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31

...우리는 눈은 내부를 비추는 거울이 되어버렷다. 그래서 우리 눈은 우리가 입으로는 부정하는 것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이러한 일반적인 관찰에 덧붙여 특수한 상황도 고려해야 한다. 그 특수한 상황이란, 단순한 정신을 가진 사람들에게는, 어떤 악한 행동을 저질렀을 때 생기는 가책이라는 것이 조상으로부터 물려받은 온갖 종류의 공포와 뒤섞이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그 결과 자신의 잘못을 얼버룸리려 하는 사람은 결국, 가혹하게도 자신이 받아 마땅한 벌의 두 배를 받게 된다. 이 경우, 차의 시동을 걸고 떠나는 순간 그 도둑을 괴롭혔던 것 가운데 몇 퍼센트가 공포이고 또 몇 퍼센트가 양심의 가책인지 해명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다만,조금 전까지 다름 사람이 앉아 있던 자리에 앉아 있는 도둑이 마음의 평화를 누리지 못했을 것이라는 데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그 사람은 똑같은 운전대를 잡고 있다가 갑자기 눈이 멀었으며, 똑같은 유리로 앞을 내다보고 있다가 갑자기 앞을 보지 못하게 되었다. 이런 생각들이 이 더럽고 음흉한 인간의 마음속에서 이미 고개를 쳐들고 있던 공포심을 부채질했을 것임을 짐작하는 데는 그리 대단한 상상력이 필요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또한 앞서 말한 대로, 가책, 즉 고통을 느낀 양심의 자기 표현이기도 했다. 비유적인 말을 사용하자면, 그것은 물어뜯는 이빨을 가진 양심이었다. 그것 때문에 도둑의 눈앞에 눈이 먼 남자의 비참한 모습이 어른거리게 되었다. 눈이 먼 남자는 문을 닫으면서, 그러실 필요없습니다..하고 말했다. 그때부터는 도움의 손길이 없어. 아마 한 걸음도 제대로 걷지 못했을 것이다.

p33

...그게 뭐 감기처럼 옮는 것도 아니고, 동네나 한 바퀴 돌면 괜찮아지겠지. 도둑은 차에서 내렸다. 차 문은 잠그지 않았다. 곧 돌아올 생각이었기 때문이다. 그는 걷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곳에서 서른 걸음도 못 가서 눈이 멀고 말았다.

p52

...인간은 원래 그렇게 만들어진 거야. 반은 무관심으로, 반은 악의로, 의사는 불신감에 젖어, 이제 어떻게 한담, 하고 말하려다가, 자신이 시간을 낭비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자신이 가진 정보를 안전한 통로로 적당한 장소까지 들어가게 하는 유일한 길은 공무원을 중간에 끼우지 않고, 자기가 근무하는 병원의 원장과 의사 대 의사로서 이야기하는 것임을 깨달은 것이다. 관료 체계를 움직이는 것은 원장이 책임지면 될 일이야....

p70

...그 사람들이 자기들이 직접 택하지도 않은 사람의 권위를 인정해 줄 것이라고 기대하는 것은 무리야. 게다가 나는 존중해 주는 대가로 줄 것이 아무것도 없는 사람이잖아. 새로 오는 사람들이 내 권위와 규칙을 기꺼이 받아들여줄 거라는 가정에서 출발할 수는 없는 노릇이지. 그렇게 하지 않으면 이곳에서 살기가 어려워질 거예요. 단순히 어렵기만 하다면 아주 운이 좋은 거라고 할 수 있지. ...나는 좋은 뜻을 가지고 한 말이지만, 솔직히, 선생님 말씀이 옳네요. 모든 사람이 다 저 잘났다고 하는 상황이 될 거예요.

p129

...책임자가 선출돼도, 그 책임자의 권위는 약할 수밖에 없고, 불확실할 수밖에 없고, 매순간 문제 제기에 시달릴 수밖에 없었다. 따라서 책임자는 공명정대하게 모든 사람들의 이익을 위해 권위를 행사하고, 다수는 그 권위를 인정해야 한다는 조건을 붙어야 했다. 그런 권위가 생기지 않으면, 우리는 결국 이 안에서 서로를 다 죽이고 말 거야. 그녀는 생각했다. 그녀는 이 민감한 문제를 남편과 이야기하겠다고 다짐하고, 계속 식량을 나누어 주었다.

p163

...지금까지 새로 도착하는 사람들이 계속 방해하고 개입함으로써 늘 새로운 의사 소통 통로를 마련해야 했다. 두 번째 이점은 현실적이고, 직접적이고, 실질적인 것으로, 민간인지 군부인지는 몰라도 어쨌든 바깥의 당국이 수십 명의 사람들에게 식량을 공급하는 것과 온갖 유형, 배경, 기질을 가진 이백사십 명을 먹이는 갑작스럽고 복잡한 책임을 감당하는 일은 다르다는 것을 이해했다는 점이다....

p177

...우리가 사는 세상에서는 이런 식으로 진실이 자기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거짓으로 위장을 하기도 하는 법이다. 대중에게 사고의 진상을 아무리 설명해도 소용이 없었다. 그리고 그런 불신의 결과는 곧 분명하게 나타났다. 사람들이 갑자기 버스를 이용하지 않게 된 것이다. 사람들은 다른 사람이 눈이 머는 바람에 죽느니, 차라리 스스로 장님이 되는 게 낫다고 이야기했다....

p203

...사람이란 어떻게든 자기 감정을 분출해야 하는 법이니까. 특히 눈이 멀었을 경우에는....

p204

...우린 빼도 박도 못하는 상황에 처한 것 같군요. 처음 이곳에 왓을 때부터 그런 상황이었죠. 하지만 우리는 계속 견뎌낼 겁니다. 선생님은 낙관주의자시로군요. 아니, 나는 낙관주의자가 아닙니다. 단지 현재의 우리 모습보다 더 나쁜 건 상상할 수 없을 뿐이죠. 글쎄요. 나는 불행이나 악에 한계라는 게 있는지 잘 모르겠씁니다. 그 말이 맞는지도 모릅니다. 의사는 그렇게 말을 받더니, 마치 혼자말을 하듯 중얼거렷다. 이러다 무슨 일이 일어나고야 말지. 그것은 모순을 내포한 결론이다. 결국 이보다 더 나쁜 일이 잇을 것이라는 말이거나, 아니면, 비록 모든 증거는 반대를 가리키고 있지만, 이제부터 상황이 나아질 것이라는 뜻이기 때문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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