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17
...서로가 서로를 얕잡아봤어. 너나 나나 똑같은 보도 위에 가래침 뱉고, 빠르게 유행하는 설사병을 앓는 처지라는 건 생각지도 않는 듯했지. 제 몸에서도 악취가 풍기는데, 다른 사람한테 고약한 냄새가 난다고 불평해대는 거야! 나는 어땠냐고? 나는 미국 공군이 싫었다. 그 사람들이 날 보고 '하바하바' 할 때마다 얼굴이 어찌나 시뻘개지던지. ....
; 보통 인간들이 다들......
p19
...나를 움직이게 해줄 무언가가 필요하다고.
p22
...우리 모두 두려웠어. 각자 저마다의 불행을 안고 있었지. 하지만 절망한다는 건 우리가 이미 잃어버리고 만 것을 되찾기 바란다는 뜻이잖ㄴ아. 그건 더 이상 견딜 수 없는 상황을 연장할 뿐이지. 이제는 불타ㅏ버린 집의 옷장 안에 내가 가장 좋아하던 따듯한 코트가 들어 있었다 해도 그걸 얼마나 아쉬워할 수 있겠니? 바로 그 불로 우리 어머니 아버지가 돌아가셨다면 말이야. 전화줄에 목을 맨 사람의 축 늘어진 팔다리와, 십다 만 사람 손을 턱에 물고 거리를 어슬렁거리는 굶주린 개들의 모습을 얼마나 오래 마음에 담아둘 수 있겠니? 우리는 서로에게 질문했단다. 뭐가 더 나쁜 일일까? 올바르게 슬픈 얼굴을 하고 앉아 죽음을 기다리는 것과 나를 위해 행복을 선택하는 것 중에서.
그래서 우리는 매주 연회를 열고 매주 새해를 맞은 사람들처럼 지내기로 했어. 그로써 우리에게 일어난 불행들을 잊을 수 있었다. 우리 모임에서 나쁜 생각은 허용되지 않았단다. 우리는 배터지게 먹고, 웃고, 마작을 했어. 이기기도 하고 지기도 했지. 최고로 좋은 이야기들을 나누었어. 그러다 보니 매주 행운이라는 걸 바랄 수 있게 되더구나. 그 희망만이 우리의 유일한 기쁨이었어. 그것이 우리가 우리의 작은 연회를 조이 럭이라 부르게 된 이유야.
p26
...차이를 보지 못하기 때문에 무관심한 걸 뜻하는 중국말이 뭐더라?...
p33
부모가 자식을 질책하면 안 된다고 보는 견해도 있어요. 대신 격려해주어야 한대요. 사람은 다른 사람들의 기대를 따라가기 마련이잖아요. 만약 누군가를 질책한다면 그건 '나는 네가 망하기만 고대하고 있어'라는 뜻밖에 안 돼요.
p59
이 년이 지나자, 흉터는 희미해지고 반들반들해졌다. 어머니에 대한 기억도 말끔히 사라졌다. 그것이 상처가 하는 일이다. 상처가 저절로 아무는 것은 너무나도 아픈 자리를 보호하기 위함이다. 그리고 마침내 상처가 다 아물고 나면, 그 아래 무엇이 있는지, 또 무엇 때문에 그토록 고통스러웟는지 전혀 알 수 없게 된다.
p76
스스로에게 물었어. 한 사람의 진실이란 무엇일까? 저 펀허강이 자기 색깔을 바꾸는 것처럼 나도 그렇게 할 수 있을까? 나 자신을 잃어버리지 않으면서 말이야. 커튼이 심하게 펄럭이고 빗줄기가 거세졌어. 사람들이 소리를 지르며 뛰어다녔지. 나는 미소 지었다. 그 순간 처음으로 쌔달은 거야. 바람의 힘을 말이야. 바람은 눈에 보이지 않지만, 물을 몰고 와 강을 흐르게 하고 지형가지도 바꿔놓지. 사람을 소리 지르게 하고 춤추게 해...
나는 눈물을 닦고 거울을 들여다봣어. 그리고 깜짝 놀랐지. 내가 입고 있던 혼례복이 아름다워서는 아니었어. 그보다 더 귀중한 것을 보았거든. 나는 강하고, 순결했어. 내 안에는 아무도 모르는 진실한 생각이 들어 있고, 누구도 그걸 빼앗아가지 못해. 나는 바람이었어.
p115
그러나 이제 나는 늙었고, 해마다 조금씩 내 생의 끝을 향해감에 따라 어쩐지 시작과 가까워지는 것을 느낀다. 나는 그날 일어난 모든 일을 기억한다. 왜냐하면 그와 같은 상황이 내가 사는 동안 여러 차례 반복되었기 때문이다. 똑같은 무구함, 똑같은 믿음, 똑같은 조바심, 똑같은 호기심, 똑같은 두려움, 그리고 똑같은 외로움, 그렇게 나는 나 자신을 잃어버렸다.
