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300  

...부유층 중에서도 상위 계층으로 갈수록 자유 전문직은 점차 사라지지만 하위 계층으로 내려갈수록 그들의 비율은 증가한다. 따라서 전문직은 소득과 자산 모두에서 상위 1%보다는 상위 5%에서 더 큰 비율을 차지하는 것으로 나타난다.

p301 

 우리가 '불로소득 사회'로 회귀하고 있다는 우려는 19세기 초기에 고전 경제학자들이 표명했던 우려와 그다지 다르지 않은데, 바로 당시에 그들도 불로소득자들이 만연한 사회를 보고 있었기 때문이다. 또 돈으로 돈을 버는 금융 활동을 통한 부의 축적에 대한 우려는 중세, 심지어 그 이전부터 서구 사회에 팽배해 있던 문제다. 일반적으로 부유층이 사횡에서 차지하는 위치, 혹은 그들이 마땅히 가져야 하는 위치에 대한 문제는 서구 사회에서 늘 민감한 주제였으며 상당한 사회적 불안 요인이었다....

p312

 오레스메는 특정 공동체에서 개인이 소유할 수 있는 재산에 대해 법적 상한선을 두는 것이 적절하다고 여겼으며, 공익을 위해 마땅히 상속 규모를 제한해야 한다는 주장도 펼쳤다. 상속 상한선을 초과하는 자산은 같은 혈통의 다른 사람들에게 주거나, 몰수하거나, 적절한 법에 따라 다른 방식으로 분배하라는 내용이었다. 다시 말해, 오레스메는 사회 질서를 유지하기 위해 부의 재정적 재분배가 필요하다고 명백히 주장하고 있었다.  

p321

15세기 후반 유럽의 경제 상황을 노동자 계층과 하위 중산층의 극심한 빈곤이라는 관점에서 바라보면, 상인 게층이 만들어낸 교양 있고 세련된 자화상은 문화적.경제적 배타성을 달성하기 위한 사회적 절차의 표현이기도 했음을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사업가의 정신과 육체를 이상화하고, 영웅적 혹은 종교적으로 내세우는 것은 소외된 사람들 혹은 '착취당한 사람들'의 노동과 육체, 정신의 가치와 대가를 낮추고 문화적으로 대수롭지 않다는 무언의 신호를 보내는 것이다.


 중세 후기의 거대한 부의 등장으로 촉발된 문화적 변화 과정은 근대 초기까지 계속되었다. 실제로 사업가에 대한 종교적 의미 부여는 종교개혁과 함께 새로운 정점에 도달했다. 막스베서의 유명한 해석에 따르면, 종교개혁은 새로운 경제 윤리를 만들어내며 자본주의 정신의 등장을 촉진했다. 베버에 따르면 현대 자본주의는 합리성과 부의 축적 추구라는 전레 없는 결합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그는 이것이 종교개혁의 전반적 특징이기도 하지만, 프랑스 신학자 장 칼뱅의 추종자들에게서도 두드러지게 나타난다고 주장했다. 칼뱅의 예정설에 따르면 구원은 오직 은총으로만 얻어질 수 있고, 누가 구원받고 누가 저주받을지는 예정되어 있기 때문에 신자들은 자신이 선택된 자임을 증명하기 위해 물질적 성공을 추구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p328

 ...세금과 정부의 적절한 규모와 기능에 대해 각자가 어떻게 생각하든, 역사적 관점에서 보면 예외적인 시기에 필요한 기여를 회피하려 한다면 부유층은 상당한 부의 불평등을 정당화해온 역사적 역할을 근본적으로 거부하는 것이다. 이는 사회적 공분을 불러 일으키고 그들의 사회적 위치를 불확실하게 만든다는 점을 인식해야 한다.

