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58  

"너는 왜 사니?"

나는 대답하지 못했다. 나도 사는 이유를 알지 못했으니까. 그저 죽음을 선택하는 데도 용기가 필요하고, 나에게는 그런 용기조차 없었을 뿐이다. 지금은 조금이나마 알 것 같다. 태어나는 것도 죽는 것도 인간의 영역이 아니다. 어찌어찌 태어났으므로 우리는 어찌어찌 살아내야 한다. 고통이 더 많은 한 생을. 소설적 성취? 사회적 명예? 죽는 순간 아무 의미가 없음을 안다. 그런데도 내가 요즘 죽음을 생각하지 않는 것은 아직 살아있는 엄마 때문이고, 내가 없으면 오래 살아온 공간을 떠나야 할 나의 냥이들 때문이다. 나에게 마음 두고 있는 존재들을 슬프게 하지 않기 위해 나는 오늘도 꾸역꾸역 살아내는 것이다. 데이브에게는, 그의 엄마에게는, 그런 존재가 없었을지도...아니, 그런 존재가 있음에도 살아내기 어려운 섬세한 마음의 소유자였을지도...자기 손으로 죽음을 선택할 수밖에 없는 그 쓸쓸한 마음을 헤아리기 어려워 나는 말했다

 "마셔. 우리에게는 알코올이 있잖아. 알코올처럼 인생에 잘 어울리는 게 없어."

p67

 술은 스트레스를 지우고 신분을 지우고 저 자신의 한계도 지워, 원숭이가 사자의 대가리를 밟고 날아오르듯, 우리를 날아오르게 한다. 깨고 나면 또다시 비루한 현실이 기다리고 있을 뿐이지만 그러면 또 어떠한가. 잠시라도 해방되었는데! 잠시라도 흥겨웠는데!

p91

...인생은 참으로 아이러니하지 않은가? 나의 고통이 나의 능력을 만들었으니 말이다.

p138

...아버지의 결말이 내 취향에 더 걸맞다는 것을. 아버지 역시 나와 같은 마음이라는 것을. 참으로 다행 아닌가? 성공할 기회가 없어 타락할 기회도 없었다는 것은!

p259

...네가 가진 것을 갖지 못한 친구들의 마음을 좀 헤아리면 좋겠다고. 혼내는 거라고 생각했는지 울먹울먹하던 해맑은 친구는 그 뒤로 조금씩 변했다. 다른 사람의 마음도 조금은 헤아릴 줄 아는, 그러나 여전히 해맑은 사람으로. 그 해맑음이 참으로 어여뻤다. 그 친구를 만난 게 14,5년 전, 그 사이 우리는 가까운 친구가 되었다.

p302

...세월이 지날수록 깊어지는, 영 아닌 것 같다가 좋아지는, 그런 관계도 세상에는 있는 것이다. 위스키가 그러하듯이.

p311

...모든 글에는 누군가의 살아온 내력과 마음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학교 앞에서 몇 번 만난 원고를 주고받았을 뿐이지만 우리는 어떤 친구보다 서로의 속내를 잘 아는 친구였다.

p312

...내가 나를 배신하는 것, 그게 인생이지 뭐.

....대학생활의 낭만을 토로하던 친구는 자기관리 철저하게 한 덕에 전투적으로 보수적 세상과 맞짱을 뜨며 잘 살고 있는데 정신을 흐트러뜨리는 무엇도 하지 않을 거라던 재수생은 술꾼으로 전락했다. 풋풋했던 청춘을 떠올리며 둘이 한 참 웃었다.

 ....아무튼 자기 작품이 선생과 학생들에게 난도질을 당하면 스스로를 경멸하며 한 잔, 연인과 헤어지면 스스로를 위로하며 한 잔, 누군가 데모하다 잡혀가면 독재정권을 혓바닥으로 짓밟으며 한 잔, 뭐 그런 대학 시절을 보내며 술과 친해지기 시작했던 것 같다. 물론 핑계다. 어쩌면 나는 주류에 서 있고 싶었던 지극히 속물적인 사람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인생도 문학도 독고다이! 홀로 외롭게 가는 것이라 노상 떠들어댔지만 나는 늘 사람들 속에 있고 싶었던 것 같다.

p315

...우리 집 술자리에서 참으로 많은 발견이 있었다. 많은 친구가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한 상처를 드러내며 울고 자기를 넘어서기도 했다. 알고 보니 상처 없는 사람이 없었다. 우리에게 술은 자신의 상처는 물론 치졸한 바닥까지 드러낼 수 있게 하고, 그로 인해 사람과 사람의 사이를 친밀하게 좁혀주는, 일종의 기적이다. 술 없이 이토록 솔직할 수 있으면 얼마나 좋으랴. 나는 그만한 용기가 없어 술의 힘을 빌 뿐이다.

 ...일로 마시는 술은 술이 아니다. 자기로부터 해방되어 오롯이 자기로 돌아갈 수 있어야 진짜 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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