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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선생님이 좋아요 ㅣ 카르페디엠 1
하이타니 겐지로 지음, 햇살과나무꾼 옮김, 윤정주 그림 / 양철북 / 2008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큰아이 반에 가벼운 자폐증을 가진 아이가 있습니다. 4학년 때도 같은 반을 했기 때문에 저도 잘 아는 아이죠. 학급동요제에 갔다가 처음 봤는데 보는 사람마다 밝게 인사하고 다녀서 기분이 좋았습니다. 반 친구들이 돌아가며 공부도 함께 하고 놀아주기도 한다는 얘기를 듣고 참 좋은 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큰애도 그 애와 잘 놀아준다고 해서 칭찬도 했었죠. 그런데 모두 다 제 마음 같진 않나 봅니다. 아내 말을 들으니 걔 때문에 공부에 방해된다며 싫어하는 엄마들도 있다니 말입니다. 심지어 학기 초에 그 애랑 전교에서 유명한 말썽쟁이 애가 함께 같은 반이 됐다고 분해하는 엄마들도 있었다고 합니다. 큰애 말을 들으니 그런 부모를 둔 아이들은 꼭 학교에서 그 애를 장애인이라고 놀린다고 하네요.
그런 어른들에게 하이타니 겐지로의 장편소설 "나는 선생님이 좋아요"를 꼭 읽어보라고 권하고 싶습니다. 하이타니 겐지로는 실제로 17년 동안 초등학교 교사로 재직했다고 합니다.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감동적이고 교훈적인 작품을 많이 쓴 작가라고 합니다. 이 책은 1974년에 처음 나왔는데 일본 뿐 아니라 세계어린이 문학사에 영원히 기억될 작품으로 인정받고 있답니다. 오래 된 이야기지만 우리나라 현실엔 아직도 유효한 작품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이야기의 주인공은 고다니 후미라는 스물두 살의 초등학교 선생님입니다. 갓 대학을 졸업한 여린 마음의 고다니 선생님은 1학년 담임인데 데쓰조라는 아이 때문에 기겁을 합니다. 데쓰조가 관찰용으로 기르던 개구리를 잔인하게 찢어 죽인 겁니다. 두 달 뒤엔 수업 중에 갑자기 데쓰조가 고다니 선생님과 반 친구 후미지를 공격하기까지 합니다. 처음 고다니 선생님은 영문을 몰랐지만 차츰 데쓰조의 행동을 이해하게 됩니다. 데쓰조는 이른 바 "처리장 아이들" 중 한 명입니다. 학교 부근에 50 년도 넘은 쓰레기 처리장이 있는데 "처리장 아이들"은 그곳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자식들입니다. 사람들이 부모의 보살핌을 잘 받지 못해 불결하고 거친 그 곳 아이들을 이르는 말이죠.
처음 학교를 그만두고 싶을 정도로 고민하던 고다니 선생님은 직접 데쓰조의 집으로 찾아가 봅니다. 데쓰조는 할아버지와 단 둘이 살고 있습니다. 말도 거의 안 하고 글도 읽을 줄 모르는 데쓰조의 유일한 취미는 파리 기르기입니다. 파리에 관해선 모르는 게 없을 정도입니다. 데쓰조가 개구리를 죽이고 선생님과 후미조를 공격한 것은 후미조가 몰래 데쓰조가 아끼던 파리가 든 병을 가져 가 개구리먹이로 주었기 때문입니다. 고다니 선생님은 처리장 아이들이 선입견과 달리 붙임성 있고 착한 아이들이라는 사실을 깨닫습니다. 고다니 선생님은 진정으로 아이들에게 다가가고 아이들도 선생님에게 마음을 엽니다.
고다니 선생님은 사회적 편견에 상처입고 울기도 하면서 점점 강해집니다. 고다니 선생님은 데쓰조의 할아버지 바쿠 할아버지, 괴짜 선생님 아다치, 생각이 같은 동료 교사들 그리고 처리장 아이들과 어른들을 통해 세상과 인생을 배웁니다. 울보 고다니 선생님은 편견으로 가득한 세상에 맞서 올바르게 살고 사랑하고 가르치고 배운다는 게 무엇인지 차츰 깨달아 갑니다.
모처럼 눈시울을 적시며 읽었습니다. 머리로 아는 것을 마음으로 실천하기는 얼마나 어려운지요! 소설 속에 나오는 편견과 이기심으로 가득 찬 사람들의 모습이 바로 제 모습이라 몹시 부끄러웠습니다. 옳으면 그저 옳다고 하면 그만인데, 굳이 현실은 다르다고 꼭 그렇지만은 않다고 변명하며 올바르게 살지 못하는 제 자신이 혐오스러웠습니다. 큰 소리 내지 않고 묵묵히 옳은 생각을 하고 실천하는 울보쟁이 고다니 선생님과 욕쟁이 아다치 선생님이 존경스러웠습니다. 두고 두고 자신이 부끄러울 때마다 꺼내 읽어 보고 싶은 책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