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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자꾸 잊게 되는데, 안 좋은 일만큼은 절대 잊히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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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년이라는 세월의 무게는 터무니없이 크다. 그 사이에 사람이 죽을 수도 있다. 행복이나 불행이 찾아왔을 수도 있다. 조용히 살고 있는데, 어느 날 갑자기 15년 전의 과거가 집 안에 흙발로 들이닥친다면 어떻게 될까. 받은 사람은 시공간의 틈새가 억지로 벌어져 불행했을 수도 있는 과거로 되돌려진다. 봉인되어 있던 기억의 상자가 찢기고 지난날의 끈적한 고름이 배어난다. 행복한 과거면 괜찮지만 행복한 현재의 생활에 불행한 과거가 쏟아져 들어오면 당연히 불행해진다.
......
행복하게 생활하던 사람은 불행해지고, 불행하게 생활하던 사람은 한층 더 불행해진다. 일상의 소소한 일을 적은 편지가 15년 동안에 몬스터처럼 변모하여 평온한 인정사정없이 파괴한다. 당사자로서 나는 그 점을 절실하게 통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