나는 이 모든 일을 기억한다. 그리고 오늘, 이 여덟째 달 십오 일의 밤에 나는 오래전 달의 여인에게 내가 무슨 소원을 빌었는지도 기억한다. 나는 발견되기를 바랐다.
p121
...현명한 사람은 바람을 거슬러 가지 않아. 중국에 이런 말이 있어. 남쪽에서 바람을 불어라. 그리하면 북쪽이 따르리니. 가장 강한 바람은 눈에 보이지 않는 법이야.
p130
...그러니 일단 하라는 대로 하는 거야. 그 사람들은 항상 그렇게 말해. 이유는 모릅니다. 당신 스스로 찾아보세요. 웃기는 소리지. 자기들은 항상 다 알고 있으면서 말이야. 그러니까 일단 받아들이고 스스로 이유를 알아내는 편이 나아....
p170
사람이 무언가에 세차게 얻어맞으면, 균형을 ㅇ맇고 쓰러질 수 밖에 없다. 그리고 스스로를 추슬러 다시 일어선 뒤에는 아무도 나를 구해줄 수 없음을 개닫게 된다. 남편도, 엄마도, 심지어 신조차도, 그러니 자꾸만 비틀거리며 넘어지는 자신을 어찌 하겠는가?
p189
...운명이란 절반은 기대감으로, 절반은 부주의로 이루어지는 것 같다. 그러나 어쩐 일인지, 사랑하는 것을 잃어버리고 난 뒤에는 믿음이 사람을 장악한다. 우리는 잃어버린 것을 항상 생각하면서 처음처럼 기대를 품어야 한다.
p208
나는 엄마랑은 달라서 원하는 건 무엇이든 될 수 있다는 말을 믿지 않았다. 나는 오직 내가 될 수 있을 뿐이었다.
p210
...매사에 안 좋은 징조만을 찾는 엄마에게 짜증이 났다. 딸은 평생 그런 식으로 주의를 받으며 살았던 것이다.
p217
...순망치한. 입술이 없으면 이가 시린 법이지. 내 생각에 그 말은 어떠한 현상은 반드시 다른 현상의 결과라는 뜻 같다.
p289
...생각하고 결정해야 할 것들이 너무 많았다. 각각의 선택지는 곧 다른 방향으로의 국면 전환을 의미했다.
p321
...순수함을 잃더라도 희망만은 잃지 않는 방법을. 영원히 웃을 수 있는 방법을요.
p322
딸은 내게 소리 질렀다. "선택의 여지가 없어요! 해볼 수 있는 게 없다고요!" 그 애는 모른다. 말하지 않는 것조차 제 선택이라는 걸. 시도조차 해보지 않는다면, 자기 기회를 영영 잃어버리고 말 것이다.
이 사실을 아는 이유는 내가 중국인으로 자랏기 때문이다. 아무것도 바라지 마. 다른 사람들의 불행을 받아 삼키고, 네 괴로움은 혼자 알아서 삭이는 거야.
내 딸에게는 그와 정반대로 가르쳤건만, 지금 그 애는 나와 같은 길을 가려 하고 있다! 어쩌면 이건 그 애가 내 뱃속에서 나왔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여자로 태어났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나는 우리 어머니의 배에서 여자로 나왔따. 우리는 마치 계단과 같다. 한 칸 위에 다음 칸이 이어진다. 위아래로 오르락내리락하더라도, 결국 한 길을 가는 것이다.
나는 마치 삶이 꿈인 것처럼 잠잠히 지켜보며 귀 기울이는 것이 어떤 일인지 안다. 더 이상 보고 싶지 않을 때는 눈을 감아버리면 된다. 하지만 더 이상 듣고 싶지 않을 때는 어떻게 하나? 육십 년도 더 된 일이지만, 나는 여전히 그 날을 듣는다.
p406
그건 한쪽을 좇으면서도 눈으로는 다른 쪽을 보고 있는 거죠. 한쪽을 위하면서 다른 쪽도 놓치지 않는 거예요. 뜻하는 바를 말하면서도 속에는 또 다른 의도들을 품고 있다는 거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