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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7 포로수용소 - Stalag 17
영화
평점 :
상영종료
다뉴브 강가의 제17 포로수용소는 미공군 포로들로만 가득합니다. 그것도 모두 중사로만. 1944년 크리스마스를 앞둔 어느날 미군 포로들은 두 명을 탈출시키려고 합니다. 몰래 파 놓은 터널을 통해 두 명을 내 보내고 숨죽이고 결과를 기다리는데 세프튼(월리엄 홀든)은 실패를 자신하며 내기를 하자고 합니다. 너도나도 성공쪽에 담배를 겁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총소리가 들리고 탈출은 실패로 돌아갑니다. 당연하다는 듯 내기에 건 담배를 싹 걷어가는 세프튼을 포로들은 얄밉게 바라봅니다. 세프튼은 포로수용소내의 장사꾼입니다. 쥐를 잡아 경마를 벌여 돈을 벌기도 하고 술을 만들어 파는가 하면 망원경을 만들어 이웃 러시아 여군수용소의 목욕장면을 훔쳐보는 댓가로 돈을 받기도 합니다.
투철한 군인정신 따위는 오래 전에 찜쪄 먹은 세프튼은 전쟁이 끝날 때까지 포로수용소에서 편하게 지낼 생각 밖에 없는 인물입니다. 돈 되는 일이라면 무슨 일이든지 하며 독일군 간수들과의 거래를 통해 혼자 잘 먹고 잘 삽니다. 그의 가방은 없는 것이 없는 백화점입니다.
한 편, 포로수용소장 세르바흐(오토 플레밍거)는 탈출은 불가능 하다며 포로들을 조롱합니다. 포로들은 독일군이 마치 들여다 보고 있기라도 하듯 정확하게 자신들의 계획을 꿰뚫고 있는 것은 내부에 첩자가 있기 때문이라고 입을 모읍니다. 자연스럽게 포로들은 세프튼을 의심합니다. 세프튼은 동료들이 의심 하거나 말거나 동료들의 탈출 기도에 냉소적인 태도를 바꾸지 않습니다.
두 명이 빈 수용소에 새로 두 명의 포로가 들어옵니다. 그 중 한 명 유일한 장교인 공군중위 던바(돈 테일러)는 오는 도중 열차를 폭파시켰다고 자랑스럽게 떠벌립니다. 마침 세프튼은 던바를 알아봅니다. 세프튼은 던바가 같은 군사학교에서 함께 장교로 지원했으나 자신을 떨어뜨리고 대신 붙었던 인물이라고 말합니다. 세프튼은 실력이 아니라 던바의 집이 부자여서 부정이 있었던 것처럼 얘기합니다.
역시 첩자에 의해 던바의 행적이 보고되고 던바는 미제사건이던 열차 폭파범으로 신문을 받습니다. 포로들은 더욱 세프튼을 의심하는데 마침 그가 거래를 위해 러시아 여군수용소를 다녀 온 사실을 알고 분노를 폭발시킵니다. 세프튼은 집단구타로 만신창이가 되고 가지고 있던 물건들도 대부분 뺐깁니다. 세프튼은 진짜 첩자를 잡기 위해 고심합니다.
빌리 와일더 감독의 "제17 포로수용소"는 포로수용소 영화의 효시로 알려져 있습니다. 끊임없이 탈출을 기도하는 포로들과 탈출을 막기 위해 온갖 술수를 부리는 간수들의 이야기는 언제 봐도 손에 땀을 쥐게 하는 스릴이 있습니다. 이후 비슷한 수용소 영화들이 많이 나왔지만 이 영화만큼 아기자기한 재미를 주는 영화는 드물었습니다.
빌리 와일더 감독은 끔찍한 수용소의 현실을 희화화해 끊임없는 위트와 유머로 코믹한 상황들을 만들어 냈습니다. 원래 브로드웨이 연극이 원작이라서 그렇겠지만 조연들의 연기가 볼만 합니다. 다양한 포로들의 인간군상들을 보는 것 만으로도 두 시간이 즐거운 영화입니다.
"골든 보이" 월리엄 홀든은 이 영화로 아카데미 남우주연상을 받았죠. 세프튼은 참 독특한 캐릭터입니다. 철저하게 이기적이지만 현실주의적인 사고로 나름의 인생관이 뚜렷한 인물입니다. 명분 보다 실리를 중시하지만 진정 필요할 땐 배짱과 용기를 보여주는 사람입니다. 무조건 영웅적인 주인공이 아니라서 매우 흥미로운 캐릭터였습니다.
영화엔 음악이 많이 나옵니다. 들으면 아 하고 들어본 적 있다고 하실 분들이 많을텐데 들려드리지 못해서 아쉽습니다. "When Johnny Come Marchin' Home" 이라는 군가는 남북전쟁부터 내려온 미국의 군가라고 하는데 이전 많은 전쟁 영화에서 듣던 익숙한 멜로디입니다.
"제17 포로수용소"는 처절했던 현실을 해학 넘치게 풀어 낸 빌리 와일더 감독의 걸작으로 수용소 영화의 영원한 고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