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10  

...등산은 우리를 자꾸만 끌어내리지 못해 안달인, 못된 지구 중력과의 우아한 드잡이라고!

p22

불교의 근본 원리인 사제의 첫 글자를 따서 이르는 말이다. '고'는 ㅐㅇ로병사의 괴로움, '집'은 '고'의 원인이 되는 번뇌의 모임, '멸'은 번뇌를 없앤 깨달음의 경계, '도'는 그 깨달음의 경계에 도달한 수행을 이른다.

p56 

1. 흔들린다, 무너지지 않는다.

2. 끊임없이 암시한다.

3. 바라본다, 흘려보낸다.

p93

 산 하나를 넘는 일은 언제나, 우리의 분투를 가로막는 경계와 한계를 허무는 일이라 믿는다. 

p106

 ...심요정 신요동. 마음은 고요히, 몸은 분주히 하란 뜻으로 새기면 될 것 같다. 중국의 고수가 건강의 비결로 내세운 짧은 문장을 내려다보면서 나는 어느 새벽, 북한산의 능선을 홀로 걷던 기억을 되살렸다. 멀리로 말간 해가 떠오르는 중이었고, 나는 내내 말 없던 날이었다. 마음은 고요했고 몸은 분주했다. 문약에 특유한 불안과 조바심을 잠시나마 날릴 수 있었던, 북한산 만행의 순간이었다.

p122

 당국자미, 방관자청이란 말을 들었다. 바둑을 직접 두는 사람은 좁은 사각의 싸움터 앞에서 혼미하지만, 옆에 서서 훈수를 두는 사람의 마음은 맑다. 판세를 휜히 읽는다. 경계에 선 사람에게만 존재하는 미덕이 있다. 중심에서 떨어져 있는 사람에게만 보이는 것들이 있다.

p129

 ...무지개를 한자로 쓰면 '홍예'다. 서양에서 '아치'라 부르는 건축 양식을 한자 문화권에서는 홍예라 부른다. 동서양 사람들의 눈이 그렇게 다르다. 사람들은 대상에서 보고 싶은 것을 본다. 아치건 무지개건, 문의 위쪽은 유려하고 날랜 곡선을 이룬다. 심미와 과학을 두루 갖춘 동서양 공통의 건축 양식이다. 그리고 홍예 위의 다락 공간을 문루라 부른다. ....

p140

 쉬운 길도 어렵고, 어려운 길도 어렵다. 쇠도끼가 돌도끼보다 나은 건 아니라고 누가 그랬다. 쇠도끼와 돌도끼는 그냥 다른 것뿐이라고. 문수봉 가는 길도 그렇다. 쉬움/ 어려움을 간소한 표지판으로 갈래지어 놓긴 했으나, 어느 한 길이 쉽고, 다른 한 길이 어려운 건 아니다. 두 길은 너무나 다를 뿐, 난이의 영역을 비껴간다.....사람에 따라선 무서울 수도, 위험할 수도 있으니. 그러나 단언컨대, 쉬운 길도 쉽지 않다.

p142

 세월 보내며 절감하는 일이지만, 믿음 아닌 것들은 다 내다 버려야 한다. 군더더기들, 장식들, 자잘한 팩트에 대한 집착, 괜한 허울 등등 모두 내쳐야 한다. 삶이 단순해져야 깊이 있는 행복으로 진입한다. ...

p144

...풍수의 본딧말은 장풍득수다. ....바람을 가둔다...물을 얻는다....바람을 가두고 물을 얻는다?

p160

 문헌학 정도로 기원을 소급하면 적당할까? 서양에 팰림프세스트란 말이 있다. 가필, 중첩, 소실, 재활용 등등 복합적인 뉘앙스를 함축한 단어다. 파자를 위해선 고대 그리스로 거슬러 가야 하는데, 대강 '다시+ 문지르다'는 의미의 복합이다. 그러나 이렇게 글자를 쪼개고 합쳐도 명쾌하게 떠오르지 않든 단어의 뜻이 양피지 한 자락을 생각하면 쉽게 이해된다.

 ...양피지 위의 텍스트를 보존할 필요가 없어지면, 그것을 무언가로 문질러 지우고 그 위에 도 다른 사연을 다시 썼다. 그렇게 문지르는 행위, 덧쓴 텍스트, 희미한 흔적, 소멸과 기억 모두를 사람들은 팰림프세스트란 단어에 녹여 냈다.

p179

쉬운 길도 어렵고, 어려운 길도 어렵다. 사실 어느 쪽이어도 괜찮다.

세월이 흐르면 가지 않은 길과 간 길이 남을 뿐.

어느 길을 택하든 묵묵히 제 갈길을 가는 것, 그것만이 갈림길을 대하는 등산객의 태도다.

p194

 동백과 목련과 벚꽃의 각기 다른 삶, 각기 다른 죽음을 목도하면서 잊지 않았으면 하는 게 있다. 꽃 피우지 못한 삶, 꽃 피우지 못한 죽음이 우리 곁에는 많다. 그런 삶과 죽음이 우리가 사는 세상의 거의 전부일지 모른다.

p223

 ...삶의 번잡과 여유는 그저 한 끗 차이다. 밀물과 썰물처럼 끊임없이 서로를 대체하고, 낮과 밤처럼 서로를 밀면서 끌어안는 게 인생의 고락이다. 복잡한 도심에서 한가한 숲길을 체감하고, 사람 없는 강변에서 분주한 거리를 절감하는 것이 일상의 본질일지 모르겠다. 그래서 생각해 보는데, 번뇌가 열반이고 차안이 피안이란 사실을 눈치채야만 우리는 비로소 절대적이든 압도적이든, 한가할 수 있는 것 아닐까.

p226

...타인에 대한 배려를 내팽개친 신앙은, 그들이 사랑하는 신에 대한 결과적 모독이라고 나는 오랫동안 생각해 왔다.

p249

언젠가 이런 문장을 하나 메모해 두고는 홀로 만족해했다. 절대적으로 한가해야 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