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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지 않는
폴 오스터 지음, 이종인 옮김 / 열린책들 / 2011년 1월
평점 :
절판


 ‘폴 오스터’가 어떤 작가인지 전혀 몰랐다. 그저 -책의 소개에 나와 있듯이- 소설의 형식을 끊임없이 탐구하고, 소설 속의 소설이라는 기법을 즐겨 써온 작가라는 사실과 이 소설에서 1인칭, 2인칭, 3인칭의 시점을 모두 사용하는 독특한 구조를 사용했다는 사실에 관심을 가졌을 뿐이다. 그리고 그가 자주 써왔다는 그 기법과 독특한 구조를 직접 만나본 지금에 와서는, ‘폴 오스터’라는 작가를 향한 끌림이 괜한 것이 아니었다는 사실을 확실히 느낄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왠지 그의 다른 작품들도 하나씩 찾아 봐야겠다는 생각마저 들만큼… 

 

 『보이지 않는』은 주인공 ‘애덤 워커’가 ‘루돌프 보른’이라는 남자를 만나게 되면서 겪게 되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1967년, 워커가 우연하게 참석한 파티에서 보른과 마고라는 이름의 비현실적인 느낌이 드는 프랑스인 커플을 만나게 된다. 두 번째 만남에 워커는 보른으로부터 그가 원하는 잡지의 창간을 맡아서 해달라는 제안을 받게 되면서 그와 함께 하게 되지만, 예상치 못한 사건으로 인해서 그의 삶은 뒤틀리게 된다. (혹은 그렇게 생각하게 된다.) 여기서 그 스토리만큼이나 주목할 점은, 이 이야기가 ‘액자식 구성’, 즉 ‘이야기 속 이야기’라는 사실이다. 또한 그 이야기는 〈봄〉, 〈여름〉, 〈가을〉이라는 제목으로 나뉘어 전제 3부로 되어있으며, 각각 1인칭, 2인칭, 3인칭으로 시점이 변화한다는 사실이다. 크게 보면 이 책은, 나이가 든 애덤 워커가 지난날들을 돌아보면서 쓴 회고록이라고 할 것이다. 진실하고 담담하게 써내려간… 적어도 처음에는 그렇게 생각하게 된다. 하지만, 그와 관계된 사람들의 이야기들을 조금씩 듣다보면 그의 이야기가 진실이었는지 거짓이었는지, 현실 속의 일들인지 상상 속의 일들인지 구분조차 가지 않는 모호함으로 바뀌어버린다. 그러고는 결국 진실과 거짓, 현실과 상상의 경계에 서서 멍하니 어딘가를 쳐다보게 된다… 

 

나 자신을 1인칭으로 서술함으로써,
나는 나 자신을 질식시켰고 〈보이지 않는〉 존재로 만들었다.
그리하여 내가 찾고 있던 것을 찾는 게 불가능해졌다.
나를 나 자신으로부터 떨어트릴 필요가 있었고
한 걸음 뒤로 물러서서 나 자신과 나의 주제(바로 나 자신) 사이에
약간의 공간을 두는 것이 필요했다. -P95~6
 

 

 가끔씩은 그냥 책을 따라가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벅차서-멍하니 어딘가를 쳐다보다가…- 그 제목을 잊어버리게 되는 때가 있다. 이 책 역시도 ‘보이지 않는’을 언급하는 이 부분이 없었다면 아무런 생각도 없이 그냥 지나갔을지 모른다. 이 책에 관심을 갖게 된 이유 중 하나가 ‘1인칭, 2인칭, 3인칭의 시점을 모두 사용하는 독특한 구조’에 있었는데, 그것이 신기하고 궁금하다는 생각만 했지 왜 그런 구조를 사용하는지 생각조차 하지 않고 있었으니… 내가 책을 읽는 것이 읽는 것이 아니라는 -이 책의 흐름과도 같은- 생각마저 든다. 

 

 어쩌면 진실인지 거짓인지, 현실인지 상상인지 모를 그 모호한 결론이, 결론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결론이라는 것-그런 것이 과연 있을까, 싶은 생각마저 든다-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것의 존재 유무와 상관없이 그것을 찾아가는 과정이 보다 중요한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을 해보게 되는 것이다. 이 책의 제목인 『보이지 않는』이라는 말에, 시점의 변화를 더해서 생각해보면, 보다 분명해지는 것이 느껴진다. ‘나’에서 시작해, ‘너’로 시선을 옮겨가고, 마지막에는 ‘그’로 나타나는 시점의 변화가 나를 나와 떨어지게 만드는, 그래서 한 걸음, 또 한걸음 떨어져서 나를 보게 만드는 그런 시도 자체가 중요한 것이 아닌가 하는… 그 속에서 현실과 상상 속의 경계에 놓이는 것은, 인간의 기억이라는 본질 그 자체가 가져다주는 원래의 모호함으로 인한 당연한 것이 아닐까 싶다. 진실로 받아들이게 되면 그것이 진실이 되고, 거짓으로 받아들이게 된다면 그것이 거짓이 되는 것, 그것이 우리가 기억해야 할 진짜 현실인 것은 아닐까?! 

 

 이 책의 소개 글 중에 ‘하나의 우발적 사건이 우리의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칠 수 있는지 이야기한다.’라는 말이 있었다. 솔직히 다른 것은 제쳐두고 그 하나의 우발적 사건이 뭘까, 그 사건이 -우리의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치기 이전에- 이 이야기속의 주인공에게 미친 영향은 어떤 것일까에 집중을 했다. 어떤 우발적 사건이 있긴 있었고, 그 사건이 주인공 ‘애덤 워커’의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친 것은 틀림없는 사실-그 과정과 결론에 상관없이-이다. 하지만 과연 그것이 중요한 것일까, 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워커의 삶을 혼란으로 밀어 넣었다는 그 사건. 그 사건, 단 하나만으로 그의 삶이 혼란에 빠졌다고 말할 수 있을까?! 단지 그것은 자신의 삶을 뒤돌아봄에 있어서 아주 다양한 것들 중의 하나에 지나지 않았던 것은 아닐까, 라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다. 그저 자신의 의지로 혼란에 빠진 후, 뒤늦게 그 혼란의 정당화를 위한 핑계를 찾으려고만 했던 것은 아니었을까?! 혼란이라는 이름으로 나타나는 개인의 두려움을 베트남 반전 시위가 절정에 달하던 1967년이라는 시대적 상황과 결합시켜, 전쟁-혹은 그것으로 유발되는 모든 것들-이라는 두려움과 ‘루돌프 보른’을 동일 선상에 놓고 바라보며 모든 것의 원인을 그것으로 돌려버리려는 인간의 보이지 않는 또 다른 모습을 보여주려고 한 것을 아니었을까?! 

 

 『보이지 않는』이라는 제목에 어울리게, 이 소설에서는 내가 찾아낼 수 있는 어떤 요소들보다, 아직까지 나에게 『보이지 않는』 어떤 것들이 더 많다는 느낌이 든다. 그 어떤 것들이 어떤 것인지 아직은-혹은 먼 훗날까지도- 모르겠지만, 그런 것들이 있다는 사실과 그런 것들을 찾아 갈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으로 인해서 더 재미있게 느껴지는 작품, 『보이지 않는』이 아니었나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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