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전부검: 의사 결정 전에 일의 실패를 가정하고, 그 원인을 미리 분석해 보는 것.
; 스스로도 모르게 하고 있는 경우가 있다.
p28
...일방이 일방적으로 양보하는 관계가 굳어지면 받는 사람은 고마움을 모른 채. 한쪽의 희생은 당연한 것이 되고, 그 관계는 그렇게 계속되기 십상이다. 한쪽이 아낌없이 주는 나무가 되는 걸 즐기는 경우도 있을 테지만, 그는 건강하게 지속될 수 없다. 그렇게 늘 그를 받아준 내 잘못도 있다는 것을 그대는 몰랐다. 매번 파스타를 먹어도 그와 함께면 맛있었고, 그와 같이하는 게임엔 또 열심히 빠져들어, 결국 게임아이템 모은 걸 그에게 자랑하던 게 그 당시의 나였으니.
"헌신하면 헌신작 된다." 사회적 공감을 받아 널리 통용되는 표현에는 다 이유가 있는 법이다. '일반적으로 그러하나, 나는, 내 남자는 달라'라는 것도 없다. 결국 그 사람도 수백만 명 중 함 명일 테니. 보통 부부, 연인, 가족, 진정한 친구라면, 우리는 상대를 위해 기꺼이 양보하려고 한다. 희생이라 생각하지 않고 마음으로 상대를 위해 행동한다. 하지만 어느 관계나 사람과의 관계는 만들어 가는 것이다. 상대가 나에게 맞추려는 노력을 보여준다면, 그것을 기억하고 반대로도 상대를 위해 내 욕심을 내려놓을 줄 알아야 제대로 된 사람이다. 문제는 모두가 그렇지만은 않다는 것인데, 상대가 인격적으로 성숙하지 못한 욕심쟁이라는 걸 알았다면 멈춰야 한다.
내 시간과 정성에 대한 예를 갖추자. 외로움이라는 감정에 휩쓸려 헛되이 쓰레기에 쏟을 시간이 있다면, 나를 위해, 그리고 나를 사랑해주는 이들을 위해 한 번이라도 더 감사하는 마음을 표현해 보자. 머지않아 좋은 사람과 함게하기에도 내게 주어진 시간과 에너지가 충분치 않다는 것을 깨닫게 될 것이다. 가치가 없는 이에게 계속 마음이 기울어 시간과 돈, 에너지를 쏟고 그를 멈추지 못하는 사람, 우리는 그런 사람을 호구라고 부른다. 살아가다 나의 진심에 진심으로 감사하고 화답할 줄 아는 사람을 만난다면, 놓치지 말자. 그런 이에게만 깊은 마음을 내어주고 그런 이를 평생 곁에 둘 수 있는 안목을 길러야 한다.
p76
사실 그 느낌이 제일 컸다. 그렇게 오래 만났는데도 그와의 결혼에 대한 확신이 선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 남들이 다 하니가 해야 하는 건가? 싶었을 때가 없었던 건 아니지만 그건 20대라 뭘 몰랐을 때고 시간이 지날수록 그와 결혼하면 내가 숨이 막혀 죽을 것 같았다. 싸우면 갑자기 잠수를 타거나, 가끔 돈 많고 잘나가는 사람들이라고 하면 잠깐 관심을 보이다가 그렇게 사회적으로 성공했다는 이가 내 친구 남편 혹은 내 주위의 남자 사람처럼 그와 조금이라도 비교군이 될 것 같으면 무조건 깔보기 일쑤였으니까.
...오본휘를 가르치는 것도 하루 이틀이지. 그를 만나며 pros and cons를 한두 번 해본 게 아니었다. 그런데 우습게도 결론은 늘 같았다. 싫은 건 A4에 가득 차는데, 좋은 건 '그냥'한 단어뿐이라는 것.
