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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야 - White Nights
영화
평점 :
상영종료
흑백영화는 흑백영화만의 멋이 있습니다. 동양의 전통 수묵화처럼 명도의 차이로만 표현되는 단색의 화면이 희한하게 깊고 오묘한 느낌을 줍니다. 사실 검정은 모든 색의 혼합이기도 합니다. 玄玄이라는 단어는 지극히 깊고도 멀다는 뜻으로 그 한계를 알 수 없는 무한의 경지를 말합니다. 玄妙라는 단어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래선지 리얼리티라는 점에서 분명 약점이 되어야할 흑백영화가 컬러풀한 화면보다 오히려 깊은 울림을 주나 봅니다. 루치노 비스콘티 감독의 "백야"도 흑백의 깊은 멋을 잘 보여주는 걸작입니다. 지금 보아도 흑백이라는 사실이 영화의 재미를 떨어뜨리지 않습니다. 아니, 오히려 흑백이라서 더 좋은 영화입니다.
도스또예쁘스끼 원작을 영화화 한 작품으로 이야기는 어쩌면 단순합니다. 소심하고 여린 마음의 청년 마리오(마르첼 마스트로얀니)는 크리스마스를 앞 둔 백야의 어느 늦은 밤 다리 위에서 우는 한 아가씨를 보고 안타까운 마음에 말을 붙이고 집까지 바래줍니다. 울음을 멈추고 미소로 감사하는 순수한 얼굴의 아가씨 나탈리아(마리아 쉘)는 여전히 슬픔에 잠겨 있지만 일단 마리오를 보내기 위해 다음날 밤에 다시 만날 약속을 합니다. 마리아는 다음 날 마리오를 만날 생각이 없었지만 다시 마리오와 마주치고 마침내 자신의 사연을 털어놓습니다. 나탈리아는 일 년 후 다시 만나길 약속하고 떠나 버린 애인을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죠. 순진한 처녀 나탈리아는 불붙듯 사랑에 빠지고 일편단심 그 남자를 기다려왔습니다. 하지만 약속한 다리 위로 남자는 나타나지 않았고 마침 마리오가 보게 된 것이었습니다.
마리오는 순수한 나탈리아에게 반하여 그 남자는 돌아오지 않을 거라고 말합니다. 수긍할 수 없는 나탈리아, 남자는 이미 이 도시에 돌아와 있다고 말합니다. 마리오는 그렇다면 더더욱 그는 나타나지 않을 것이라며 나탈리아에게 미망에서 깨어나라고 설득합니다. 하지만 나탈리아는 희망을 버리지 않고 그 남자에게 편지를 대신 전해주길 부탁합니다. 마리오는 나탈리아를 보내자마자 편지를 찢어 버립니다. 다음 날, 이번엔 마리오가 나탈리아를 피하는데 또 다시 우연히 둘은 마주치고, 편지가 전해졌으리라 믿는 나탈리아의 희망에 가득 찬 얼굴을 본 마리오는 차마 말 못하고 기다리는 동안 즐거운 시간을 함께 보냅니다. 점점 마리오의 진심에 마음을 여는 나탈리아, 마침내 마리오는 편지를 찢어 버린 사실을 고백하고 두 사람은 서로의 사랑을 확인합니다. 사랑의 환희로 가득 찬 두 사람이 눈 내리는 백야의 밤길을 하염없이 거니는데...... 그 때 다리 위에서 누군가를 기다리는 한 남자. 나탈리아가 그렇게도 기다리던 그 남자였습니다.허무하게도 나탈리아는 마리오를 버리고 그 남자에게 달려 가 안깁니다. 눈물을 흘리며 돌아서는 마리오의 쓸쓸한 뒷모습에 주인 잃은 강아지 한 마리가 따라 붙습니다.
울다가 웃으면 어떻게 된다는 얘기도 있지만 여주인공 나탈리아 역의 마리아 쉘은 절묘한 표정연기를 보여줍니다. 너무나 애절하게 울다가 문득 눈물을 닦고 씩 미소를 지으면 보는 남자라면 누구라도 사랑에 빠지지 않을 수 없습니다. 순수한 시골 처녀의 매력을 완벽하게 연기합니다. 이탈리아를 대표한 미남 배우 마르첼 마스트로얀니의 열에 들뜬 여린 청년 연기도 훌륭합니다. 깊은 음영과 모던한 화면, 절묘한 미쟝센과 애절한 음악 등 영화적인 면도 나무랄 데 없습니다. 한 번 보면 잊을 수 없는 영화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