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사가 사랑한 수식
영화
평점 :
상영종료




 새로 부임해 온 수학선생님, 머리에 루트(√) 꼬리를 달고 자칭 루트라고 밝힌 선생님은 자신이 수학선생님이 된 이유를 이야기합니다. 선생님의 별명을 지어 준 사람은 교통사고로 80분 밖에 기억을 유지하지 못하는 수학 박사였다고 말합니다. 루트 선생이 10살 때 미혼모인 루트의 어머니 교코(후카츠 에리)는 가정부로 박사(테아로 아키라)를 처음 만났습니다. 교코를 고용한 사람은 박사의 형수, 형이 죽고 두 사람이 함께 차를 타고 가다 사고를 당했다고 합니다. 그 날 이후 박사의 기억은 사고 전에 머물러 있고 그 이후의 일은 80분만 기억할 수 있다고 합니다.
 교코를 처음 본 박사는 신발 사이즈를 물어봅니다. 24라고 대답하자 고결한 숫자라고 합니다. 24는 4의 계승(階乘), 즉 1x2x3x4이기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박사는 세상 모든 것을 숫자로 파악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기억을 못하기 때문에 두 사람의 문답은 매일 똑같이 반복됩니다. 교코는 숫자와 세상을 사랑하는 박사의 고결한 인품에 반합니다. 교코가 일하는 동안 어린 아들이 혼자 지내는 걸 우연히 알게 된 박사가 아이를 혼자 두면 안 된다며 아이를 부릅니다. 아이를 처음 만난 박사가 정수리가 납작하다며 머리 속에 현명함이 가득할 것 같다고 합니다. "너는 루트다. 어떤 숫자든 꺼려하지 않고 자기 안에 보듬는 실로 관대한 기호, 루트야." 그 날 이후 아이는 루트가 됩니다. 어린 루트는 박사와 만나면서 숫자와 세상의 아름다움을 배웁니다.
 그러던 어느 날, 루트의 야구경기에 응원갔던 박사가 앓아 눕습니다. 교코는 밤새워 간호합니다. 그런데 그 장면을 본 형수는 교코를 해고합니다. 형수와 박사에겐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한 아픈 비밀이 있습니다.



*여기서부턴 제 감상인데 스포일러 있습니다. 영화를 아직 못 보신 분은 참조하세요.
 영화 속엔 오일러 수식이 중요한 소재가 됩니다. e^πi+1=0 라는 것인데 자세한 건 어려워서 모르겠고 무리수와 무리수가 만나 1이 더해지면 0 즉, 완전한 무에 이를 수 있다는 비유로 나옵니다. 박사가 꿈꾸는 이상이죠. 그런데 박사의 형수가 보관하는 편지엔 e^πi=-1 이라고 쓰여 있습니다. 처음엔 무슨 뜻인지 몰랐는데 영화의 결말을 보고 다시 돌려 보니 알겠더군요.
 박사의 형이 죽자 박사와 형수는 서로 사랑하는 사이가 되고 아이를 갖게 되었습니다. 세상을 아름답게만 보는 박사의 사랑은 순수했지만 형수에게 세간의 이목은 견디기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영화 속엔 자세하게 나오지 않지만 아이를 지웠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박사는 e^πi=-1 이라는 식을 써서 편지로 보냈던 것이죠. 그 충격이 사고로 이어지고 박사는 그 이후의 기억을 잃어버렸던 겁니다. 이후 박사와 형수의 삶은 고통의 나날이었습니다. 매일 새로운 기억은 잃어 버리고 영원히 과거의 아픈 기억에 묶여 있는 두 사람, 그들을 상징하는 수식이 바로 e^πi=-1 였던 것이죠. 바로 이들 사이에 +1(교코)이 끼어들고 마침내 두 사람은 0(고통에서 해방)을 이룹니다.
 교코가 박사의 손을 잡았을 때, 박사가 말합니다. "여자 손은 차가운 줄만 알았는데.." 영화 속엔 이렇게 슬쩍슬쩍 치고 지나가는 대사들이 많습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세계가 보이는 세계를 떠받치고 있는 거야.","직선은 어디에 있는가,마음으로 보면 시간은 흘러가지 않는다, 지금 여기만 있을 뿐" 등등. 그냥 멋있으라고 쓴 대사인 줄 알았는데 다 꼭 필요한 말들입니다. 영화가 마치 완벽한 수식처럼 군더더기 없고 아름답습니다. 수학을 이용해 이렇게 멋진 이야기를 만들어 낸 원작자 오가와 요코와 잘 표현한 고이즈미 다카시 감독에게 경의를 표합니다. 정말 실제 인물들처럼 느껴지게 딱 그 캐릭터인 배우들의 연기도 나무랄데 없습니다.
영화를 보고나니 다시 수학공부가 하고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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