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39
...자기 자신의 마음은 스스로가 가장 잘 안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세상에서 가장 알기 어려운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p46
... 목숨이 위태로운 상황에서 죽음이 두려워 저항을 포기하기보다는 살아남아서 할 수 있는 방법을 찾을 수도 있ㅅ브니다. 하지만 그때 마음속 깊은 곳에서 저항을 포기하는 것이 편한 길이라는 생각에 자신의 신념마저 버린다면 그것이 바로 자신을 속이는 것입니다.
저는 그럴 때마다 몽테뉴의 말을 떠올립니다.
"내 이성은 굽히거나 꺾이지 않는다. 굽히거나 꺾이는 것은 내 무릎이다."
p54
"만약 일한다는 것은 인간의 생존의 대가가 아닌 인간이 살아가는 목적이라면 지금보다 한층 더 행복할 텐데."
즉 '살기 위해서 일한다' 혹은 '빵을 얻으려고 일한다'는 생각을 버리고, 살아 있는 한 삶의 목적이 일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라는 뜻입니다. 그러면 사리사욕에 사로잡히지도 않고 자금 문제로 곤경에 처하지도 않으며 모두 행복해질 것이라는 이야기입니다. 이처럼 보수를 따지지 않고 일하는 것 자체를 인생의 목적으로 여길 때 일하면서 진정으로 즐거워할 수 있습니다....
p58
...논다는 것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는 앞에서 잠간 언급한 '열중하는 상태'입니다. 해야 하는 일이나 필요에 쫓겨서 하는 일과는 달리 자기 뜻대로 장롭게 빠져들고 도취할 수 있는 것에 놀이의 본질이 있습니다. 필요에 쫓겨 하는 일이라도 처음에는 마지못해 시작했다가 점차 그것에 열중하게 되는 경우도 얼마든지 있씁니다. 그런 열정이 없다면 꾸준히 일을 해낼 수 없겠지요. 놀이 안에 숨어 있는 열정과 도취는 극도의 스트레스로 경직되어 있는 어깨의 힘을 빼주어 긴장을 풀어주는 힘이 있습니다. 그것이 놀이의 매력이라고 생각합니다.
p88
프랑스 사람들은 헤어질 때 "Ce n'est pas aDieu, mais au revoir(아 디외 가 아니라 오 르부아르 다)" 고 말하기도 합니다. '아 디외'나 '오 르부아르' 모두 헤어질 때 하는 인사이지만, '아 디외'는 다시는 만나지 못할 때 하는 작별 인사이고, '오 르부아르'는 또 만날 수 있을 때 하는 인사입니다. 따라서 평소에는 '아 디외' 보다 '오 르부아르'라는 인사를 더 많이 합니다.
p127
원인들을 한없이 거슬러 올라가다 보면 궁극적인 하나의 힘을 떠올리게 됩니다. 그 힘이 없었다면 궁극적인 원인도 없었을 것이고 세상의 모든 사건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입니다. 이는 그야말로 거대한 세계입니다. 물질적인 것과 정신적인 것이 모두 그 세계에 포함됩니다. 이것이 바로 운명입니다.
운명에서 여러 가지 문제가 파생됩니다. 예를 들어 '어떤 사건과 그 원인의 관계가 필연적인지 아닌지', '그 인과관계를 무언가로 끊을 수 있는지 없는지', '만약 끊을 수 없다면 인간이 자유라는 것은 어떤 의미가 있는지'등의 형이상학적 문제가 생겨나는 것이지요.
