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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양은 가득히 - Plein Soleil
영화
평점 :
상영종료
그 해 여름은 유난히 길었습니다. 하루하루가 절망의 나날이었습니다.
첫사랑은 떠나갔고 얼떨결에 졸업은 했지만 취업도 못한 상태였습니다.
쥐뿔이나 실력도 없고 인생의 목표조차 잡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관성에 이끌려 도서관엘 가도 책이 눈에 들어 올 리 없었습니다.
그 해 여름은 유난히 길었고 태양은 높고도 찬란했었습니다.
그날은 마침 입사시험이 있던 날입니다.
시험을 치고 나오는데 절망이 울음이 되어 치밀었지만 길에 서서 울 수는 없었습니다.
세상은 너무나 밝았고 태양은 여전히 찬란했습니다.
이 밝은 세상과 저 찬란한 태양이 내 것이 아니란 사실에 치를 떨며 울음을 삼켜야 했습니다.
제 발길은 정처없이 시내로 향했고 우연히 극장 간판에 걸린 알랭 드롱의 고독한 눈길과 마주쳤습니다.
마술처럼 이끌려 점심값으로 영화표를 샀습니다.
어려서 흑백TV로 본 적이 있는 영화였는데 무슨 특별 재개봉 같은 행사였나 봅니다.
영화를 보며 기어이 터지는 울음을 주체 못해 숨죽여 꺽꺽대며 구석자리를 눈물로 적셨습니다.
알랭 드롱의 고독한 눈빛과 비열한 미소가 가슴을 져며왔습니다.
출세만을 원한 불안한 청춘의 모습은 영화 속이나 바깥세상이나 다를 바가 없었습니다.
영화 속에서도 태양은 찬란했고 세상에 가득했지만 톰 리플리의 얼굴에 생기는 그늘을 없애주진 못합니다.
아름다운 화면과 아름다운 음악 속에 "천사의 얼굴을 한 악마" 알랭 드롱의 세상에 맞서는 처절한 투쟁 또한 아름다웠습니다.
그 싸움이 너무나 무모해서 울었고 너무나 허무해서 또 울었습니다.
그것은 제 청춘의 모습이었습니다.
그것은 제 마지막 청춘의 모습이었습니다.
영화를 보고 나온 눈물 젖은 제 얼굴에 또 다시 따가운 햇볕이 쏟아졌습니다.
연민과 수치로 눈을 뜰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마음은 많이 넓어져 있었습니다.
눈물자욱을 쓱 지우고 다시 살아갈 수 있는 용기를 냈습니다.
지금 청춘의 욕망과 고독하게 싸우고 있는 많은 젊은이들에게 이 영화를 권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