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25  

...일반적으로는 겨울보다는 공기의 움직임이 활발해지는 여름에 훨씬 더 많은 터뷸런스가 발생하고, 유럽이나 미주로 향하는 비행보다는 적도의 근방을 통과해야만 하는 동남아 비행이나 대양주 비행일 때 더 많고 심한 터뷸런스에 맞닥뜨리게 된다.

p39

말로 상처를 받기 쉬운 환경에서는 당연하지만 따뜻한 말 한마디에 감동도 쉽게 받거든.

p42

 그렇다면 삶을 이루는 다양한 장면들도 언뜻 보면 모두 별개이지만, 품고 있는 목표가 같다면 결국은 하나의 이야기처럼 연결되지 않을까.

 거창한 꿈은 아닐지라도 일상에서 결코 놓을 수 없는 오랜 취미나 습관 같은 것들이 사람의 생각과 행동, 그리고 선택의 방향에 깊숙이 관여한다면 삶의 끝에는 비슷한 장면들로 편집된 결말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라 믿는다.  

p57

 하지만 그곳에 살지 못한다고 실패한 인생이 되는 건 아닌데, 어째서 우리는 정답이 아닌 오답을 고른 사람처럼 주눅이 든 표정으로 살아가는 걸까. 선배도 변해가듯이 나도 그렇지 않은 척할 뿐, 결국 이 거대한 흐름을 벗어날 수 없는 걸까.

 '선배, 우리가 저런 곳에 살기란 쉽지 않을 거야. 그렇지만 우리가 뭔가를 잘못한 건 아니잖아. 우리도 그들과는 상관없이 우리의 시간을 충실하게 살아내고 있는데.'

p69

 내가 날마다 거닐던 그 길이 그에게는 망설임과 결심이 필요한 세상에서 가장 멀고 험난한 길이었다.

 세상은 하나라고 배웄지만

 살아보니 세상은 사람만큼 많았다.

p73

 조심하며 걸어도 피할 수 없는 일도 있다. 직업에 대한 환상과 이면이 맞물리며 벗겨지는 일. 그것은 승무원뿐만 아닌 모든 직장인에게 서서히 찾아오는 관문 같은 것이 아닐까. 살아가면서 성장통이 찾아오는 시기가 정해져 있는 것인지 스무 살 서류상으로 어른이 되던 때 첫 번째 성장통이 찾아왔었다면, 이제는 사회생활을 시작하고 드디어 진정한 어른이 되었다고 방심할 때 비슷하지만 다른 얼굴을 한 두번째 성장통이 찾아온다. 예전에는 나를 채우기 위한 통증이었다면, 지금은 나를 비우기 위한 통증이라는 점이 커다란 차이랄까.

 사람들과 조직 생활을 한다는 건 혼자 글을 쓰는 일과는 엄연히 달랐다. '나는 원래 이런 사람이니 조금만 맞춰주세요.'라는 태도 대신, '나는 원래 이런 사람이지만, 그럼에도 맞춰볼게요'라는 태도를 익힐 수 밖에 없었다. 물론 개인의 개성과 역사를 모두 존중해 주는 곳이 있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지만, 그곳은 아마도 현실에는 존재하지 않는 유토피아가 아닐까. 글쓰기가 수풀이 무성한 야생의초원을 뛰어노는 일이라면, 조직 생활은 설계도를 따라 조성된 인공 정원에서의 산책에 비유할 수 있을까.

 나는 변화된 환경에 적응이 느렸다. 살아온 환경, 생각, 성격, 취향 모든 부분이 각기 다른 사람들이 모여 최대한의 시너지를 발휘하는 과정은 모두가 조금씩은 자신을 비워야만 하는 일이었다. 사회생활은 업무적인 협업이기도 하지만 사람 간의 존중과 배려이기도 하니까. 그것이 원활하게만 이뤄진다면 직장인들의 행복지수는 기하급수적으로 상승할 것일 테지만, 현실은 알다시피 그렇지 않다. 그 누구와도 함께 동료가 되어 얼굴을 맞대고 일해야 한다. 그리고 그 누구도 걸음이 느린 아이를 언제까지나 기다려주진 않는다. 느린 만큼 스스로 조금 더 빨리 걷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너무 지체되면 모두의 시야에서 내가 사라진다.

p97

 "가끔은 온갖 근사하고 반짝이는 것들에 흔들릴 때도 있겠지만, 그래도 다시 제자리로 돌아올 수 있다는 건 잘 살아가고 있다는 거예요. 지금으로도 괜찮고, 지금으로도 충분하니, 앞으로도 그렇게 살아요."

p106

밥벌이를 갖는 게 나쁜 게 아니라고.

