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로비츠를 위하여 - My Piano
영화
평점 :
상영종료




 하늘로부터 재능을 타고난 사람, 천재! 범재는 아무리 노력해도 극복할 수 없는 그들의 재능이 부럽습니다. 사실 더 부러운 건 망설일 필요조차 없는 그들 인생의 이끌림입니다. 천재는 분출하는 재능으로 인해 어떤 어려운 환경에서도 천재성을 드러내기 마련이니까요. 언젠가 신문에서 재즈 피아니스트 신관웅씨의 이야기를 읽은 적 있습니다. 피아노를 너무 치고 싶어 한밤중에 초등학교 교실에 몰래 들어가 누가 들을 새라 풍금 건반 위에 손만 올리고 밤새 소리 없는 피아노를 연주했다는 대목을 읽을 땐 가슴이 뜨거워지더군요.


 창작자가 돼 보겠다고 어려움을 자초한지 수년, 저는 아직까지 제 마음에 드는 작품 한 편 만들지 못했습니다. 그 동안 재능을 주시지 않은 하늘을 원망하고 살았습니다. 그러면서도 자신이 재능 없는 범재인 건 인정하기 싫더군요. 노력이 부족해서 그럴 뿐이다, 한데 주위환경이 너무 안 받쳐준다, 조금만 받쳐주면 나도 숨어 있던 끼를 발굴해낼 수 있을 거다. 그런 생각으로 세상을 원망하며 살았습니다. 그러나 이 영화를 보니 확실히 알겠습니다, 천재는 환경을 탓하지 않는다는 걸.


 나이 서른의 지수(엄정화)도 호로비츠 같은 위대한 피아니스트의 꿈을 버리지 않은 사람입니다. 하지만 지수의 현실은 한심합니다. 위대한 피아니스트는커녕 동네 피아노 학원 운영도 제대로 못해 하루하루 살기조차 힘듭니다. 지수는 주위를 원망합니다. 유학을 갔더라면, 지도 교수에게 좀 잘 보였더라면 성공한 동기들 못지않게 재능을 발휘할 수 있었을 텐데 받쳐주지 못한 여건들이 원망스럽기만 합니다.
 이상과 현실의 괴리에 빠져 허우적대는 지수 앞에 어느 날 광명이 비칩니다. 부모 없이 할머니 손에 자라는 동네 말썽쟁이 경민(신의재)이 절대음감을 가진 천재라는 걸 알아본 거죠. 지수는 경민을 통해 이루지 못한 자신의 꿈을 실현하려 합니다. 하지만 부모를 잃은 마음의 상처를 안고 자라 온 경민은 지수의 뜻대로 맞춰 주지 않습니다. 지수는 그런 경민을 매몰차게 내치며 또 한 번 도와주지 않는 하늘을 원망합니다. 얼마 후, 할머니마저 돌아가시고 고아가 된 경민을 데려 온 지수는 비로소 깊은 상처를 안고 사는 천재소년을 이해하게 됩니다. 경민을 통해 자신을 인정받고 싶었던 지수지만 그녀는 아이의 천재성을 키워주기 위해 더 넓은 세계로 떠나보내야 한다는 사실을 비로소 인정합니다. 아울러 자신은 천재도 아니었지만 천재의 노력도 하지 않았다는 것도 인정합니다.


 어디서 본 듯한 진부한 이야기지만 감동적이었습니다. 우리나라 영화에선 좀처럼 보기 어려운 클래식 음악의 향연도 좋았고 배우들의 열연도 좋았습니다. 무리하지 않고 튀지 않게 안정적으로 풀어 간 스토리와 연출력도 매우 좋았습니다. 특히 실제 천재 소년 피아니스트 신의재군과 직접 피아노 실연을 펼친 엄정화의 연기 앙상블이 좋았습니다. 영화의 마지막, 청년 피아니스트가 된 경민으로 나온 피아니스트 김정원의 연주가 끝날 땐 저도 모르게 박수가 나오더군요. 모처럼 영화를 보며 뿌듯한 감동을 받았습니다.


 이젠 제가 범재라는 걸 인정합니다. 지금부턴 그냥 범재로서의 삶을 모색해 보렵니다. 천재를 알아볼 수 있고 자신이 범재인 걸 인정할 수 있는 재능도 의미 있는 재능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자신을 잘 아는 사람이 인생을 아름답게 살 수 있으리라 믿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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