운명관은 시대에 따라 바뀌었습니다....
p132
...물살이 급한 강물에 빠지면 물살을 거슬러 헤엄치려고 해도 결국에는 한 걸음도 나아가지 못하고 지쳐 쓰러질 뿐입니다. 이럴 때는 물살의 흐름에 몸을 밭기는 수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어떻게 몸을 가눌 것인지를 생각하는 편이 좋을지도 모릅니다. 몸을 가누다 보면 강물 위를 흘러가는 와중에도 자유가 생겨납니다. 하지만 자유를 얻었다고 하더라도 자신은 물살에 떠내려가는 처지임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p170
사랑과 질투가 동전의 양면인 것처럼 사랑은 혼자서는 불가능한 특별한 감정입니다. 상대가 잇어야 사랑이 가능하며 상대에게 사랑의 마음을 전달하거나 전달받아야 비로소 사랑이 시작됩니다. 만약 사랑을 단순한 감정으로 생각한다면 커다란 착각입니다. 또한 사랑은 대가를 바라지 않는다는 생각도 커다란 착각입니다. 사랑의 감정에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어떤 교환 조건이 생깁니다. 사랑은 일방적인 것이 아니라 주고받는 감정이기 때문에 내가 사랑받는 만큼 사랑받고 싶고 인정받고 싶어집니다.
p173
라 로슈푸코는 질투와 선망을 이와는 약간 다르게 설명합니다. "질투는 자신의 것이라고 생각하는 대상을 지키려는 일에만 신경 쓴다. 하지만 선망은 남의 것을 노리는 격렬한 감정이다." ....
p184
...증오는 '그 어떤 것이 해로울 것이라는 지각으로부터 발생하며 해로운 것을 피하고자 하는 욕구'라고 말했습니다. 데카르트가 '미움도 병'이라는 단호한 정의를 내린 이유는 증오에 의해 일어나는 육체적 변화를 잘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의 말에 따르면 감정은 늘 신체에 반사적으로 나타난다고 합니다. ....
p231
10대는 소중한 시기입니다. 물론 20대와 30대도 소중합니다. 소중하지 않은 시기는 없습니다. 하지만 10대는 스스로 지금이 소중한 시기라는 것을 모르고 지나치기 십상이기 때문에 특별히 더 소중하게 생각하는 편이 좋습니다.
보통 10대는 공부를 하든 놀러 다니든 어떤 말을 하든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시기입니다. 따라서 10대야말로 자신의 기질을 이해하고 부분적으로 수정해나갈 적절한 시기라고 생각합니다.
p243
..." 결국 자연 안에서 인간은 무엇인가? 무한에 비해서는 무요, 무에 비해서는 하나의 전체이며, 양극단을 이해하기까지는 한없이 멀리 떨어져 있다....인간은 자신이 이끌려 나온 무도, 자신을 삼켜버리는 무한도 모두 볼 수 없다".... "인간의 일반적 조건은 변덕, 권태, 불안과 허영이다"...
p259
선행도 그것이 폐가 될지 안 될지 그것을 받아들이는 사람 입장에서 여러 각도로 생각한 끝에 실행해야 합니다. 망설인다거나 소극적이라고 여겨질 수도 있겠지만 함부로 행동했다가 의도와는 다른 결과가 나타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평소 쓸데없는 기대나 나쁜 의도를 품지 않는다면 그것이 차차 곁에 있는 사람에게도 전달되고, 거기서 신뢰가 생겨나 선의가 왜곡되지 않고 전달될 수 있습니다. 서로 신뢰함으로써 실행되기 어렵다고 생각되던 일이 현실에서 실행될 가능성을 조금씩 높여나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p322
...일기 안에서도 스스로 수정이 이루어지고, 내용에 자기변호가 개입합니다. 그것은 며칠 전의 일기, 기억하고 있는 과거에 정신적인 동요가 있었을 때의 일기를 다시 읽어보면 알 수 있습니다. 그것은 남을 향한 자기 변호가 아니라 자기 자신을 향한 자기변호입니다.
저는 제 자신을 좋게 꾸며서 일기에 적기도 했고 반대로 제 자신을 비하해서 적기도 했습니다. 때때로 아주 사소한 고민을 일기에 쓰게 되면 그 고민을 고민으로 생각하는 것이 재미있어서 고민을 제멋대로 부풀리고 미화한 적도 있었습니다. 결국 일기 속에 등장하는 저는 제가 만든 인물인 셈인데, 가끔 제가 만든 인물과 현실 속의 제가 같은 인물이라고 생각하기도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