인성이나 습관 면에서 존경하거나 배우고 싶은 점이 단 하나도 없는 남자를 언제까지 키운다는 생각으로 잘 살 자신이 없었다. 그래서 그가 결혼하자고 할 땐 밀어내 놓고, 막상 먼저 간다고 하니 이렇게 충격을 받는다는 게 너무 바보 같았다. 이성적으로는 아니었는데, 내 머리는 분명히 판단을 했는데, 내 마음은 멍청하게도 그에게 늘 진심이었다. 부인하고 싶었지만, 그의 단점은 수만 개였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이유 없이 좋았으니 그 비이성적인 감정을 뭐라고 표현할 수가 없었다.
; 그게 슬프지...이럴때 이성을 따를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p80
...언제나 여유 있을 줄 알았는데, 그저 순간의 그 머뭇거림이 이처럼 예상치 못한 곳에 나를 데려다 놓았다. 의도한 상황이 아니었기에 제대로 방어막을 갖추지도 못하고, 레프트 훅 라이트 훅을 다 받아내야 하는 그런 날과 같은 삶.
; 근데...결혼이 마감시한이 있는 프로젝트라는 건 사회적 분위기인가.
p86
사회적으로 성추행 가해자의 나이 등을 고려하면 대부분의 가해자는 넘쳐나는 성욕을 주체하지 못하여 그런 행동을 저지르는 것이 아니다. 권력 혹은 그 지위를 기해 자제하지 않음을 스스로 선택하고 타인에게 함부로 행동하는 것일 뿐. 본인이 가진 지위와 권력에 도취되어 미련하게도 인간이기를 포기한 자들은, 얼마나 역겹고 추한 모습인지도 모른 채 본인들은 그래도 괜찮다는 면죄부를 받은 양 미친 착각 속에 살고 있었다.
슬프게도 어느 직급이나 특정 레벨 이상에 다다르면 여성을 찾아보기 힘든 현시대의 사회구조하에서 마주쳐야 하는 상대방은 대부분 남자들이었다. 대부분의 피해자는 부당한 상황에 맞닥뜨렸을 때 분개하면서도, 공론화하였을 때의 역풍과 족히 짐작되는 2차 가해가 두려워 침묵하는 쪽을 택한다....
; 여자들에게 난이도 높은 한국에서의 사회생활...
p88
한 사람의 장래 행태를 보장하기도 어려운데, 한국에서의 결혼은 상대방 그 한 사람뿐만이 아니라 내가 평생 모르고 살아왔던 그의 가족, 과거, 그의 사회와의 결합이다. 통제 불가능한 위험요소가 득실거리는데, 비이성적 판단을 내려도 다 안고 갈 수 있을 정도로 사랑하는 이가 없다면 굳이 쓸데없는 리스크를 부담할 이유는 없었다. 나와 맞는 정말 좋은 사람과의 결혼이 베스트인 줄은 알지만, 맞지 않는 사람과의 지옥 같은 결혼보다야 싱글로서의 자유로운 삶이 훨씬 나을 테니. 굳이 꼭 살아보고 싶은 사람이 나타나지 않는 한, 현재의 삶을 유지하는 것은 꽤나 합리적인 선택지이다.
; 근데...보토은 안 합리적인 선택을 하지...
p91
러시아의 대문호 톨스토이는 안드레아의 입을 빌려 말했다.
네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 해보기 전까지는 절대 결혼하지 마. 네가 선택한 그 사람을 더 이상 사랑하지 않게 되어서 그 사람의 있는 그대로를 제대로 볼 수 있게 되기 전에는 절대 결혼해서는 안 돼. 그전에 식장에 걸어 들어간다면 넌 치명적이고 돌이킬 수 없는 실수를 저지르게 될 거야. 결혼은 네가 늙고 병들어 아무 데도 쓸모없어질 때 하도록 해, 결혼을 하게 된다면 네가 가진 고귀한 가치와 너 빛이 바래는 걸 보게 될 거야.
; <전쟁과 평화>에 나오는 말이래...근데 톨스토이도 결혼을...애도 딥따 많이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