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해방 전후 - 1940-1949
유종호 지음 / 민음사 / 200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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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역사논쟁이 뜨겁죠. 그런 논쟁을 볼 때 마다 답답함을 많이 느낍니다. 당시 상황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니 냉정한 판단이 어려워서 그렇습니다. 가령 친일파 논쟁을 보면 누구 말이 옳은지 판단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습니다. 명백한 근거를 가진 주장도 있지만 대부분 단편적인 몇가지 사실만으로 친일이다 아니다를 판단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더구나 그 주장에 다분히 개인감정이 들어있는 경우를 보게 되면 그 주장의 정당성을 의심하게 됩니다.

유종호 교수의 "나의 해방 전후"에도 그런 얘기가 나옵니다. 창씨개명을 한 사람 중에도 애국지사가 있었던 반면 친일파이면서도 창씨개명을 하지 않은 사람도 있었다는 겁니다. 시대상황을 이해하지 않고 단순하게 창씨개명 여부만 가지고 친일이다 아니다 판단할 수 없다는 얘깁니다. 유종호 교수는 이런 문제를 깊이 인식하고 시대를 판단하는데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으로 이 책을 썼다고 합니다.

이 책은 1940년부터 1949년까지 10년의 시간을 기록한 부분 미시사입니다. 유종호 교수는 우리 나이로 7살 국민학교 1학년부터 17살 중학교 때까지 자신이 몸소 듣고 본 것들을 가감없이 기록했습니다. 뛰어난 평론가 답게 쉽고도 유려한 필치로 담담하게 써내려 간 기록은 어떤 역사기록 보다 생생하게 와 닿습니다. 비록 좁은 지역과 얕은 시야에 국한되지만 이런 기록이야말로 당시의 실상을 정확하게 알려주는 정보입니다.

가끔 과거를 알고 싶어서 자료를 뒤적일 때가 있습니다만 빈약한 정보로 분명한 실상을 알 수 없어 매우 안타까웠던 적이 많습니다. 공식자료나 신문의 기사는 사실관계만 기록하고 있을 뿐 배경이 설명되지 않는 경우가 많고 시중에 나와 있는 자서전이나 회고록은 대부분 유명인물에 국한돼 자기자랑 하기에 바빠서 정작 필요한 정보를 찾기 어렵습니다.

유종호 교수도 서두에 밝히고 있지만 저도 많은 분들이 이렇게 자신이 보고 들은 과거의 이야기를 많이 남겨 주길 바랍니다. 유명한 사람 말고 보통 사람의 평범한 기록이면 더욱 좋겠습니다. 이런 기록들이 많이 쌓일 때 정확한 시대고증이 이루어지고 그것을 바탕으로 냉정한 역사판단을 할 수 있을 겁니다.

이 책을 읽으면서 마음이 바빠졌습니다. 1920년생인 우리 할머니나 1941년생인 우리 아버지를 생각 했습니다. 이 분들 돌아가시기 전에 하나라도 더 많은 얘기를 듣고 기록해 둬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과거를 정확하게 아는 것이 밝은 미래를 열어가는 시작이라고 볼 때 부모와 조상의 과거를 아는 것이 자신을 아는 시초가 될테니까요.

이런 생각을 하다보니 이런 서펑도 큰 의미가 있네요. 자잘한 서평들이지만 이런 기록들이 모이고 쌓이면 후손들에게 훌륭한 과거의 자료로서 가치를 지닐 수 있으리라 여겨집니다. 역사를 기록하는 심정으로 솔직한 느낌들을 기록하겠다고 다짐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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