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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양의 무법자 - The Good, the Bad, and the Ugly
영화
평점 :
상영종료
중국의 무협,일본의 사무라이,미국의 웨스턴은 가장 진부하지만 가장 인기있는 영화장르입니다. 세르지오 레오네 감독의 1966년작 석양의 무법자는 이른 바 "무법자 3부작"의 마지막 작품으로 마카로니(스파게티) 웨스턴의 최고 걸작으로 꼽히는 영화입니다.
미국은 역사가 짧은 국가로 세계에 내세울만한 역사적 소재가 드물었기 때문에 서부개척기를 소재로한 영화를 만들어 젊은 국가 미국의 신화를 창조하려 했습니다. 당연히 주인공은 정의롭게 그려졌습니다. 서부영화의 주인공은 언제나 당당하게 악당과 맞서고 적보다 먼저 총을 뽑지 않으며 뒤에서 총을 쏘지 않는 멋진 사람으로 묘사되었습니다.
이런 정통적인 웨스턴무비에 반기를 들고 나온 영화가 스파게티 웨스턴입니다. 즉, 이탈리아 사람들이 주축이 돼 만든 웨스턴이죠. 물론 무대는 미국서부개척기지만 내용은 정통적인 웨스턴과 많이 다릅니다. 주인공은 그다지 착한 사람이 아닙니다. 때로 비열하기까지 합니다. 내용도 인간적인 면은 거의 나오지 않습니다. 스파게티 웨스턴의 주제는 결투에 있습니다. 죽이지 않으면 죽는 처절한 정글의 법칙만이 존재하는 황량한 풍경이 영화를 가득 채웁니다.
아마도 이탈리아인들이 주축이 돼 만든 영화였기에 역사적 부담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었던 것이겠지요. 당연히 이런 영화가 만들어질 당시엔 부정적인 오락영화로 가치가 폄하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고전의 반열에 오른 걸작중의 걸작으로 불리고 있습니다.
황량한 사막 위에 모래 바람이 한 바탕 지나가고나면 고요가 흐릅니다. 그 고요를 깨고 들려오는 엔리오 모리꼬네의 비정한 선율. 따갑게 내려 꽂히는 햇살은 이마에 땀을 흐르게 하고 목이 쩍쩍 갈라지는 긴장을 더합니다. 무표정하게 서로를 응시하며 마주선 총잡이들.하지만 마주선 총잡이들의 눈가에 참을 수 없는 팽팽한 긴장의 작은 경련만은 숨기지 못합니다.
마침내 참지 못한 누군가가 총을 뽑고...주인공의 권총은 불을 뿜습니다. 승부는 짧고 깨끗합니다.
역설적이지만 서부영화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는 정통적인 영화가 아닌 위와 같은 장면입니다. 이런 이미지는 마초적이긴 해도 남자들에겐 뿌리칠 수 없는 멋진 이미지 그 자체입니다. 이 영화의 모든 이미지는 이후의 수 많은 영화 및 만화 속 승부에 영향을 끼쳤습니다. 이 영화는 지금의 영화들과 비교해 보아도 손색없는 세련된 느낌을 줍니다. 오락 그 자체에 충실한 내용도 아기자기할 뿐더러 남북전쟁을 재연하는 등 엄청난 인원과 물량이 동원된 대작입니다. 최근 복원된 감독완전판 DVD가 나왔죠. 3시간이 지루하지 않은 영화입니다.
스파게티 웨스턴의 단골 주연인 클린트 이스트우드도 멋지지만 악당 전문배우 리 반 클리프의 독수리 같은 얼굴과 비정한 미소는 언제 봐도 일품입니다. 비열하지만 인간적인 연민을 느끼게 만드는 미워할 수 없는 악당 투코 역의 엘리 윌라크의 명연기도 볼 만 합니다. 영화의 분위기와 절묘하게 어울리는 엔리오 모리코네의 음악은 영화의 색깔을 한층 돋보이게 만드는 긴장과 쾌감을 들려 줍니다.
요즘은 서부영화도 뮤지컬 영화처럼 한물 간 장르입니다. 너무나 반복적으로 이미지가 변주되었기 때문에 식상해진 게 원인이겠지요. 홍콩의 무협물이나 일본의 사무라이 영화도 똑같은 길을 걷고 있습니다. 하지만 언젠가는 다시 부활할 장르임은 분명합니다. 인간이 동물로서의 본능을 완전히 버리지 않는 한 도저히 벗어날 수 없는 치명적인 매력이 있는 장르니까요. 최근 우리나라의 김지운 감독이 "놈놈놈"이란 영화로 이 영화를 리메이크했다고 하지요. 둘 다 보고 비교해 보면 재미있을 겁니다. 삶의 비정함을 느낄 때 이런 영화 한 번 감상해 보시길 권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