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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삼관 매혈기
위화 지음, 최용만 옮김 / 푸른숲 / 2007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장이모우 감독의 "인생"이란 영화가 있습니다. 중국의 현대사를 관통하는 한 이름없는 인생을 다룬 영화입니다. 저는 이 영화를 아주 좋아합니다. 한 사람의 인생을 이렇게 압축적이고 은유적으로 보여주는 영화는 흔치 않기 때문입니다.
저는 영화를 하고 싶어 하는 사람이라 장이모우 감독에 대해서만 감탄하고 있었는데 알고보니 "인생"의 원작 소설이 "活着"이라고 하고 작가 이름이 "위화"라고 누가 일러 주었습니다. 그래서 읽게 된 소설이 "허삼관 매혈기"입니다.
허삼관 매혈기는 위화가 "活着"이후 4년 만에 내 놓은 소설인데 거의 동일한 주제의식과 형식으로 한층 심화된 구성과 글솜씨를 보여준다고 하더군요.
이 책을 읽으면 영화 "인생"이 장이모우 감독의 작품이 아니라 "위화"라는 소설가의 작품임을 알 수 있습니다. 이 책도 어딘가 덜떨어진 것 같은 허삼관이란 사람의 인생을 그리고 있습니다. 허삼관은 전형적인 중국인의 얼굴입니다. 아니 어쩌면 우리 자신의 다른 이름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우리나라 사람도 아닌 남의 나라 사람의 이야기를 읽으며 이렇게 웃어 본 적도, 이렇게 울어 본 적도 전에는 없었습니다. 웃고 있는데 눈물이 나고 울음이 채 그치기도 전에 웃음이 번지니 이 무슨 조화입니까 ! 누가 책을 읽고 있는 저를 보면 분명 미쳤다고 했을 겁니다.
때론 능청스럽게, 때론 냉정하게 하지만 따뜻한 휴머니즘을 깔고 작가가 말하는 허삼관의 인생은 감동을 주기에 충분합니다. 이 책은 세상의 주인은 잘난 사람,힘 있는 사람이 아니라 이름없는 착한 이웃들임을 알려 줍니다. 세상사는 이치가 중국이나 한국이나 같음을 알려 줍니다. 중국현대사의 어두운 면을 슬쩍 엿보는 건 이 책의 보너스겠지요.
정치나 사회에 대한 관심을 놓치지 않으면서도 대중성을 확보하는 작가의 시선과 글솜씨에 고개를 숙입니다. 무엇보다도 "인간"을, 그리고 인간에 대한 "연민"을 잃지 않는 작가의 따뜻한 마음을 존경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