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납치된 공주
카렌 두베 지음, 안성찬 옮김 / 들녘 / 2006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저는 평소 왕자와 공주, 난쟁이와 드래곤 따위가 나오는 소설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습니다. 다른 판타지는 좋아하는 편이지만 '왕자와 공주' 나오는 이야기는 별로였습니다. 아무리 재미있게 이야기를 엮어도 기본 구도 자체가 워낙 유치하기 때문이었습니다. 차라리 고전이라면 모를까 현대에 끊임없이 쏟아지는 비슷한 소설들엔 흥미가 없었습니다. 판타지 문학 자체를 폄하하는 건 아니지만 이 장르가 한국사람들 정서엔 잘 안 맞는 것 같다는 생각이었습니다.
그런데 제 이런 생각과는 달리 '왕자와 공주' 나오는 판타지 소설들이 상당한 인기를 끌고 있는 모양입니다. 어릴 때부터 서양 동화나 영화로 익숙해진 청소년층을 중심으로 판타지 매니아들이 점점 늘어나는 추세라고 들었습니다. 그 중에서도 '왕자와 공주, 기사나 드래곤'이 나와야만 읽는다는 사람들도 많더군요. 그렇다면 혹시 내가 선입견으로 새로운 흐름을 잘 못 읽고 있었던 건 아닐까? 그래서 한 권 읽어보기로 했습니다. "납치된 공주". 제목에 공주가 들어가서 눈에 확 띄었습니다. 작은 판형과 야시꾸리(?)한 표지 디자인도 마음에 들었습니다. 그래! 이번 기회에 제대로 왕자와 공주 나오는 판타지 한 번 읽어보자!
결과적으로 이 책은 처음 저의 의도에 부합하지 않는 전혀 반대의 책이라는 걸 알게 됐습니다. 참! 하필 고르고 고른 게 주류에서 벗어난 책이라니! 역시 전 '왕자와 공주' 스타일 소설관 인연이 안 맞나 보다 싶었습니다. 아무튼 내가 원했던 본격 판타지는 아니었지만 오히려 그 때문에 매우 유쾌한 책읽기가 되었습니다. 이 책은 쉽게 말하면 약간 비틀어 놓은 '왕자와 공주' 이야기입니다. 동화나 전설 속의 공주와 왕자, 기사와 드래곤, 난쟁이와 괴물 등을 조금씩 비틀어 풍자적으로 묘사한 이야기입니다. 기본 줄거리는 가장 고전적인 이야기를 따르고 있지만 각 주인공들의 캐릭터가 전혀 고전적이지 않습니다. 오히려 매우 현대적인 인물들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내용이 패러디에 가깝지만 그저 가벼운 이야기라고 치부하기엔 제법 묵직한 울림도 있습니다. 여성 작가가 썼기 때문인지 아직 자아를 제대로 형성하지 못한 청소년들의 진정한 자아찾기가 매우 섬세하게 그려집니다. 이건 분명 성장소설이라고 부를 수 있습니다. 재미도 있지만 얻을 것도 있는 이야기라는 얘기죠. 본격 판타지를 기대한 사람들은 실망하겠지만 저는 개인적으로 무척 재미있게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