좀 삐딱한 성격이 있는 저는 남들이 다 "YES"라고 하면 혼자 "NO"라고 하고 싶어집니다. 물론 남들이 다 "NO"라고 하면 혼자 "YES"하고 싶고 말이죠. 좋지 않은 성격이란 건 아는데 잘 고쳐지지 않습니다. 모든 사람이 한 목소리로 말하면 일단 의심부터 하게 되고 가능한 다수와 다른 생각을 해 볼려고 하는 기질이 있습니다. 영화나 책도 마찬가지입니다. 연일 언론과 광고에 오르내리며 호평을 받으면 그냥 읽기가 싫어집니다. 그러다가 볼 만한 사람, 읽을 만한 사람들이 거의 다 보고 나면 그 때서야 볼 마음이 생깁니다. 영화나 책도 유행이란 것이 있는데 이렇게 때를 놓치고 나중에 접하다 보면 간혹 시대적으로 의미 없는 감상이 되곤 합니다. 시나리오 쓸려면 시류에 제때 제때 맞출 줄도 알아야 하는데 이런 고질병을 고치기가 어렵습니다. 이 책도 평소 같았으면 지금 읽을 생각을 안했을 책입니다. 요즘 언론마다 파울로 코엘료 책광고로 도배를 하다시피 하더군요. 이전 같았으면 일단 제껴 놓고 다음에 볼 생각을 했을텐데 이번엔 이상하게 끌리더군요. 평소 책이나 영화는 궁합이 맞아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기 때문에 이번엔 직감을 믿어 보기로 했습니다. "연금술사"는 어른들을 위한 동화 혹은 우화라고 해야겠죠. 생떽쥐베리의 "어린왕자"와 칼릴 지브란의 "예언자" 그리고 리처드 바크의 "갈매기의 꿈"을 섞어 놓은 것 같다고나 할까요 ! 짧고 평이한 글이지만 심오한 인생의 진리들을 설파하고 있는 책입니다. 보통 이런 종류의 책을 읽고나면 간혹 좀 허탈해지는 경우가 있습니다. 읽을 때는 감동을 받았는데 읽고 나서도 인생이 별로 바뀔 기미를 안 보이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죠. 그래서 한동안은 이런 심오한 이야기 보다는 구체적이고 쪼잔한 논픽션 쪽에 더 끌린 적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요즘 제가 인생의 새로운 기로에 서 있기 때문일까요 ? "연금술사"는 유별나게 마음에 와 닿았습니다. 책속의 주인공 산티아고가 양치기를 그만두고 보물을 찾기 위해 피라미드를 향해가는 여정이 지금의 제 심정에 잘 맞았기 때문일 거라고 추측합니다. 세상을 많이 둘러 보기 위해 다니던 신학교를 나와 양치기가 된 산티아고는 똑같은 꿈을 두 번 꾸고 집시를 찾아가 꿈풀이를 듣습니다. 집시 할머니는 이집트 피라미드에서 보물을 발견할 꿈이라고 알려 줍니다. 산티아고는 그 말을 믿지 않았지만 광장에서 책을 읽을 때 다가온 한 노인으로부터도 같은 계시를 듣습니다. 마침내 "자아의 신화"를 믿게 된 산티아고는 양들을 판 돈을 가지고 무작정 바다 건너 아프리카로 떠납니다. 산티아고의 앞길은 그다지 순탄하지도 그렇다고 절망적이지도 않게 예상하지 못했던 모험의 방향으로 열려 있습니다. 코엘료가 들려주는 이야기는 어찌 보면 뻔한 이야기지만 결코 가볍다 할 수 없는 삶의 진리를 담고 있습니다. 코엘료는 지식으로 얘기하지 않고 현란한 수사로 얘기하지 않습니다. 그는 간결하고 쉬운 말로 단번에 깊은 통찰에 이르는 기술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것이야말로 바로 모든 금속을 금으로 만드는 연금술사의 비법인 것입니다. 지금까지 연금술에 공식적으로 성공한 연금술사는 없었다고 알고 있습니다. 코엘료도 여느 연금술사들처럼 사기꾼에 불과할지도 모르겠습니다. 한데 역사 속에는 죽을 때까지 완벽하게 사람들을 속인 연금술사도 있었더군요. 그는 비록 사기꾼이었지만 그를 믿고 그를 통해 진리에 좀 더 다가간 사람들도 있었고요. 비록 코엘료의 연금술이 사기일지는 모르겠으나 저는 한 번 믿어 보고 싶은 심정입니다. 때때로 사람들은 의도하지 않은 일로 인해 진리를 발견하는 경우도 종종 있으니까요. 그건 그렇고 코엘료의 다른 책들은 당분간 읽고 싶지 않네요. 이 이상의 또 다른 얘기가 나올성 싶지 않아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