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238
...존엄성이란 값으로 매길 수 있는 것이 아니며, 조금씩 양보하기 시작하면, 결국 인생이 모든 의미를 잃게 되기 때문이다. 그러자 의사는 그들 모두가 굶주리고, 오물에 뒤덮이고, 이에 시달리고, 빈대에 물리고, 벼룩에 뜯기는 상황에서 무슨 의미를 찾을 수 있느냐고 물었다. 나 역시 내 아내가 가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하지만 내가 무엇을 원하느냐 하는 것은 아무런 도움이 안 됩니다.. 나도 압니다. 남자다운 자존심, 아닌 이건 남성의 자존심이라고 해야겠죠. 어쨌든 지금까지 많은 수모를 겪은 뒤에도 우리가 여전히 그런 이름을 붙일 만한 것을 가지고 있다면, 그 자존심이 고통을 겪으리라는 것, 이미 겪기도 했지만, 다시 겪으리라는 것, 이미 겪기도 했지만, 다시 겪으리라는 것, 그것을 피할 수 없다는 것을 나도 압니다. 하지만 우리가 살고 싶다면, 이것이 어쩌면 유일한 해결책인지도 모릅니다. 각자 자신이 가지고 있는 윤리에 따라 행동하는 거지요. 나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p241
...사실 우리가 이기주의라고 부르는 그 제 이의 살갗 없이 태어난 인간은 없으며, 제 이의 살갗은 너무 쉽게 피를 흘리는 원래의 살갗보다도 훨씬 오래 지속되기 마련이다. 그 여자들은 순서가 늦어졌다는 것 말고도 또 한 가지 점에서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는 것도 이야기해두어야겠는데, 이것 역시 인간 영혼의 신비라고 할 수 있겠다...
p258
...늘 남들이 먹는 빵이 더 무거운 법입니다. 나에게는 불평할 권리가 없소. 남들이 감당하는 무게 때문에 내가 먹고 사는 거니까. 대화는 이미 다 끝났으니까. 대화가 아니라 대화에 참여했던 사람들을 상상해 보도록 하자. 그들은 마주보고 있다. 마치 서로를 볼 수 있는 것처럼. 물론 이 경에 그것은 불가능하다. 그들 각자의 기억이 눈부신 백색의 세상으로부터 말하는 상대의 입을 건져올렸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이어 이 입이라는 중심에서 천천히 빛이 발산되는 것처럼, 얼굴의 나머지 부분이 나타나기 시작한다. 하나는 늙은 남자의 얼굴이고, 또 하나는 그렇게 늙지 않은 남자의 얼굴이다. 이런 식으로라도 볼 수 있는 사람을 정말로 눈이 멀었다고 할 수 있을까...
p275
...우리는 우리 분수에 맞지 않은 마지막 한 조각의 존엄성 외에는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소. 이제 우리에게도 마땅히 우리 것이어야 하는 것을 찾기 위해 싸울 능력 정도는 있다는 것을 보여줍시다. 무슨 말을 하려는 겁니까. 우리는 마치 비열한 기둥서방들처럼 여자들을 깡패 소굴로 들여보냈고, 그 대가로 배를 채웠소. 이제 그곳으로 남자들을 들여보낼 때가 왔소. 여기 남자들이 있다면 말이오...
p319
...여기에서 다시 한 번 상황의 힘과 특성이 사람의 언어에 상당한 영향을 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항복하라는 명령을 받았을 때, 제기랄, 하고 내뱉는 군인을 생각해 보라. 그렇게 함으로써 그가 그후로 내뱉는 욕설들은 무례하다는 지탄을 면제받게 된다....
p330
...그러나 다시 한 번 말하거니와, 인내심을 가져라. 시간이 제 갈 길을 다 가도록 해주어라. 운명은 많은 우회로를 거치고 나서야 목적지에 도달한다는 것을 아직도 확실히 깨닫지 못했는가. 여기에 이 지도를 세우기 위해. 그리하여 이 여자가 자신이 어디에 있는지 알도록 해주기 위해. 운명이 얼마나 많은 길을 돌아왔는지는 운명 자신밖에 모를 것이다. 그녀는 생각했던 것과는 달리 그렇게 멀리 있지 않았다. 다른 방향으로 약간 우회한 것뿐이었다....
p354
...우리가 전에 지니고 살았던 감정, 과거에 우리가 사는 모습을 규정하던 감정은 우리가 눈을 가지고 태어났기 때문에 가능했던 거야. 눈이 없으면 감정도 다른 것이 되어버려. 어떻게 그렇게 될지는 모르고, 다른 무엇이 될지도 모르겠지만, 아가씨는 우리가 눈이 멀었기 때문에 죽은 것이라고 말했는데, 바로 그게 그 얘기야. 선생님을 사랑하시나요. 응, 나 자신을 사랑하는 만큼, 하지만 만에 하나 내가 눈이 먼다면, 내가 눈이 먼 다음에 다른 사람이 된다면, 내가 어떻게 그이를 계속 사랑할 수 있을까, 무슨 감정으로 사랑을 할까.전에 우리가 볼 수 잇었을 때도 눈이 먼 사람들이 있었잖아요. 지금과 비교하면 거의 없었다고 할 수 있지. 일반적인 감정은 볼 수 있는 사람의 감정이었고, 따라서 눈먼 사람들도 눈먼 사람들의 감정이 아니라 성한 사람들의 감정을 가지고 있었어. 그런데 이제 눈먼 사람들의 진짜 감정들이 분명하게 나타나고 있어. 아직도 시작일 뿐이야. 지금은 그래도 우리가 가졌던 감정에 대한 기억에 의존해 살고 있잖아. 지금 삶이 어떻게 바뀌었는지 아는 데는 눈이 필요 없어. ...
p367
...답이란 필요하다고 해서 꼭 나타나는 것은 아니니까. 유일한 답을 기다려보는 것일 경우가 많다.
p387
...우리는 모욕의 모든 단계를 내려갔죠. 그걸 다 내려가서 마침내 완전한 타락에 이르렀어요. 방식은 다를지라도 여기서도 똑같은 일이 생길 수 있어요. 그래도 그곳에서는 그런 타락이 다른 사람들 탓이라고 핑계댈 수 있었어요. 지금은 그게 안 돼요. 이제는 선과 악에 관한 한 우리 모두 평등해요. 선은 무엇이고 악은 무엇이냐고는 묻지 말아주세요. 눈먼 것이 드문 일이었을 때 우리는 늘 선과 악을 알고 행동했어요. 무엇이 옳으냐 무엇이 그르냐 하는 것은 그저 우리와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를 이해하는 서로 다른 방식일 뿐이에요. 우리가 우리 자신과 맺는 관계가 아니고요. 우리는 우리 자신을 믿지 말아야 해요. 이런 도덕적인 설교를 해서 미안해요. 다른 모든 사람이 눈먼 세상에서 눈을 가진다는 것이 어떤의미인지 여러분은 몰라요. 알 수가 없어요. 나는 장님 나라의 여왕이 아니에요. 나는 이 무시무시한 광경을 보려고 태어난 사람일 뿐이에요. 여러분은 그것을 느낄 수 있을 뿐이죠. 나는 느낄 수도 있고 볼 수도 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