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덕일의 여인열전 - 보급판, 반양장본
이덕일 지음 / 김영사 / 2003년 2월
평점 :
절판


제가 여성문제에 대해 관심을 갖기 시작한 건 결혼하면서 부터였습니다. 그 전에도 나름대로 페미니스트인 척 했었지만 관념적인 수준에 머물렀죠. 막상 제 문제가 되면 몸에 밴 '남존여비' 혹은 '남성우월'의 습속을 버리지 못했습니다. 뭐 지금도 완전한 페미니스트라고 할 순 없지만 결혼 전에 비해 훨씬 실질적인 문제인식과 실천의지를 가지고 있는 건 확실합니다.

결혼하고 나서 여성의 삶에 눈 뜨면서 아내, 어머니, 할머니, 이 땅의 모든 여성들의 인생에 대해 진정으로 아파하고 공감하게 되었습니다. 지금은 겉으로 보기엔 결혼 전보다 더 권위주의적인 남자로 바뀐 듯해도 관념이 아닌 실질적인 페미니스트가 돼 가고 있다고 자부하고 있습니다.

신혼초엔 요즘보다 훨씬 설거지를 자주 했습니다. 하지만 그 때는 설거지 한 번에도 "해준다"라는 생각이 있었는데 지금은 밥하고 빨래하고 청소하고 설거지 하는 건 부부가 함께 하는 가사일이라는 인식을 하게 됐으니 대단한 진전이지요. 사실 지금도 대부분의 가사일을 아내가 주도적으로 합니다만 그건 남녀의 차이를 인정한 서로의 합의 사항이기 때문에 이전에 당연시했던 사고방식과는 많이 다릅니다. 아내가 저보다 그런 일에 능숙하기 때문에 역할을 나눈 것이죠. 저는 그 대신 힘쓸 일,고치고 손 보는 일을 도맡아 합니다. 물론 다른 가사일의 보조역할도 충실히 하고 있습니다. 일단 상황에 따라 니 일 내 일 구분없이 함께 한다는 사고의 전환은 이루어진 셈이니 대단한 발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얼마 전 신문에 우리나라의 화폐인물 중 여성이 없어서 문제가 있다는 기사를 읽은 적이 있습니다. 맞는 말입니다. 그런데 혹자는 얘기할 겁니다. 사실상 화폐에 찍을 정도로 위대한 여성 인물이 없어서 그런 것 아니냐 고 말이죠. 물론 남성중심의 역사 속에서 여성의 활동이 극히 제한되었기 때문에 뛰어난 업적을 이룬 여성위인의 수가 절대부족한 건 사실입니다만 우리 역사에도 자랑스런 여성들이 많았습니다.

이 책은 그런 여인들의 삶을 노래한 책입니다. 그런데 이 책이 선정한 열전의 주인공들은 그 동안 우리가 알고 있던 상식과는 동떨어진 인물들입니다. 이 책은 일반에 많이 알려진 여성인물들은 다루지 않고 있습니다. 열전의 주인공 24분이 전통적인 "현모양처"와는 거리가 있는 사람들입니다. 오히려 우리의 상식 속에서 악녀의 이미지로 각인 돼 있는 여성들이 주인공인 경우가 더 많을 정도입니다.

이런 여성들을 주인공으로 삼았다고 해서 작가가 무조건적인 뒤집어보기로 억지를 부리고 있는 건 아닙니다. 최근 독특한 역사해석으로 주목을 받고있는 역사학자답게 분명한 근거와 예리한 역사해석을 바탕으로 그 동안 남성중심의 평가 속에서 의식적으로 폄하된 여인들의 용기있는 삶을 의미있게 되살려내고 있습니다.

전적으로 공감하는 작가의 말을 아래 인용합니다.

<이 땅의 모든 남성들은 어머니의 아들일 뿐 아니라 아내의 남편이자 누이의 형제이며 딸들의 아버지라는 점을 이 땅의 남성들이 깊게 인식하는 것이 양성 동등사회의 출발점일 것이다. 페미니즘을 단순히 "여성도 인간이라는 믿음"이라고 규정한 글로리아 스타이넘의 언명은 이런 점에서 가치롭다. 그의 "사람들은 왜 한 집단이 다른 집단을 지배해야 한다고 생각하는가 ? 왜 지배 대신에 협동이 있으면 안 되는가 ?" 라는 질문처럼 증오보다는 사랑이, 대립보다는 협동이 인간사 모든 갈등관계의 궁극적 해결책임을 인식하는 것이 남녀평등 사회 도래의 첩경일 것이다.
다시는 여성이라는 이유로 눈물 흘리는 나의 어머니이자 아내, 누이이자 딸들이 존재하지 않는 사회를 갈구하며, 여성이라는 이유로 억압 받았던 우리 역사의 모든 여성들에게 이 책이 작은 위로이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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