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41

 나비는 사람의 내면세계란 곳에 신체접촉만으로 들어갈 수 있어. 꿈과는 조금 다른데, 무의식이라는 점에서는 비슷해. 기억이 추상적으로 형상된 공간이라고 해야 하나.

p59

...기도하라. 함게 기도해줄 사람이 없다면 혼자서 눈을 감아라. 그냥 지금 가진 바람을 읊고, '아멘' 한 번으로 간단히 마무리한 셈 쳐라. 굳이 신앙을 논할 필요도 없이 바람을 외치면 기분이 나아진다. ...

p89

...친구나 가족 사이에서도 절대 100퍼센트를 기대할 수 없는게 현실의 법칙이에요. 100퍼센트를 말하는 사람은 상대를 홀리지만 정작 결과는 장담 못 할 테죠. 완벽이라는 허울을 추구하는 자는 보통 둘 중 하나입니다. 상종 못 할 이상주의자거나, 사기꾼이거나.

p125

...나비는 개인의 심상, 이른바 내면세계를 탐사해. 나비가 한 사람의 내면세계에서 죽지 않고 무사히 빠져나오는 데 성공하면 그 사람의 기억이나 주장이 사실인지 아닌지 증명할 수 있지. 딱 그 정도만 알면 돼. 꿈하고는 큰 차이가 있지만, 뇌에 남은 기록이 반영된다는 점에서는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아.

 p163

... 인간의 생존 본능이란 앞날의 가능성을 맹렬히 쫓게 된다는 면에서는 계시와도 같지....

p178

...최면은 자아의 위치를 바꿔치는 것. 안팎을 바꾸는 건 가능하지만, 구조 자체를 무시할 수는 없다. 사람의 선천적인 멘탈은 대개 아주 연약하고, 쉽게 깨지게 되어 있다. 즉 심리 공간을 둘러싼 껍데기 자체를 두텁게 만들 수는 없다는 이야기다.

 '심층 방어'는 말 그대로 내면의 깊숙한 곳까지 걸쳐 있는 기제다. 나무가 가지를 뻗듯 깊은 곳에서부터 만들어져 나온 심리적 함정. 정체를 끝까지 알아채지 못하면 죽겠지만, 알아채는 순간 이것은 달걀 껍데기나 다름없다. 직관적인 자해행위로도 간단하게 꿈에서 깨듯 빠져나올 수 있는 수준의 강도를 지녔으니까.

p207

 애초에 지옥의 역할은 이승의 업을 단죄하는 것. 죄인의 저항 따위는 완전히 무력화하도록 설계되었다. 그럼에도 밑바닥이 단순한 불바다가 아닌 이유는 죄인들에게 다양한 고통을 선사하기 위함이 아니다. 이곳이 악마들의 세상이고, 그들도 인간과 유사한 면모를 지녔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다면 중요한 것은 군주와 열두 대악마 아래의 악마들 역시 이들의 발밑에서 떨어야 한다는 것.

 수만의 죄인들이 들고일어나 봉기하는 것보다 한둘의 악마가 변절하는게 더 치명적이다. 결국 지옥의 붕괴를 초래하는 열쇠는 말도 채찍도 아닌, 마부들이 쥐고 있는 것과 다름없다. 아무리 난폭하고 잔인하더라도 그들에게는 의무와 권리라는 게 존재하기에.

.....

 악마들이 죄인을 산 채로 불길에 내던질 수 있는 건 행운이 아니에요. 결국 그것도 악마의 의무에 불과하니까. 아무리 수많은 계급으로 나뉜 사회라도 필요한 요소는 단둘뿐이죠. 의무를 기꺼이 행할 중간 하수인과, 권리라는 필수적 대가.

p226

...올바른 가르침의 무책임함에 치를 떨어본 사람은 어떤 사악함도 수용할 수 있게 된다.

 억울하게 죽은 이들의 원한을 풀어달라고 하기에 대답했다. 어리석은 자여, 그대는 헛걸음을 하였다. 나는 사연을 듣기만 할 뿐, 정작 이뤄줄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다. 또한 자네의 꺾인 희망이야말로 나의 양분이며, 내가 악마의 이름을 지녔따는 증거이기도 하다.

p328

 내가 바로 바깥의 주인이야. 나 없이는 세상도 없어.

p337

 원하는 대로, 하고 싶어서 한다고 말해. 그냥 그렇게 말하면 돼. 적어도 고유진을 잘 아는 사람이라면 모두 이해할 수 있을 거야. 지금의 언니가 원하는 건.....말 그대로 올바른 결말이잖아?

 우리가 살아온 이 세상이 부질없다면, 유영이도 부질없는 존재가 되어버린다. 그런 건 절대로 인정할 수 없다. 한 발 앞서 떠난 동생이 내게 줬던 삶의 의미는 결코 바뀌지 않는다.

 바뀌지 않지. 한 번에 바뀔리 없어. 그런 게 사람 마음이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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