p335

...실제로 구체제 사회는 본질적으로 계급 사회였지만 스스로를 '정의로운 사회'라고 인식했다. 다만 그들이 따랐던 정의의 기준은 현대의 '공정성'과는 거리가 멀다. 예를 들어, 미국 철학자 존 롤스의 주장에 따르면, 공정성은 기회의 평등처럼 어떠한 형태로든 평등을 전제로 한다. 반면 구체제 사회가 따랐던 정의의 기준은 '형평성'이었다. 형평성은 각자가 자신의 조건과 지위에 따라 마땅히 받아야 할 몫을 받는 분배 정의의 원칙을 의미하며, 모두가 똑같은 대우를 받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과거와 마찬가지로 오늘날에도 자신들이 부당한 대우를 당하고 있다고 믿을 경우 반란이나 저항의 움직임이 일어나기 마련이다. 그러나 주목할 점은 산업화 이전 사회에서는 순수하게 경제적인 이유만으로 반란이 일어나는 경우는 드물었다는 점이다. 이는 그러한 사회들이 상대적으로 높은 수준의 경제적 불평등을 문화적으로 더 잘 수용할 수 있었음을 보여준다. 그들이 받아들이기 어려웠던 것은, 기존에 그렇게까지 부자가 될 자격이 없다고 여겨졌던 사회 계층 내에서 부의 불평등이 생겨나는 상황이었다....

p369

...결국 재단은 책임을 지지 않고 투명하지 않은 구조를 유지하면서도 사회에 중요한 영향을 미칠 수 있고, 세제 혜택(대개 소득세 면제나 부가가치세 우대 혜택)형태로 공적 지원까지 받게 된다. 정치학자 롭 라이히에 따르면, 바로 이런 점 때문에 재단은 민주 사회에서 '제도적 이질성'을 갖게 되며, 그들이 민주주의를 해치는 것이 아니라 뒷받침하는 존재가 되기 위해서는 투명성을 높이는 등의 상당한 개혁이 필요하다.

p371

...공공 기관이 모든 시민에게 인간다운 생활 조건을 보장하지 못하고 민간의 기여에 의존하는 사회는 가장 부유한 구성원의 선의에 존속될 수밖에 없다. 그러나 그런 선의가 영구적이거나 대가를 바라지 않는다고 단정할 수 없다. 따라서 우리의 원래 질문으로 돌아가 답하자면, 사회 복지를 보장하기 위한 수단으로 기부보다는 과세가 더 바람직해 보인다. 이는 또한 현대 서구 사회에서 민주주의를 강화하기 위해서도 권장할 만하다. 사회학자 엘리자베스 클레멘스는 "위대한 미국 민주주의의 시작부터 기부를 받는 것은 의존과 부채 위험을 동반하기 때문에, 시민적 자선과 민주적 통치의 공존을 관리하는 것은 결코 간단하지 않으며, 기부는 평등과 개인의 자주성이라는 자유민주주의의 공약과 배치되는 권력 관계를 만들어낼 수 있다"고 지적했따. 대신 민주주의 사회는 유권자와 그들의 대표가 적합하다고 보는 수준의 과세 기준을 정하는 것이 합당하다. 이 경우, 부유층은 오직 법을 위반하지 않고 부과된 세금만 납부하면 된다. 기부로 인한 세금 혜택 역시 시민들이 선출한 대표들에 의해 도입된 것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웅대한 공적 기부의 개념을 되돌아 볼 때, 후원을 포함한 부유층의 다양한 기부가 정치 과정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고 추정하는 것은 지나치게 순진한 생각일 것이다.

p406

...간접세는 최소한의 사회적 품위를 유지하거나 아니면 단순히 생존하기 위해 소득을 다 써야 하는 계층에 늘 불리하게 작용했다.

 p412

 ...모든 사람과 마찬가지로, 부자의 선택과 선호는 개인적 신념과 이념에 의해 형성되므로, 그들이 반드시 자신을 더 부유하게 만들 정책을 추진할 것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다. 이는 자산이 보잘것없는 사람들 중에서도 많은 이들이 명백히 부유층에 유리한 선거 정책을 내세우는 정치 연합을 지지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p413

...흥미롭게도, 개인의 정치적 태도를 형성하는 데는 소득보다 재산이 더 큰 역할을 하며, 전반적으로 초부유층은 정치적으로 우파 또는 중도우파 입장을 나타낸다는 강력한 역사적 증거 또한 확인할 수 있다....21세기에 접어들며 이러한 격차는 상당히 줄어들었지만, 서로 다른 정치 진영에 막대한 자금이 유입되는 구조는 정치 체제에 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 많은 돈을 후원한 기부자의 의견이 일반 유권자의 의견보다 더 크게 반영될 수 있기 때문이다.

