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17  

...한데 사람의 기억과 감정이 거짓이라면 '나'라는 인간을 얼마나 믿을 수 있겠는가. '나'는 어디까지 나란 말인가.

 생각이 깊어질수록 입맛은 떨어지고 대답하지 못할 질문들만 늘어났으므로 사씨는 생각을 멈추기로 했다. 감정도 생각도 뒤로 미루고 오로지 지금, 여기, 나에게 닥친 현실만을 직시하기로 다짐하였다. 그렇지 않으면 이 미친 세상에서 정말로 정신을 놔버릴 것 같았기 때문이다. ...

p20

 " 로환소설의 여주인공이 다시 삶을 사는 방식에는 몇 가지가 있거든요. 그것을 회빙환이라 하는데 회귀하거나 빙의하거나 환생하는 것이에요."

p41

파괴지년. 열여섯 살의 나이.

p54

...누구와 친목을 다지고 누구를 벌주며 누구에게 존경을 바칠지에 대한 문제는 사서삼경에 나와 있는 대로만 하면 반드시 풀리고야 만다. 규칙이란 규칙 밖에 서 있는 자에게는 아무 영향을 끼치지 못하는 법인데 연심이라든가 돈, 혹은 남의 이목 같은 규칙외 규칙이 너무나 많기 때문이다....

p64

...아정이 영특할수록, 책을 많이 읽을수록 그는 확실히 불행해지리라.

 ....규칙이 사람을 기롭게 한다면 규칙을 바꾸면 된다. 세상의 규칙은 바꾸지 못할지언정 놀이판의 규칙 정도야. .....

p81

...어릴 적에는 만날 때마다 마음이 뛰고 불편해지는 사람이 사랑이라 생각했으나, 함께 있는 것이 편안하고 오래 대화를 나누어도 즐거운 사람이 사랑인 줄 이제야 알았다고 ....

p91

...한데 놀랍게도 삶은, 어쩌면 선택이었던가. 하면 이제껏 힘들게 살아온 나의 인생 역시 선택이란 말인가.

 이 고통은 진심을 줄 가치가 없는 상대에게 진심을 주고 기대한 것에 대한 대가였던가. 아니면 평생의 사랑을 두고도 마음을 거두어들인 것에 대한 벌이었던가.

 사씨는 자신이 행복할 수 있는 기회를 이미 오래전 놓쳐버렸다 생각했으나 그렇지 않았다. 그가 고려하지 않았던 선택지에 대한 결과들이 이렇게 많은 판본 안에 담겨 있었다.

 그제야 사씨는 깨달았다. 그는 이제껏 수많은 삶을 살았으며 수없이 선택했다는 것을. 그는 그 많은 판본 각각의 삶을 살았다. 열번이고 백 번이고 원하는 결말이 나올 때까지 수백수천 가지 삶의 방향을 모두 가보았다. 그리고 다시 이곳으로 돌아온 것이다. 모든 이야기의 시작점인 민씨에게로. 그는 사씨였으며 또한 민씨였고 그리고 아직 선택의 여지가 있는 삶을 가지고 있었다. 모든 결말은 이제 그의 결심에 따라 다시금 뒤바뀔 것이다.

p100

...나의 불행 역시 내가 선택한 것이었단 말이야. 아무도 알려주지 않았을 뿐, 내겐 언제나 '아니오'라고 말할 선택지가 있었던 걸세."

......

 그는 실제로 사씨가 이렇게 '특정한'생각을 하고 '어떠한 말을 하는 사람인 줄은 처음 알았다. 이것은 대단히 새로운 발견이기는 했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민진후는 사씨의 말을 거의 이해하지 못했다. ....

p102

...어쩌면 여자들이 불행해지는 이유도 그놈의 호기심 때문인지도 모르겠어. 하나 사람이 어찌 정해진 길로만 가겟는가. 행복에는 모험이 필요한 법일세.

......

......

 아, 남자들과는 깊은 이야기를 할 수가 없겠구나. 그들은 자신을 생각하는 인간이라기보다는 안타까운 애정의 상대로밖에는 여기지 않았다. 차라리 아정을 두고 이야기할 것을.....

p126

 장르소설의 장점은 그런데 있는 것 같습니다. 전형적인 것 사이에서 독창적인 것을 약간 발견하게 하여 독자들을 기쁘게 하는 것 말입니다.

p135

 무엇도 명확하지 않고 아무것도 알 수 없는 세상에서 그래도 내 편인 나를 오롯이 믿어줘야 해. 힘내. 지지 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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