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이란, 행복한 가정이란 무엇일까요 ? 행복한 가정은 우리 힘으로 가꾸고 지켜나갈 수 있는 것일까요 ? 도리스 레싱은 "다섯째 아이"란 책을 통해 행복한 가정이란 이상에 대해 심각하게 문제제기 하고 있습니다. 강렬한 소설 "다섯째 아이"를 빌어 도리스 레싱은 전통적인 가족주의가 허상이라고 말합니다. 1960년대말 시대 분위기와 달리 건실하고 보수적인 남자 데이비드와 주변 친구들과는 달리 그 때까지도 처녀였고 자식은 많을수록 좋다는 고전적 사고방식을 가진 여자 헤리엇이 결혼합니다. 그들은 "행복한" 가정을 꾸미기 위해 빅토리아풍의 대저택을 사고 자녀를 8명 정도 낳기로 계획을 세웁니다. 네 명의 아이가 태어났을 때까진 그들의 꿈이 이루어지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비록 데이비드의 부모들(?)과 헤리엇의 어머니 도움을 받긴 했지만 그들의 삶은 더 없이 행복해 보입니다. 아이들은 사랑스럽고 집안엔 웃음이 가득합니다. 휴가철이면 온 친척들이 그 행복을 맛보기 위해 대저택으로 모여듭니다. 하지만 그들의 행복은 다섯째 아이를 가지는 순간부터 조금씩 무너지기 시작합니다. 다섯째 아이는 알 수 없는 유전자를 타고 난 괴물 같은 존재였던 것이죠. 다섯째 아이 벤은 도무지 어디서 생겨난 것인지 알 수 없는 괴물 같은 아이입니다. 외모는 사람이지만 수천년 전 존재했었던 이상한 존재의 격세유전된 혹은 어떤 외계에서 잠입시킨 에일리언 같은 존재입니다. 벤의 등장으로 행복하게만 보였던 가정은 무너집니다. 이 책은 섬뜩한 호러형식을 차용해 행복한 가정이란 허상에 불과하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가족주의란 우연한 불행 하나에도 무방비로 무너지는 허망한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괴물 같은 아이 벤은 어디서 왔는지 왜 왔는지 알 수 없는 존재입니다. 아이 엄마 헤리엇은 아무런 잘못이 없는데도 사람들은 헤리엇을 비난합니다. 이 알 수 없는 존재의 끼어듦으로 인해 굳건한 것처럼 보였던 부부의 사랑과 신뢰도 한 순간에 무너져 버립니다. 즐겁게 모여 휴가를 함께 보내던 사람들도 더 이상 찾아오지 않습니다. 벤보다 먼저 태어난 아이들 넷도 자신을 위해 헤리엇을 떠나갑니다. 외견상 행복해 보이는 가정도 그것을 지탱하는 힘은 각자의 이기심입니다. 그 이기심이 적절한 균형을 이룰 때 우리는 "행복"하다고 생각한다는 것이죠. 하지만 그 이기적인 모든 요소 중 한 축만 무너져도 그 행복은 와르르 무너지고 맙니다. 소설 속 벤은 괴물이지만 사실 실생활에서도 아이가 순간순간 괴물로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가족이란 그런 사이입니다. 아이를 학대하는 부모의 입장에선 아이가 벤과 같은 존재입니다. 반대로 아이는 그 부모를 벤과 같은 존재로 느끼겠지요. 그러므로 벤은 소설 속 허구의 존재만은 아닙니다. 우리 가족 구성원 중 누구라도 어느 순간 벤이 될 수 있습니다. 나 자신도 포함해서 말이죠. 최대한 감정을 자제한 건조하고 냉정한 문체의 짧은 소설이지만 "다섯째 아이"가 던지는 문제는 강력합니다. 이 책을 읽으며 행복한 가정과 현대에 필요한 가족관에 대해 다시 한 번 돌아볼 수 있었습니다. 나 자신은 얼마나 많은 이기심으로 가족을 이용해 왔나 반성도 해 보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