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드펠 수사의 참회 캐드펠 시리즈 20
엘리스 피터스 지음, 김훈 옮김 / 북하우스 / 2003년 1월
평점 :
절판


이 책은 추리소설로서 미리부터 많은 제약을 안고 출발합니다. 우선 12세기의 중세라는 시간적 제한은 아주 단순한 증거와 사실관계에 기초한 추리만을 허용합니다. 지문이나 혈액형, 유전자도 알려지지 않았던 시대상황은 독자를 답답하게 합니다. 하지만 캐드펠 수사는 현대의 어떤 첨단 수사기법 보다도 설득력 있는 추리를 보여 줍니다.

두번째, 시루즈베리라는 웨일스 접경 잉글랜드 소도시의 한 베네딕트 수도원을 중심으로 일어나는 공간적 제약입니다. 평생을 살아도 살인사건 한 번 나지 않을 수도 있는 수도원의 한 늙은 수사가 매번 살인사건을 접하고 사건을 해결합니다. 그렇다고 해서 단 하나의 얘기라도 억지스러운 경우는 없습니다. 살인사건이 일어 나야만 하는 추리소설의 특성상 어쩔 수 없었겠지만 작가는 자신의 작품 속에서도 생명에 대한 외경심을 잃지 않고 그 죽음들을 결코 쉽게 만들어내지 않습니다. 비록 20권 모두 살인사건이 일어나지만 반드시 필연적인 죽음의 이유가 있고 가장 동정의 여지가 적은 자의 죽음에 국한하고 있으며 최소한의 죽음만을 얘기하는 것에서도 작가의 따뜻한 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세번째는 주인공의 신분적 제약입니다. 캐드펠 수사는 엄격하기로 유명한 베네딕트회 수도원의 일개 수사에 불과합니다. 그는 매일의 수도원 성무일과에 소홀할 수 없는 사람입니다. 실제로 소설 속에서도 가능한 캐드펠 수사는 일상의 기도와 묵상 그리고 자신에게 주어진 의무를 게을리하지 않습니다. 어떨 땐 읽는 독자가 답답할 정도로 참고 기다릴 줄 아는 사람입니다. 그래도 사건은 어느새 해결 돼 있고 여러갈래로 꼬여 있던 일들도 캐드펠 수사의 희망대로 풀려 나갑니다. 작가의 인생경륜이 그런 여유를 만들어낸 것 같습니다.

마지막은 역사적 제약입니다. 작가는 직접적이진 않지만 상당 부분 실제 사건들과 실제 역사적 인물들을 출연시켜 얘기를 끌어 갑니다. 역사적 진실을 왜곡함이 없이 절묘하게 엮어 놓은 역사적 진실과 허구의 혼합구성은 감탄을 자아냅니다. 그래서 이 소설은 역사소설로도 충분한 의미를 가집니다.

64세 라는 나이와 다양한 이력의 경륜 때문일까요 ? 엘리스 피터스는 따뜻한 세계를 창조하고 있습니다. 추리소설임에도 불구하고 원래 선한 인간성에 대한 믿음을 저버리지 않고 있습니다. 그는 세상을 아름답게 볼 줄 아는 사람입니다. 여성작가답게 한 편 한 편 마다 감동적인 로맨스를 창조해 내는 것도 빼먹지 않습니다. 이 시리즈엔 온갖 제약을 뚫고 사랑을 쟁취하는 아름다운 청춘남녀들이 매권 나옵니다. 로맨스 시리즈라고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입니다. 그리고 이 책에는 명상과 신앙이 있습니다. 캐드펠 수사는 성직을 원하지 않는 일개 수사에 불과하지만 종교적 진실에 어느 누구보다 더 다가가 있는 사람입니다. 겸손하고 인간적이고 사려 깊은 사람이지요. 어떠한 편견도 가지지 않고 인간의 따뜻한 본성을 꿰뚫어 볼 수 있는 사람입니다. 그렇다고 작가가 특정한 교리를 전파할려는 의도는 없습니다. 오히려 교조적인 제종교들을 강력하게 비판하는 참된 신앙을 보여 준다고 봐야겠지요. 이 책이 구도소설로도 읽힐 수 있는 이유겠지요. 세상의 아름다움과 착한 인간의 본성을 믿는 사람이라면 누구에게나 꼭 권하고 싶은 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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