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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크레더블 - The Incredibles
영화
평점 :
상영종료
뻔합니다. 스토리 말입니다. 다 어디서 본 듯한 이야깁니다. 007 시리즈나 "스파이 키드"를 합쳐 놓은 이야기라고 보시면 맞습니다. 그래도 재미있습니다. 딱 기대한 만큼 즐겁게 해 줍니다. "토이 스토리"를 만들었던 픽사의 기술은 역시 훌륭합니다만 감탄할 정도는 아닙니다. 이미 우리의 눈도 날로 발전하는 디지털 기술 못지 않게 업그레이드 됐기 때문이겠죠.
이런 거 보다도 제가 보면서 재미있다고 생각한 부분은 주인공 미스터 인크레더블과 그의 아내 엘라스티 걸의 삶에 임하는 태도의 차이였습니다. 악당들로 부터 지구를 지키던 슈퍼영웅들은 미스터 인크레더블이 사람들에게 비난받고 소송을 당하면서 모두 초능력을 감추고 평범한 사람이 돼 버립니다. 미스터 인크레더블과 엘라스티 걸은 결혼하여 아이들 셋을 낳고 평범한 사람이 되어 15년째 살고 있습니다.
여기가 재미있는 부분인데 미스터 인크레더블은 보험회사에서 일하지만 자신의 현재 모습이 마음에 들지 않습니다. 잘 나가던 과거를 잊고 생활에 매몰된 고개 숙인 중년남성인 자신의 자화상이 싫습니다. 회사에선 매일 사장한테 깨지고 집안에서도 아내와 애들에게 별볼일 없는 남편이요 아빠일 뿐입니다. 인크레더블은 현재의 생활에 전혀 적응을 못한 것 같습니다. 그는 다시 슈퍼영웅이 되고 싶어합니다.
그런데 아내 엘라스티 걸은 좀 다릅니다. 엘라스티 걸은 자신의 현재 역할을 남편 보다는 훨씬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고 살고 있습니다. 과거의 잘 나가던 슈퍼걸 시절은 이미 잊어 버린 듯 합니다. 물론 지금도 말 안 듣는 아이들 혼낼 때는 자기도 모르게 옛날 버릇이 나오곤 하지만 미스터 인크레더블에 비하면 분명 현실 긍정적입니다. 아니, 오히려 과거를 잊지 못하는 남편을 질타하며 현실적으로 살아가길 바라는 것 같습니다.
디즈니사가 제작을 하긴 했지만 "인크레더블"이 표방한 가족관은 지나치게 전통적이고 보수적입니다. 우리가 오랜 동안 디즈니 영화와 애니메이션에서 봐 온 그대로입니다. 미스터 인크레더블은 바깥으로 뛰쳐 나갈 때 가장 멋있고 유능한 "남자"가 되지만 엘라스티 걸은 가족을 지키는 "엄마 & 주부"일 때 가장 강하다는 논리입니다. 영화 속에서 엘라스티 걸의 비중이 더 크다고 할 수도 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엄마 & 주부"로서의 비중일 뿐입니다.
하긴 이렇게 말하고 있는 저도 미스터 인크레더블의 심정에 대부분 공감하고 있습니다. 가족을 위해서란 명분하에 제 개인의 자아실현을 꿈꾸니까요. 그러면서 은근히 아내와 가족의 희생을 요구하는 이율배반적인 면이 있습니다. 아내가 엘라스티 걸처럼 위기 때마다 남편을 구해주고 아이들 잘 키우고 가정을 튼튼하게 지켜주길 바라는 것이죠. 남편이자 아빠인 저는 그 발판을 딛고 가족의 대표선수로 성공하겠다는 논리인 겁니다. 물론 남자라고 희생할 부분이 없겠습니까만 생각해보면 좀 치사한 구석이 있습니다. 마누라 애들 놔두고 혼자 "인크레더블" 본 양심의 가책으로 몇 마디 중얼거려며 반성해 봤습니다.
가족을 위해 희생만 하는 대부분의 가장들이 이 글을 보신다면 혹시 화내실지도 모르겠네요. 이 글은 철저하게 저한테 국한된 자기반성입니다. 다른 분들은 가족을 위해 엄청난 희생을 하면서 어깨에 무거운 짐을 지고 가시니 저하고 함께 도매금으로 넘기지 않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