p415

 세금 회피 및 탈세는 마땅히 비난받아야 한다. 그러나 부유층의 도덕적 결함을 지적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들이 세금을 회피하려 하거나 세제 개편을 추진함으로써 실제로는 그들 자신의 사회적 지위를 스스로 약화시키고 있다는 점을 인식하는 것이다. 지금까지 살펴본 바와 같이, 서구 문화에서 부유층이 사회에 자리 잡을 수 있었던 것은 그들의 사유 재산이 공공의 이익에 도움이 된다고 인식되었기 때문이다. 즉, 자선이나 기부 때문이 아니라 공동체가 추가적인 자원을 필요로 할 때 기거이 거액의 세금을 납부함으로써 그들의 필요성을 입증한 것이다. 전쟁, 기근, 심각한 전염병과 같은 주요 위기 상황이 발생할 때마다 그들은 사회의 기대에 부응했다.

p462

 ...서구 역사에서 위기는 부유층에게 사적 자원을 공공의 이익으로 전환함으로써 자신들의 사회적 유용성을 입증할 기회를 제공했다. 그러나 코로나 19 팬데믹 기간에는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았고, 또 그 이전의 2008~2009년 대불황 때도 마찬가지였다. 이 때문에 부유층, 특히 초부유층 전체가 잘해야 '무임승차자', 최악의 경우에는 '폭리업자'로 간주될 위험이 생겨났다. 이것이 21세기의 패턴의 시작이라고 주장하기에는 아직 섣부른 판단일 수 있다. 그러나 위기 상황에 부유층이 더 많이 기여해야 한다는 뿌리 깊은 문화적 규범이 정말로 사회 전반에 존재한다면, 그리고 21세기 들어 다양한 형태의 위기가 빈번히 발생하고 있다면, '무심하고 냉담한 부자들' 머지 않아 사회적으로 받아들여지기 힘든 존재가 될 수도 있다.규범적인 판단을 내리는 것이 역사학자의 임무는 아니지만, 현재의 우려를 해결하기 위해 과거에서 얻을 수 잇는 것이 무엇인지 살피고 제공하는 것은 역사가의 책임이다.

p490

"내가 제시하는 명제는 서구의 기술 진보 폭발이 문화적 변화로 인해 가능했다는 것이다. '문화'는 자연 세계에 대한 태도를 변화시켜 직접적으로 그리고 '유용한 지식'의 축적과 확산을 자극하고 지원하는 제도를 만들고 육성함으로써 간접적으로 기술에 영향을 미쳤다.

p506

...물론 이것은 여러 중요한 변수들은 고려하지 않은 단순화된 모델이지만, 저출산과 인구 감소 자체가 부의 불평등에 미치는 영향력은 분명하게 드러낸다.

p507

"처칠의 협력과 안정화에 대한 비전은 상속된 부 대신 활동적 부에 대한 세금을 줄이는 것, 중산층 가정의 세금 부담을 줄이는 것 그리고 연금 확대에 의존했다."

p527

코로나 19가 흑사병처럼 '평등한 '전염병이 아니었다는 점이 여러 연구를 통해 입증되었다. 대신 코로나 19는 사망률뿐 아니라 '롱코비드' 같은 더 미묘하고 측정하기 어려운 증상들에서도 뚜렷한 사회경제적 격차를 드러냇다. 코로나 19는 흑사병처럼 많은 사람들을 죽이지 않았고, 그것은 분명 긍정적인 일이지만, 바로 그 점 때문에 실질 임금 상승, 소득 불평등 완화 또는 사회적 상향 이동성 증대 같은 결과를 기대 할 수 없었다. 오히려 그 반대였다. 이는 1918~1919년의 스페인 독감과 정확히 같은 결과로, 여러 팬데믹 중에서도 역학적으로 코로나 19 와 가장 유사한 사례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