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시황 프로젝트 - 제1회 대한민국 뉴웨이브 문학상 수상작
유광수 지음 / 김영사 / 200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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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쟝르소설을 좋아합니다. 서양에서는 노벨문학상 수상자들도 거리낌 없이 쓸 정도로 쟝르소설이 높은 평가를 받는데 반해 우리나라에선 아직도 저질문학으로 폄하되는 현실을 안타까워하는 사람 중 하나입니다. 쟝르소설 작가의 꿈도 함께 가지고 있고요. 그런 제가 쟝르소설에 큰 상금을 걸고 시작한 대한민국 뉴웨이브문학상 제1회 수상작을 읽지 않을 리 없지요.
 소설을 다 읽은 지금, 몹시 당황스럽습니다. 제가 듣기로 수백 편의 응모작이 있었다고 들었는데 그렇게 작품이 없었단 말입니까? 이런 작품에 1억원이란 고료를 주다니요! 어이 없습니다. 한 마디로 쓰레기 저질소설입니다. 제가 좀처럼 남의 작품 험담은 안 하는 사람인데 이 소설에 대해선 그냥 넘어갈 수 없네요. 작가의 노력은 가상합니다만 미안하게도 거의 모든 면에서 함량미달인 작품입니다. 복거일,김성곤,구효서,성석제,권지예,김미현,김탁환,정이현,강유정 평소 존경하던 작가들이 심사위원이었다는 사실도 경악스럽습니다. 과연 심사위원들이 책을 제대로 읽어보기나 한 것인지 의심스럽습니다.
 지금부터 이 소설의 문제점들을 지적하도록 하겠습니다. 이후 내용은 혹시나 책을 읽어보실 분들에게 스포일러가 될 수도 있으니 유의하십시오.
 
1.스토리 
 꼰다고 다 새끼줄이 아닙니다. 스토리란 모름지기 맥락이 있어야 합니다. 판타지도 그 나름의 논리가 있는 법입니다. 이 소설은 개연성도 맥락도 논리도 없습니다. 편의에 따라 이리 꼬고 저리 꼬며 이야기를 연결해 갈 뿐 독자가 공감할 수 있는 상황과 복선이 없습니다. 40대 형사가 처음 본 여자, 그것도 참고인을 보고 첫눈에 반해 사랑하게 되고 그날로 바로 집까지 따라간다든지 주인공이 위기에 처할 때마다 여주인공이 짜잔하고 나타나 구해주는 등 수준 이하의 스토리 전개를 보여줍니다. 강형사의 어릴 적 이야기, 방형사가 일본에 간 이유 등은 억지스럽기 그지 없습니다. 빼버려도 상관 없는 이야기를 억지로 다음 상황에 꿰맞추기 위해 삽입한 꼴이라 리얼리티만 떨어뜨릴 뿐입니다.
 
2.캐릭터
 종로경찰서 강력8반에 대한민국 인재가 다 몰려 있다는 게 말이 될까요? 주인공 강형사는 명문 Y대 대학원 출신, 여주인공 방형사는 전일본대사의 딸로 미모에 지성과 무술실력까지 겸비한 재원, 최형사는 국정원 출신 정보추적의 귀재, 거칠지만 우직하고 의리있는 장반장 등등 아무리 쟝르소설이라고 하지만 너무나 비현실적입니다. 특히 킬러 송곳의 캐릭터는 난센스의 극치입니다. 이런 건 반전이 아니고 우롱이라고 하죠. 수십명의 목숨도 파리 잡듯 빼앗는 피도 눈물도 없는 킬러가 사랑에 포로가 되어, 그것도 동시에 두 사람을 사랑해 죽는다는 설정은 말이 안 되도 너무 안 됩니다.
 
3.문체
 300페이지면 족할 내용을 530페이지가 넘게 질질 늘려놓은 만연체도 그렇지만 중간중간 동일 장 내에서 전지적작가 시점으로 시작해 놓고 느닷없이 일인칭작가시점으로 바꾸는 등 기본기가 안 돼 있습니다. 아마 작가도 몰랐지 싶습니다. 스릴러나 추리 소설은 관객에게 팽팽한 긴장과 속도감을 주어야 하는데 툭하면 옆길로 새는 문체가 몰입을 방해합니다.
 
4.내용의 개연성
 제목과 달리 진시황 프로젝트는 결국 없는 걸로 판명납니다. 고종이 그렸다는 춘화첩도 마찬가지입니다. 일본의 조직이 목숨을 걸고 그 책을 찾으려하는 이유가 납득이 되지 않습니다. 팩션이란 있는 사실에 상상력을 가미해 마치 숨겨진 의미가 있는 것처럼 만들어내는 것인데 이 책은 아무런 사실이 없습니다. 사실이 없으니 상상력도 허무하게 느껴질 뿐입니다.
 
5.주제
 주제 또한 저급합니다. 치졸한 극우민족주의를 바탕에 깔고 있어 상당히 음험하고 위험해 보입니다. 소설의 모양새는 비판적으로 잡고 있지만 은근히 극우민족주의를 옹호하는 듯한 시각이 몹시 거슬렸습니다.
 
6.문학성
 앞서 언급했기 때문에 재론할 필요성이 없지만 내용이 너무 잔인하고 저급합니다. 쟝르소설이라고 품위없이 자극적으로 써야만 한다는 법은 없습니다. 가능하면 품격있게 쓰는 게 좋은 것이죠. 이 소설은 작심하고 최대한 잔인하게 최대한 야하게 표현합니다. 폭력미학과 에로티시즘도 잘만 쓰면 높은 품격을 가질 수 있지만 이 소설이 취하는 폭력과 에로티시즘은 저질입니다. 공감할 수 없는 장면에서 불쑥 나오는 불필요한 폭력과 성애 장면은 눈살만 찌푸리게 합니다.
 
 별점을 하나도 주기 싫은 작품이지만 하나를 준 건 대학에서 강의를 하며 530페이지 넘는 장편을 끝까지 써낸 작가의 노력이 가상해서입니다. 나중에 좀 부끄러울 테지만 다시 좋은 작품으로 만회하시길 진심으로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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