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교 신입생 때 기숙사에서 같은 방을 쓴 인연으로 중년이 넘도록 친구로 지내 온 두 남자가 L.A를 떠나 캘리포니아의 포도산지 산타네즈 밸리로 와인탐방 여행을 떠납니다. 이태 전 이혼했지만 소설이 출판되면 다시 아내와 재결합 할 수 있다고 믿고 있는 소심한 남자 마일즈(폴 지아메티)가 3류 배우와 성우로 전전하지만 풍족한 삶을 보장해 줄 여자와 결혼하게 된 친구 잭(토마스 헤이든 처치)을 축하하기 위해 와인도 마시고 골프도 치는 일주일 여행을 떠난 것입니다. 이혼한 뒤 2년 동안 여자를 멀리하며 아직도 아내를 잊지 못하고 있는 마일즈는 와인애호가로 와인의 주산지를 찾아 시음도 하며 친구에게 와인을 알려 줄 셈이지만 남자다운 외모에 원초적인(?) 성격의 잭은 와인엔 관심이 없고 오로지 총각으로 마지막 정열을 불태울 생각 밖에 없습니다. 마일즈가 올 때 마다 들르던 레스토랑에 온 두 사람, 잭은 첫눈에 웨이트리스 마야(버지니아 매드슨)가 마일즈에게 호감이 있다는 걸 눈치 챕니다. 잭은 마침 마야의 친구 스테파니(산드라 오)에게 반하고 마일즈의 등을 떠밀어 마야와 더블데이트에 나섭니다. 하지만 첫 만남에 화끈하게 불붙은 잭과 달리 마일즈는 아내가 재혼했다는 얘기를 듣고 우울해 마야가 자신에게 호감이 있다는 걸 알고도 쉽게 마음을 열지 못합니다. 우여곡절 끝에 마일즈도 마야와 하룻밤 함께 하는데 그만 잭이 오는 토요일 결혼한다는 천기를 누설하고 맙니다. 마야는 화를 내고 마일즈는 자신은 진심이었다며 변명해 보지만 마야는 믿지 않습니다. 연이어 마일즈는 자신의 소설이 출판사에서 출판 거부 당한 사실을 전해 듣습니다. 잭은 우울한 마일즈를 달래는데 화난 스테파니가 나타나 오토바이 핼맷으로 일격을 날려 잭의 코뼈를 부러뜨립니다. 그래도 정신 못 차리고 바람을 피워대는 잭과 수습하기 바쁜 마일즈, 예정했던 휴가는 끝나가고 한심한 중년의 철없는 남자들 인생은 별로 달라질 것 같지 않습니다. "어바웃 슈미트"의 감독 알렉산더 페인의 "사이드웨이"는 중년 남자들의 꿈과 사랑을 잔잔하게 그리고 있는 수작입니다. 골든 글로브 7개 부문에 후보로 올랐고 최우수 작품상과 각본상을 수상한 작품이지만 우리나라 관객들에겐 그다지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한국계 배우 산드라 오가 출연한다는 것을 빼곤 우리에게 익숙한 스타들이 나오지 않았기 때문에 더욱 관심을 받지 못한 것 같습니다. 세계적인 와인 산지인 캘리포니아 중부 지방의 아름다운 풍광과 각종 와인을 배경으로 평범하다 못해 조금 한심하기까지 한 두 중년남자의 소박한 여행을 보여주는 이 영화는 은은한 와인 향기처럼 관객의 가슴에 잔잔한 파문을 남깁니다. 달콤한 첫맛에 홀짝홀짝 마시다 보면 어느새 취하게 되는 와인 같은 매력이 있는 영화입니다. 주인공 마일즈와 잭은 세상 어디서나 흔히 볼 수 있는 우리의 모습이기에 그들의 이야기는 정겹습니다. 마일즈가 까다로운 재배조건에서만 자라는 포도로 만드는 "피노(Pinot)"를 좋아하고 잭이 한층 묵직하지만 술술 넘어가는 기분 좋은 맛의 '까베르네(Cabernet)'를 좋아하듯 두 사람은 취향도 스타일도 전혀 다르지만 친구입니다. 피노와 까베르네가 다 같이 와인인 것처럼. 요즘 와인 마시기가 쉬워졌죠.예전엔 고급 레스토랑에서나 맛 볼 수 있던 와인이 이젠 어디서나 싼 가격에 쉽게 구할 수 있는 대중적인 술이 되었습니다. 물론 와인도 천차만별이겠죠. 하지만 까짓거 무슨 상관있습니까 ? 비싼 와인이나 싼 와인이나 와인은 와인입니다. 어차피 맛도 구분 못하는 저 같은 사람에게 와인은 그저 포도주일 뿐이니까요. 고급이거나 싸구려거나 나름대로 향과 맛을 지닌 와인처럼 우리의 인생도 각자 아름다운 인생일 겁니다. 영화 "사이드웨이"는 와인 한 잔 놓고 보면서 조용히 자신을 돌아볼 수 있는 좋은 영화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