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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을 정복한 남자 류비셰프
다닐 알렉산드로비치 그라닌 지음, 이상원.조금선 옮김 / 황소자리 / 2004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이 책은 십수년전 정신세계사에서 '시간을 지배한 사나이'란 제목으로 출간했던 기록소설인데 이번에 재출간 되어 다시 한 번 읽어 보았습니다. 역시 다시 읽어도 감동입니다.
류비세프란 사람은 구소련의 과학자였습니다. 그는 생전에 무려 70여권의 학술서적을 저술했는데 이것은 타이프 원고로 12,500여장의 원고라고 합니다. 하지만 그가 이 책의 주인공이 된 것은 그 방대한 저술 때문만은 아닙니다.
그는 '시간 통계법'이란 것을 창안하고 실천에 옮긴 사람입니다. 쉽게 말하면 '시계부'가 되겠지요. 자신의 일상을 시간으로 기록한 것입니다.
울리야노프스크, 1946년 4월 7일.
곤충분류학 : 이름 모를 나방의 그림을 두 장 그렸다
-3시간 15분, 나방을 감정함- 20분.
보충업무 : 슬라브에게 편지를 씀 - 2시간 25분.
대인업무 : 식물보호위원회 회의에 참석 - 2시간 25분.
휴식 : 이고르에게 편지를 씀 -10분. <울리야노프스크프라우다>지- 10분.
레프 톨스토이의 작품<세바스토플의 기사> -1시간 2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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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업무 총계 - 6시간 20분
이런 식으로 시간의 가계부를 작성하고 매 주,월,년,5년,10년 단위로 통계를 낸 것입니다.
결국 류비세프란 사람의 방대한 저작과 업적은 이런 시간관리에서 나온 것이라는 얘기입니다. 그런데 얘기가 여기까지라면 짜증을 낼 사람들이 많이 있을 겁니다. 이렇게 살아라 저렇게 살아라 세상엔 성공과 출세를 위한 비법서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 읽을 때는 아하 ! 해도 막상 실천할려고 하면 안 되는 그런 책들 말입니다. 물론 우리가 류비세프처럼 실천하기는 역시 어렵습니다. 하지만 류비세프의 실천은 우리에게 다른 교훈을 남기고 있습니다.
류비세프는 매우 인간적이고 소박한 학자였다고 합니다. 그는 이 '시간 통계법'을 다른 사람에게 알린 적도 강요한 적도 없습니다. 오로지 자신을 돌아보고 시간을 통제하기 위해 사용한 것입니다. 그것을 그라닌이라는 작가가 발견하고 이 책으로 세상에 알린 것입니다.
그는 항상 충분히 잤고 밤새워 일한적도 없다고 합니다. 그렇다고 그가 천재적인 사람인 것도 아닙니다. 그는 욕심내지 않고 꾸준히 나아갔습니다. 그는 일상생활을 도외시하거나 가족이나 친지를 위해 시간을 할애하는 것을 아까워 한 적이 없다고 합니다. 시간관리라는 이미지에서 연상되는 기계적인 일벌레는 결코 아니었단 말이죠. 그는 오히려 다른 사람들보다 훨씬 더 시간적으로 여유있게 살았으며 남을 위해서 시간을 아끼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의 시계부에는 특이하게도 시간의 '빚'이 기록 돼 있는데 그런 것들은 주로 남들과의 약속을 지키지 못한 경우들을 기록한 것입니다.
류비세프는 시간에 대해 경건한 도덕심을 가진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시간을 아끼고 인간을 사랑한 사람이었습니다.
이 우주에서 유일하게 공평한 것이 있다면 시간이 아닐까요 ? 어떠한 사람이나 생물체도 시간을 거슬르지 못합니다. 아무리 큰 권력이나 부도 시간을 살 수는 없습니다. 누구에게나 주어진 시간은 똑 같습니다. 따라서 시간은 함부로 쓸 수 없는 경건한 것입니다.
사실 류비세프의 방법을 실천하기는 무척 어렵습니다. 저도 십수년 전에 읽고 잠깐 실천해 보았지만 지속적으로 따라하기는 참 어려웠습니다. 하지만 이 책을 읽으면 삶에 임하는 태도가 달라집니다. 류비세프의 방법은 현재에 충실하라, 자신을 속이지 말라는 메세지를 강하고 품고 있습니다.
나태해질 때, 어려움에 부딪혀 힘들 때, 남들이 원망스러울 때, 욕심이 앞서 마음이 조급할 때 이 책을 다시 한 번 읽곤 합니다. 새롭게 성실한 삶에 임할 수 있게 해 주기 때문입니다. 오늘도 이 책을 읽으며 이 순간을 충실하게 살아가야 한다는 사실을 다시 한 번 되새겨 보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