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이 말하지 않는 23가지
장하준 지음, 김희정.안세민 옮김 / 부키 / 2010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장하준 교수의 신간은 솔직히 실망스럽다. 장교수가 그 동안 다른 책을 통해 주장해오던 내용이 그대로 반복되기 때문이다. 장하준 교수의 책은 계속해서 같은 얘기만 한다. 물론 그렇게 말해도 사람들이 들어먹질 않으니 계속한다고 말할 수 있겠지만 이젠 슬슬 지겹다. 장하준 교수의 책을 처음 접한 사람들은 신선한 충격을 받겠지만 그의 책을 꾸준히 읽어 온 나 같은 사람들은 동어반복이 지루할 듯도 하다. 

 특히나 장교수의 지적을 여러 번 듣다 보니 뭔가 좀 미심쩍다. 처음 장교수의 책을 접했을 땐, 경제학에 문외한인 일반인의 입장에서 거스를 수 없는 대세라고 생각했던 신자유주의 물결을 정면으로 반박하는 내용을 보며 신선한 충격을 받았었다. 그런데 그 뒤 경제학에 관심을 가지고 여러 주장들을 두루 섭렵하다 보니 한 가지 의문이 든다.  

 과연 장교수가 주장하는 식의 "순진한 자유시장주의자"가 현대에 존재하느냐 하는 의문이다. 현대사회에, 좌우의 이념을 떠나, 정부는 최소한의 역할만 해야하고 모든 무역은 자유로워야 하며 기업의 자유는 최대한 보장되어야 하고 경쟁만이 선이고 복지는 나 몰라라 하는 "진짜로" , "순진한", "자유시장주의자" 정치가들이 있단 말인가? 순진한 대중이야 있겠지만 이런 식의 정치관을 가진 정부는 현재 지구 상 어디에도 없다고 본다. 물론 그런 이데올로기를 다른 나라에 강요해 이익을 얻으려는 국가들이 있는 건 사실이다. 그런데 그런 국가들도 장교수의 말처럼 자기들은 뒤로 호박씨 다 까고 앉아 있는 게 현실이다. 

 장교수의 주장에 따르면, 장교수의 이론을 가장 잘 구현한 정부가 "박정희 정부"가 될 듯 싶다. 다른 책에서도 여러 번 주장했던 바 있고 그런 이유로 장교수는 좌.우파 모두에게 지지받고 공격받는 묘한 위치에 서 있기도 하다. 당연히 장교수는 대한민국을 세계경제의 특별한 우등생으로 취급한다. 그렇다면 지금 시점에서 대한민국은 어떤 정책을 시행해야 하는가? 장교수의 이론을 충실히 따르자면 이제 갓 선진국 문턱에 올라 선 우리나라로선 후발국가들이 오르지 못하게 "사다리를 걷어차"야 하고 "신자유주의"를 강요해야 하지 않을까? 물론 내부적으론 "그 동안 잘 해 온 것처럼" 정부의 역할을 더 강화하고 이젠 복지도 늘리고 기업도 규제하면서 말이다. 

 이 말이 억지인 건 나도 안다. 알면서 이런 억지를 부릴 수밖에 없는 것은 전세계가 이미 장교수가 주장하는 내용을 잘 숙지하고 있고 그걸 목표로 치열하게 경쟁하고 있기 때문이다. 장교수의 주장은 당위론이지만 현실에 적용하기 매우 어렵다는 말이다. 비유하자면, 사람들은 누구나 평화가 좋은 줄 안다. 전 인류가 일시에 칼을 녹여 쟁기를 만든다면 얼마나 좋겠나. 하지만 그런 이상은 현실에선 쉽사리 이루어지지 않는다. 지금 장교수의 주장 또한 그렇다. 전세계가 서로 나누고 오순도순 서로 챙겨주고 살면 얼마나 좋을까! 진심으로 그런 세상을 바란다.  

 하지만 인간은 이기심을 갖고 있고 국가는 더 큰 이기심을 가진 조직이다. 그러니 장교수의 주장이 대한민국에 대한 "비열하지만 큰 이익이 되는" 충고라면 받아들일 수 있지만 기껏 어렵게 얻은 지위를 포기하고 "착한 사마리아인"이 되라는 뜻이라고 한다면 선뜻 용납하기 어렵다. 장하준 교수는 이제 같은 얘기 자꾸 하지 말고 진흙탕 개싸움 같은 지구현실에 적용할 수 있는 구체적인 대안을 연구해줬으면 한다. 장교수 혼자만 "순진한 자유시장주의자"로 남지 않길 바라는 마음에서 간절히 다음 책을 기대해 본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