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랜 토리노 - Gran Torino
영화
평점 :
상영종료



 

 50년을 함께 한 아내를 마지막 떠나보내는 자리에서도 월터 코왈스키(클린트 이스트우드)는 슬픔 보다는 세상에 대한 불만으로 가득 찬 얼굴입니다. 젊어 포드사에서 자동차를 만들던 기술자 출신 월터는 변해가는 세상이 못마땅합니다. 자신이 피땀 흘려 지키고 가꾼 미국의 가치가 흔들리고 있어섭니다. 두 아들과는 대화가 되지 않고 막돼먹은 며느리와 손자들은 혐오스럽기만 합니다.

 인종차별주의자인 그에게 유색인종들로만 채워지는 새 이웃들은 불쾌한 사람들입니다. 미국우월주의자인 그에게 물밀 듯 쏟아져 들어오는 외제들은 또 다른 위협입니다. 월터에겐 옆집에 사는 아시아인 가족의 이질적인 행태가 야만스럽기만 합니다. 아들이 팔고 다니는 일제 자동차도 그의 눈엔 조잡하게만 보입니다. 그의 유일한 낙은 자신이 직접 조립한 포드의 1972년산 중형자동차 ‘그랜 토리노’를 닦고 조이고 기름 치는 일뿐입니다.

 어느 날 옆집의 몽족 소년 타오(비 방)가 그랜 토리노를 훔치러 들어왔다가 월터가 들이댄 총에 위협을 받아 도망가는 일이 벌어집니다. 사실 타오는 착한 아이지만 몽족 갱단들의 강요에 못 이겨 저지른 일이었습니다. 타오의 엄마와 누나 수(아니 허)는 타오에게 사과하고 일로써 잘못을 갚으라고 합니다. 처음엔 모든 게 못마땅했지만 월터는 예의 바르고 정 많은 타오와 수를 통해 점점 편견의 벽을 허물고 그들과 친해집니다.

 월터는 수를 통해 몽족이 베트남전에서 미국편을 든 이유로 학살을 피해 미국으로 건너왔다는 사실을 알고 일말의 책임감을 가집니다. 그도 젊어 한국전에 참전해 십수명의 적군을 사살한 사람입니다. 국가의 강요로 했다기보다 자신도 믿었던 가치를 위해 싸웠습니다. 하지만 총을 들어 쏠 힘도 없었던 소년병을 쏜 경험은 평생의 죄책감으로 남아있습니다.

 수와 타오를 통해 가족 이상의 정을 느껴가던 즈음, 몽족 갱단이 타오에게 폭력을 가합니다. 화난 월터는 갱단의 한 소년에게 린치를 가하고 위협합니다. 갱단은 보복으로 타오의 집에 총을 난사하고 수를 겁탈합니다. 월터는 더 이상 참을 수 없습니다. 살날이 얼마 남지 않은 월터는 타오와 수를 위해 직접 행동에 나섭니다.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연기를 더 이상 안 할 모양입니다.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신작 영화 ‘그랜 토리노’를 보며 그런 느낌을 받았습니다. 이 영화는 늙은 배우이자 감독이 미국에 남기는 유언입니다. 위대한 배우이자 감독이고 보수주의자이기도 한 팔십 노구의 남자가 자신의 조국에 마지막으로 꼭 해 주고 싶은 마지막 말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랜 토리노란 자동차는 영광스러웠던 미국의 과거를 상징합니다. 근육질의 이 자동차는 미국이 세계를 호령하던 시절에 나왔던 제품입니다. 월터는 이 자동차를 직접 조립했다고 말합니다. 그는 자동차를 직접 조립한 것처럼 미국을 자신의 피땀으로 일군 사람입니다. 미국적 가치를 지키기 위해 목숨을 걸고 싸웠고 살아남았습니다. 인종차별적인 말을 거리낌 없이 내뱉고 전쟁 중에 자신이 썼던 M1 소총을 지금도 가지고 있는 그는 어쩌면 가장 전형적인 미국의 꼴통보수주의자입니다. 하지만 언뜻 꼴통처럼 보이는 월터지만 알고 보면 그야말로 진정한 보수주의자입니다.

 인종차별적인 언사를 거리낌 없이 내뱉지만 사실 그도 이름에서 보듯 폴란드 이민의 후예입니다. 그의 친구들도 죄다 아일랜드인, 이탈리아인 등등으로 정통 앵글로색슨 백인이 아닙니다. 그는 보수주의자의 장점인 높은 도덕성과 따뜻한 온정을 가지고 있는 사람입니다. 결국 그는 썩어빠진 핏줄보다 건전하고 인정 많은 몽족 소년에게 그랜 토리노를 물려줍니다. 진정한 보수주의자 월터는 아시아에서 온 소수민족 출신 소년 타오에게 미국의 미래를 맡깁니다. 후세를 위해 좋은 세상을 물려주기 위해 고민하고 행동하는 그가 바로 진정한 보수주의자입니다.

 세상엔 이상하게도 자칭 보수주의자나 진보주의자는 꼴통들이 많습니다. 이기적이고 권력지향적이고 폭력적인 면에서 그들은 희한하게 쌍둥이처럼 닮았습니다. 그들은 가짜 보수주의자, 가짜 진보주의자들입니다. 진짜는 묵묵히 자신의 역할을 다하는 가운데 옳은 것, 건전한 것, 따뜻한 것을 지키고 가꿀 줄 아는 보통사람들입니다. 사실 그들에게 보수주의든 진보주의든 이름은 아무런 상관이 없습니다. 다만 ‘사람다움’이 있을 뿐입니다. 노작가의 경륜이 묻어나는 따뜻한 말씀 한마디를 들으며 우리의 미래에 대해서도 생각해보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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