우선 현실을 살아내야 꿈도 꿀 수 있다고.

지금이 아니라도 우회로는 얼마든지 있을 거라고.


그리고, 

지금 너는 이상과 꿈에 갇혀 아무것도 볼 수 없다고.


p150

 꿈이라는 건 무엇이길래 사람을 구석에서도 주눅이 들지 않게 만드는 걸까. 무엇이길래 남들의 가벼운 말에 흔들리지 않고, 고된 하루의 끝에 기어코 연필을 쥐게 하는 걸까. 어쩌면 좋아하는 일을 지켜내는 데 필요한 건 완벽하게 준비된 환경이나 뛰어난 성과가 아니었는지도 모른다. 자신이 처한 상황과 남들의 시선 같은 것은 아랑곳없이 그 일을 절대 멈추지 않는 것, 그 태도만이 그의 일상을 온전히 대변해 줄 수 있지 아닐까.


p168

 그런 모습을 지켜보다 보면 괜히 엄마라는 존재에 대한 생각이 떠나질 않는다. 낮에는 이렇게 고된 일을 하다가도 퇴근 후 집에 돌아가면 일터에서 무슨 일이 있었든 누군가의 아내이자, 또 누군가의 엄마로서 꿋꿋하게 삶을 살아간다는 것 자체로도 모두에게 박수받아 마땅한 일이 아닐까.


p186

 일이 고되다고 투정을 부리면서도 이곳을 떠나지 못하는 이유 중 하나는 사람들을 마주하며 생각지도 못했던 기억과 마음이 하나로 연결되는 그 순간을 잊을 수 없기 때문일 것이다. 연결된다는 것은 결국 나를 돌아보는 일이고, 서툴던 과거의 마음을 조금씩 정돈하는 일이 아닐까.

 오직 사람 사이에서, 사람만이 가능한 일, 먼 미래의 모든 일이 기계로 대체될지라도 최후까지 살아남을 사람의 일. 나는 그것의 연약하지만 끊이지 않는 힘을 믿는다.    


p209  

 하지만 낭만은 현실과 맞닥뜨리는 순간 품고 있던 고유한 분위기를 잃는다. 가난할수록 낭만적일 수 있다는 말도 있지만, 가난하면 생존이 위태로운 이 시대에는 어디까지나 말뿐인 말에 지나지 않을지 모른다.

 낭만을 만끽하는 이들은 내일의 밥벌이를 걱정하는 예술가가 아닌, 그들을 멀리서 감상하는 여유로운 존재이다. 낭만은 일상의 찰나를 할애해 일탈을 즐기고 다시 제자리로 돌아가는 평범한 이들의 몫이지, 생존하기 위해 낭만을 제작하는 창작자의 몫은 아니다.


p212

 바닷속 아기 물고기는 바다의 존재를 알지 못한다. 언젠가 바다를 벗어나 본 적 있는 엄마 물고기만이 멀리서 바다를 디돌아보며 아, 내가 바다에 살고 있었구나 깨닫는다. 그 순간으 늘 너무 이르거나 너무 늦게 찾아온다.

 언제나 완벽한 선택을 꿈꿨다. 비행이라는 생업과 글쓰기라는 꿈 사이에서 단 하나만 선택해야 그것이 정답이 되는 줄로만 알았다. 경계에 발을 걸친 채 어느 곳으로도 넘어가지 못하는 태도는 비겁한 외면이라고 믿었다.

 하지만 선택이 한쪽으로 치우칠수록 중심도 함께 기울어졌다. 현실에만 몰두할수록, 꿈에만 전념할수록, 예상과는 다르게 한쪽 다리가 부러진 의자처럼 삶이 절룩거렸다. 이상한 일이었다. 그토록 바라왔던 순간과 마주했지만 온전히 걸음을 걸을 수조차 없었다.

 탁월한 선택이라 믿었던 일이 오히려 불균형이 된 것일까. 그렇다면 가끔은 아무런 선택을 하지 않는 것도 일종의 선택이 될 수 있을까....

 균형 속에서는 균형의 존재를 알지 못한다. 균형을 벗어날 때 비로소 균형의 존재를 깨닫게 된다. 그렇다면 날마다 중심이 흔들리는 이 상황 자체가 어쩌면 완벽한 균형일지도 모른다.

 그런 행운이 내 곁에 있다면 부디 너무 늦게 깨닫지 않기를 바라며, 오늘도 묵묵히 사람의 숲으로 걸어들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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