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닭털 같은 나날
류진운 지음, 김영철 옮김 / 소나무 / 2004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사람 사는 건 어디나 비슷한가 봅니다. 현대 중국 작가 중에 가장 영향력 있는 작가라는 류진운의 소설을 보고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 국가 체제도 다르고 경제적 조건도 다르지만 중국인의 삶도 우리의 삶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특히 소시민의 삶은 신기할 만큼 닮았습니다.
중편 소설인 "닭털 같은 나날"은 북경의 한 소시민 임(林)의 이야기입니다. 임은 시골 출신으로 베이징에 올라와 대학을 마치고 역시 대학을 마친 아내를 만나 맞벌이를 해가며 아이를 키우는 소시민입니다. 임은 싼 두부 한 근를 사기 위해 새벽에 나가 줄을 서고 돈을 아끼기 위해 수돗물을 훔치기도 하지만 옳지 않은 일엔 양심의 가책을 느끼고 오래 지속하지도 못하는 사람입니다.
아내의 직장이 멀어 가까운 곳으로 옮기기 위해 청탁을 하지만 어설픈 행동 때문에 실패하기도 하고 아이의 유치원 문제로 이웃의 도움을 받지만 자존심 상해 하기도 합니다.임은 도시의 팍팍한 삶을 이어가기 위해 약은 짓도 해야하고 깎쟁이 짓도 해야 하지만 그런 일엔 능숙하지 못합니다.
시골에서 병을 고치기 위해 베이징으로 올라 온 은사를 제대로 대접하지 못하고 보냈다 돌아가셨다는 얘기를 듣고 후회 하지만 그것도 잠시일 뿐입니다. 별 일도 아닌 청탁을 받아 해결해주고 댓가로 받은 전자렌지에 흐뭇해 하는 그는 영락없이 우리 주변에서 볼 수 있는 이웃의 모습입니다. 아니 바로 제 모습입니다. 중국 소시민 임의 이야기를 들으며 쓴 웃음을 지을 수 밖에 없는 건 제가 그와 똑같은 삶을 살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 책에 함께 수록된 "관리들 만세" 나 "1942년을 돌아보다"는 다소 계몽적이기긴 하나 능청스러운 반어법과 신랄한 풍자가 돋보이는 작품입니다. 관료조직의 복잡한 권력 관계와 복마전 같은 음모와 암투를 실감나게 그린 "관리들 만세" 속 관리들은 우리 사회의 관리나 대기업 조직의 간부들 모습과 너무나 닮았습니다. 이건 딱 우리 얘기네 라는 생각이 듭니다.
"1942년을 돌아보다"는 1942년의 하남성 대기근에 대한 리포터 형식의 글인데 민초들의 생존은 아랑곳하지 않고 자신의 안위만 돌보는 권력자들에게 날카로운 칼날을 들이대고 있는 글입니다. 세상의 모든 정치지도자들과 관리들에게 꼭 읽어 보라고 권하고 싶습니다.
"통치자는 언제나 통치자이다. 통치자가 되기만 하면, 피부색과 민족에 관계없이, 세계 일류의 의식주와 교통수단을 누릴 수 있다. 통치하는 민중과 전혀 동떨어져 있더라도 마찬가지이다. 그래서 나는 예전부터 각국의 통치자들이 악수하고 환담하는 것에 찬성한다. 왜냐하면 그들이야말로 진정으로 동일한 계급의 형제들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