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전쟁이 끝난 지도 어언 3년이 흐른 어느날, 텍사스 황량한 평원의 외딴 집에 한 사나이가 찾아옵니다. 남군으로 남북전쟁에 참전했던 이든(존 웨인)이 동생을 찾아온 것이죠. 이든은 왠지 거칠고 삐뚤어진 느낌을 주는 남자로 과거 마음에 큰 상처를 입은 듯 합니다. 전쟁이 끝난 지 한참 만에 나타난 이든을 동생내외는 반겨 맞아줍니다만 이든은 함께 살 생각은 없어 보입니다. 아무튼 정착을 할 작정입니다. 하지만 마을 사람들과 불온한 움직임을 보이는 인디언을 추적하러 간 사이 동생의 집이 인디언의 습격을 받아 불타고 여조카 둘이 납치당하는 사건이 발생합니다. 이든과 마을 자경단은 인디언을 추적합니다. 추적 초기 인디언과 일전을 벌이기도 하지만 숫자의 열세로 범인 확인도 못하고 큰조카 루시의 죽음만 확인합니다. 장기적인 추적을 할 수 없는 마을사람들은 추적을 포기하는데. 어린 조카 데비(나탈리 우드)의 생사를 알아내기 위해, 그리고 그보다 더 잔인한 복수를 위해 이든은 홀로 수색자가 됩니다. 과거 이든이 인디언에게 납치됐다 죽은 여자 품에서 구해 동생네에 맡겼던 아이였던 마틴(제프리 헌터)이 이든을 따라 나섭니다. 무려 5년이 넘는 집요한 추적이 계속되면서 범인은 코만치 인디언의 한 부족 추장인 스카인 것으로 드러나고 데비도 살아있음을 알게 됩니다. 물물교환 장사치로 가장해 인디언의 캠프로 들어간 이든과 마틴은 마침내 데비를 만납니다만 데비는 이미 추장의 아내가 되어 살고 있습니다. 이든은 복수를 위해 스카를 죽이고 이미 인디언에 더렵혀진 조카 데비도 죽이려 합니다. 마틴은 그런 이든을 말리려고 합니다. 존 포드 감독의 "수색자"는 서부영화 사상 최고의 걸작으로 꼽히는 영화입니다. 이 영화는 존 웨인. 존 포드 명콤비의 영화들과 상당히 다른 느낌을 주는 영화입니다. 두 사람이 함께 만들었던 지난날의 수 많은 서부영화와 많은 차이를 보여줍니다. 이전 영화들은 단순한 이분법적 이야기가 대부분이었습니다. 주인공은 바람과 함께 나타난 정의의 사나이로 언제나 멋지게 악당들을 제거합니다. 선악이 분명했고 갈등은 단순했습니다. 인디언은 대개 야만스럽고 호전적인 야만인들로 묘사되었습니다. 한데 이 영화는 이전의 그런 도식을 스스로 다 무너뜨립니다. 주인공은 결코 선인이 아닙니다. 어딘지 모르게 침울하고 삐뚤어져 있으며 편견도 심한 사람입니다. 또한 인종차별주의자이기도 합니다. 영화 속 시대야 말할 것도 없고 영화가 만들어질 당시 시대상황도 백인우월주의나 인종차별주의가 다분히 노골적으로 표현되던 시대이긴 했습니다만 이 영화 속에서는 주인공 이든이 결코 멋있게 그려지지 않습니다. 오히려 상당히 문제가 많은 인간으로 묘사됩니다. 그런 것들이 영화 초반 간접적으로 묘사되면서 스크린 속에 뭔지 모를 긴장과 불안이 조성되는데 결국 이든의 문제 많은 성격이 영화를 이끌어가는 주요갈등의 원인입니다. 재미있는 것은 이든의 사연이 영화 끝까지 밝혀지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속시원히 밝히지 않고 슬쩍슬쩍 분위기만 잡고 넘어가는 그 연출이 영화를 매우 풍부하게 만듭니다. 보는 사람마다 다양한 해석을 할 수 있도록 교묘하게 묘사하고 있습니다. 이든이 처음 동생집에 도착해서 제수에게 던지는 시선은 매우 끈적하고 복잡합니다. 분명 과거에 뭔가 가슴 아픈 사연이 있습니다만 겉으론 드러나지 않습니다. 이든이 전쟁에 지고 3년 동안 어디서 무얼 했는지도 밝히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가 내놓는 두둑한 돈뭉치는 뭔가 어두운 냄새를 풍깁니다. 영화 초반 이든의 숨겨진 사연들이 영화의 주제가 되겠거니 짐작하는 순간 분위기가 반전됩니다. 느닷없는 인디언의 습격으로 동생가족이 몰살 당하면서 영화는 전혀 다른 쪽으로 달려갑니다. 이든의 사연은 뒷전으로 밀리고 인디언과 백인들의 싸움이 등장합니다. 그러곤 전형적인 기병대 액션이 펼쳐지나 했더니 그것도 잠시, 이번엔 또 지루한 추적이 이어집니다. 지루한 세월을 묘사하기 위해 좀 분위기에 안 맞는 듯한 코믹한 에피소드들이 삽입되는데 이든의 갈등은 여전합니다. 서서히 이든의 갈등이 해결되려는 순간, 또 한 번 반전이 있습니다. 조카 데비가 원수인 인디언 추장의 아내가 돼 있는 상황이 등장하고 이든의 분노는 최고조에 이릅니다. 이든은 인디언에 대한 복수와 함께 이미 인디언에게 동화된 조카마저 죽이려 합니다. 이 때 계속 조연으로 양념 역할만 하던 마틴이 새로운 주인공으로 드라마를 이끕니다. 인디언 추장 스카도 백인들에게 두 아들을 잃고 복수심에 불타 저지른 짓이라는 게 드러나면서 이분법적 선악구도가 깨집니다. 인디언 추장 스카나 이든은 다를 바 없는 사람들입니다. 마틴은 이든의 광기 어린 복수를 막으려 합니다. 마틴이 인디언에게 납치됐던 여자의 아들이고 이든이 그런 마틴을 인디언 피가 섞였을 지 모른다는 이유로 차별하는 장면이 영화 초반 몇 번 보였기 때문에 마틴의 행동은 많은 걸 상징합니다. 부모를 죽인 원수의 아내가 되어 사는 데비나 인디언의 피가 섞였을 지도 모르지만 누구보다 정의롭고 용감한 마틴은 편협한 백인의 전형인 이든의 대안입니다. 바로 자유롭고 평등한 미국의 미래인들입니다. 상황상 인디언 추장의 죽음과 이든의 복수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겠지만 존 포드 감독의 의도는 이전의 영화들에 대한 자기반성으로 보입니다. 버팔로에게 광기 어린 총질을 해대고 인디언 추장의 머리가죽을 벗기는 이든은 백인들이 경멸해 마지않던 야만적인 인디언의 모습 그대로입니다. 인디언에 물들었다고 조카를 죽이려 하는 이든은 복수를 위해 백인들을 죽였지만 데비를 아내로 삼음으로 인해 화해와 용서를 갈구하는 인디언 추장 스카보다 결코 우월하게 보이지 않습니다. 조카 데비를 끝내 죽이지 않는 이든의 선택은 감독이 어떤 메시지를 주고자 했는지 분명하게 알려줍니다. 따뜻한 가정으로 들어오지 못하고 비틀거리며 문밖으로 걸어가는 존 웨인의 쓸쓸한 뒷모습이 진한 여운을 남기는 "수색자"는 걸작이라는 이름에 부끄럽지 않은 깊은 맛이 있는 영화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