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95
떼돈을 버는 것도 아니고, 그저 글을 써서 돈을 벌 수만 있으면 되는 삶.
그것이 스무 살의 내가 간절히 꿈꾸던 삶이었다.
p155
... 아무리 힘겨운 상황에서도 겨자씨만 한 행복이라도 찾아내는 것이 김종미와 M의 특기였다. 김종미와 M의 무한 긍정은 다소 대책 없는 측면이 있는 반면에 조하나와 나는 지독한 현실파에 가까웠다. 우리 넷의 관계가 10년 동안 별 탈 없이 지속될 수 있었던 것은 어쩌면 이런 밸런스 때문이 아닐까.
p221
어쩌면 사는 건 몰랐던 통증을 늘려가기도 하며, 그 통증에 익숙해지기도 하는 그런 것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다. 울적하기도, 담담하기도 한 생각이었다.
p239
감정의 경제성.
그것은 내가 이금희 선생님을 보면서 가장 자주 떠올렸던 키워드이기도 하다. 선생님은 모든 종류의 자극에 쉬이 연연하지 않는 사람이다. 선생님의 삶은 지나온 과거나 먼 미래에 있지 않았다. 지금 이 순간 내가 할 수 일에 최선을 다하며 지나간 일에 머무르지 않는다. 감정의 괴물인 나라면 족히 몇 달을 잡고 늘어질 만한 사건이 닥쳐도 이금희 선생님은 금세 훌훌 털어버리고 앞을 향해 걸어가는 사람이다. 지금 좋으면 미련 없이 모든 것을 내어주고 그러다 인연이 다 되면 또 후회 없이 앞으로 저벅저벅 걸어가는 삶. 미움과 슬픔뿐만 아니라 후회, 비뚤어진 애착과 같은 감정들도 선생님의 사전 속에는 들어갈 일이 없을 것만 같았다. 나는 이금희 선생님을 볼 때마다 세상만사에 통달해 언제나 웃고 있는 도인과 같은 모습이 겹치고는 했다.
p242
...그저 자연스럽게 즐기기만 하면 된다는 말에, 그리고 "진실한 반응을 보이는 데 작가님만큼 적합한 사람은 없다"는 말에 마음이 흔들렸다. 사람들의 삶을 들여다보고 그들의 발자취를 좇고, 마음속에 들어가보는 것은 그동안 내가 소설을 써온 과정과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p288
외적인 젊음과 내적인 열정을 유지하기 위해서 꾸준한 노력이 필요하듯, 관계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 나이가 들수록 애써 노력하지 않고서는 영원할 줄 알았던 관계도 쉬이 퇴색되기 마련이다. 우리를 단단히 묶어주는 결속력의 중심에는 조하나의 마음 씀씀이와 어디로 튈지 모르는 개성 강한 친구들을 하나로 묶으려는 부단한 노력이 있던 것 같다. 마치 아픈 고양이를 돌보는 것과 같은 그런 마음 말이다. 종미와 M 못지 않게 깨달음에 호들갑스러운 나는 새삼 모두에게, 심지어는 조하나에게도 조하나 같은 친구가 되어주고 싶다는 나답지 않은 기특한 생각을 했다.
세상에 영원한 건 없다지만, 이런 찰나의 노력들이 모여 결국 우리 인생을 구성하게 되는 게 아닐까? 나는 지금 이 순간의 반짝임이 곧 인생이라고 믿기로 했다.
p293
대문에 지금 이 순간에도 나는 내 일상의 장소들과 내 삶에 연루된 수많은 사람의 얼굴을 떠올리고 있다. 그들이 내게 주었던 어떤 따뜻함이나, 깨달음에 대해서도, 물음표와 느낌표, 말줄임표만이 가득한 내 삶에서 유일하게 쉼표를 가능하게 해주는 건 나의 친구들뿐이라는 생각도 든다. 쓸데없는 농담이나 하고 맛있는 음식이나 나눠 먹는 그런 존재들 말이다.
p297
...잘 다뤄진 불안은 내일을 대비하는 완벽한 방패일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