸다. 그는 "그림에서 아름다움은 부차적인 문제"라고 설파한다. 그리고 과거의 위대한 화가들이 수백 년의 세월을 견디고 생존한 근본적인 이유는 "그들이 세계를 바라보는 시각을 혁신적이고도 일관되게 발전시켜 왔기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

p026 

...우엘벡의 소설을 읽으면 자연스럽게 형식의 균형미를 느끼게 된다. 주인공들의 삶이 혼란에 빠져 휘청댈수록 소설의 형식은 균형을 갖추게 되는 것이 보면 볼수록 놀랍다. 마치 놀이기구에서 내린 후, 유선형으로 끝없이 이어지는 철근 구조물을 바라볼 때와 유사하다고 할까? 롤러코스터란 탑승객의 흥분과 비명과는 상관없이 철저하게 과학적으로 설계된 기계장치이다. 롤러코스터의 과학적 설계의 진상을 알지 못해도 놀이기구를 즐길 수 있듯이 독자는 형식적 구조의 완결성에 상관없이 소설을 재밌게 읽을 수 있다. 이런 걸 과학에서는 추상화라고 한다고 들었다. 우엘벡은 이 '형식미를 구축'하는 데 탁월한 능력을 지닌 작가다.

p096

...주인공 사라와 찰스가 첫 키스를 하는 장면을 묘사하면서 작가는 그들의 사랑이 단순한 성적 욕망에서 비롯된 말초적인 자극이 아니라고 말한다. 그것은 당시 빅토리아 여왕 시대를 풍미한 낭만주의와 자연주의 그리고 새로운 시대를 예감한 모더니즘의 총합으로 빚어진 '모험과 죄악, 광기, 야수성 같은 금지된 모든 것에 대한 억제할 수 없는 욕망'이었다.

p115

 니체는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에서 세 가지 변신을 이야기하면서 인간 정신을 세 단계로 나누었다. "어떻게 해서 정신은 낙타가 되고, 낙타는 사자가 되며, 사자는 마침내 어린아이가 되는가." 니체의 아포리즘은 질 들뢰즈의 분석적인 해설을 들으면 분명해진다. 낙타는 사막에서 물건을 실어 나르는 동물이다. 이때 낙타의 등에 실린 물건은 한 인간이 자신이 속한 사회에서 물려받은 기성의 가치들, 교육, 도덕, 문화를 의미한다. 어느 날 사막에서 낙타는 이 짐들을 벗어던진다. 이 순간 낙타는 사라지고 인간의 정신은 사자로 변신한다. 사자란 곧 위대한 비판 정신이다. 사자는 우상 파괴를 감행하고 심지어는 자신이 짊어졌던 짐들을 짓밟으며 앞으로 나아간다. 모든 기존 가치들에 대한 전면적인 비판이 이루어진다. 그리고 니체는 말한다. 사자로 변신한 정신은 또 다른 혁명적 변화를 통해 나아가야만 한다. 그 변화의 종착점은 어린아이다. 어린아이가 되면 정신은 순수한 형태의 유희를 즐길 수 있고 동시에 새로운 가치에 대한 창조자가 될 수 있다.

p149

 ...에르노의 말처럼 우리는 조부모와 부모, 형제, 자매, 친구와 같은 운명이 되어 세상에서 사라질 것이다. 모든 과거의 장면은 사라지고 세계에는 낯설고 이질적인 새로운 미래이 형상만 남게 된다. 남은 것은 오직 한 인간의 망상과 기억뿐이다. 이 실패의 현장을 기록하는 것이 소설이다.

p150

 소설을 읽으면 허무하다고 말하는 사람들을 의외로 자주 만나게 된다. 그럴 때마다 나는 그들에게 되묻고 싶은 욕망을 억누른다. 당신은 이 허무한 세계에서 어떤 역할을 떠맡았느냐고, 단 한 번이라도 시대와 공동체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해 본 적이 있느냐고 반문하고 싶다. 소설을 읽는 행위는 이 문제를 정면으로 돌파하려는 적극적인 행동이다. 여성주의 문학은 이제 막 꽃을 피우기 시작했다. 나는 앞으로 남겨진 시간 동안 내 책장에 페미니즘 소설들이 들어찰 것을 예감한다. 해안으로 밀려드는 파도를 한 줌의 모래로 막을 수는 없다. 겉으로 드러난 세계에서는 평등주의의 이상이 물거품처럼 사라진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 꺾인 것은 개인의 의지일 뿐이지 실체적 진실은 아니다. 한국 문학에서도 프랑수아즈 사강도 도리스 레싱, 아니 에르노와 같은 걸출한 작가들이 등장해서 사람들의 가슴을 뜨겁게 달아오르게 하는 날이 반드시 올 것이다.

p191

 ...'낳다'라는 의미를 지닌 라틴어 지니어스는 '세상의 숨겨진 신비, 현실의 진짜 모습을 보여주고 신성을 우리가 엿볼 수 있게 해줄 수 있는 사람들'이다. 그런 의미에서 김시습은 천재였음이 틀림없다....

p212

 내 글을 모두 짧게 자르고 장식적인 요소들을 모두 없앤 다음, 묘사가 아니라 문장을 만들려고 한 후부터 글쓰기가 아주 멋진 일이 되었다. 하지만 그건 매우 어려운 일이었다.

- 어니스트 헤밍웨이, 래리 필립스 엮음.<헤밍웨이의 글쓰기> 이혜경 옮김. 스마트 비즈니스. 2014.33쪽 

p261

 ...인간은 나의 욕망이라는 한계선상에서만 타인의 욕망을 이해할 수 있을 뿐이다. 소설을 읽는다는 행위는 이 경계를 벗어나 넓고 숨겨진 세계의 영토를 방문하는 모험이다. 비슷한 나이에 광고 모델을 닮은 귀여운 여자아이를 좋아해서 마음을 졸이던 평범한 소년과는 다른 인간이 우리 세계에는 함게 숨 쉬며 살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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