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145
"사회나 개인의 의식이 변하는 과정은 상당히 완만하지. 답답할 정도로. 하지만, 결국 이성이나 객관적 인식이 확장되고 문제를 성찰하게 되면 변할 수밖에 없어. 변해야 하고. 우리 한국 사회에서 소수자들의 권리는 아직도 너무 열악해. 반성해야 할 문제가 많지."
처음 듣는 사람은 상당히 이상하게 느낄 것이다. 가족이 모인 저녁 식사 자리에서 '의식''객관적 인식''성찰;'권리'같은 딱딱한 단어들이 튀어나오니까 말이다. 이런 정도의 단어나 대화가 어렵다는 뜻은 아니다. 어른들은 물론인 것이고, 고등학생인 윤호의 수준에서도 별문제는 아니다. 수능 영역 문제집을 보면 더 어려운 단어가 여기저기 널려 있는 난해한 지문이 수두룩하니까.
그러니까 단어나 대화가 어려운 것이 아니라 가족 식사 자리라는 상황이 이상하게 느껴질 거라는 말이다. 하지만 윤호네 식구에게 이런 단어나 대화는 자연스럽다. 아주 오래전부터, 윤호가 대화의 내용을 어렴풋이 기억하는 초등학교 때부터, 식구들의 식사는 일쑤 이런 식이곤 했으니까 말이다.
p153
"책을 읽는 것은 단순히 학습 능력을 높이고 시험 점수를 따기 위해서가 아니야. 물론 모든 학습의 기초는 독서로 다져야지. 하지만, 독서가 더욱 중요한 것은 삶을 이해하고 사랑하기 위해서지."
p159
...합리적인 이유는 없는 심리적인 거부. 그건 누나가 용납할 수 없는 이유고 윤호는 누나의 매서운 눈초리와 날카로운 추궁을 받을 것이다. 윤호가 누나의 제안을 거절하지 못한 진정한 이유는 바로 이런 상황에 대한 두려움 대문이었다.
p170
"너와 난 같이 사는 가족이니까. 가족에게 일어나는 의미 있는 일을 이해하고 또 인정해 주는 것은 아주 중요하니까. 가족에게까지 이해받지 못하고 인정받지 못한다는 것은 너무 힘들지 않겠니. 그럼 왜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같이 살아야 하지? 내 말이 틀린 거야?"
p231
로봇은 정직하니까, 참으니까, 상대인 인간을 먼저 생각하니까, 진심을 숨길 줄 모르니까. 영원히 인간을 넘어서지 못할 것이다. 비틀대는 선생을 보는 동안 눈물이 핑 돌았다.
p232
로봇은 항상 진심이고 정직하며 상대인 인간을 배려하고 걱정한다. 모순이 없는 순수함 때문에 인간을 넘어서기는 힘들겠지.
p233
모순덩어리인 인간의 마음을 논리적으로 구현해서 선생에게 줄 수 있는 날이 반드시 오기를. 그래서 '제일 좋아하는 로봇이니까.'라는 논리를 초월적인 논리로 이해하게 되기를. 차가 연구실 정문에 멈춰 섰다. 나는 내리기 전에 옷깃에 꽂힌 망치 모양 배지를 떼어 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