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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이탄의 미녀
커트 보네거트 지음, 이강훈 옮김 / 금문 / 2003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다음의 내용은 대략 2차 세계대전과 3차 대공황 사이의 악몽기(???)에 있었던 실제이야기(??????)라고 책은 밝히고 있습니다.
미국의 부호 윈스턴 나일스 럼푸드는 자신의 개 카작과 함께 자가용 우주선을 타고 화성으로 날아가다 소행성대에 있는 '크로노 신클래스틱 인펀디블룸'이라는 이상공간에 빠져 태양계와 베텔기우스 별의 태양광 종착점에 기원을 둔 뒤틀린 소용돌이의 파동현상으로 존재하게 됩니다. 뭔말인지 모르시겠죠. 그냥 그러려니 하시면 됩니다.^^
럼푸드는 태양계 행성의 주기에 맞춰 정확하게 59일에 한 번 씩 자신의 저택에 체화(體化)되어 나타납니다. 그 때 마다 럼푸드는 미래를 예언하고 그 예언은 정확하게 실현됩니다. 사람들은 저택에 들어가고 싶어 안달하지만 럼푸드는 아내 베아트리스에게 단 한 사람만 들어오게 합니다. 그 사람은 전세계에서 가장 운이 좋다고 알려진 억만장자에 바람둥이로 소문난 말라카이 콘스탄트입니다.
호기심과 약간의 우월감으로 저택을 찾았던 콘스탄트에게 럼푸드는 황당한 예언을 합니다. 콘스탄트는 럼푸드 부인 베아트리스와 화성에서 결혼해 아이를 낳고 수성으로 갔다가 나중엔 토성의 위성인 타이탄에 가서 살게 된다는 얘깁니다. 말라카이에겐 청천벽력 같은 얘깁니다. 그건 베아트리스 럼푸드 부인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언이 이루어지지 않게 하기 위해 콘스탄트는 소유하고 있던 지구의 유일한 대형우주선 고래를 처분합니다. 똑같은 이유로 베아트리스는 우주선을 사들입니다. 콘스탄트는 혹시라도 모를 예언의 실현가능성을 없애기 위해 흥청망청 재산을 탕진하고 결국 알거지가 됩니다. 베아트리스 또한 우주선을 산 덕분에 파산합니다.
하지만 두 사람을 화성으로 데려간 것은 그 우주선이 아니었습니다. 두 사람은 비행접시를 타고 온 화성의 비밀요원들에게 납치됩니다. 화성에 도착한 직후 두 사람의 기억은 지워집니다. 화성은 알수 없는 존재가 조직한 군대로 지구침공을 준비중입니다. 군인들과 여자와 아이들은 모두 지구에서 잡혀 온 사람들입니다. 물론 기억이 지워진 사람들입니다.
그곳에서 콘스탄트는 엉크 일병으로 베아트리스는 간호사 비로 살고 있습니다. 비에겐 크로노라는 아들도 딸려 있습니다. 역시 두 사람은 과거를 전혀 기억하지 못합니다. 화성군은 머리에 이식된 장치로 조종을 받는데 거부할 경우 엄청난 고통이 따릅니다. 기계처럼 복종하며 살던 엉크는 동료장교를 처단하라는 명령을 수행하다 그 사람이 남긴 이상한 말을 듣습니다.
자신의 정체성에 의문을 갖게 된 엉크는 그 말을 따라 숨겨진 자신에 관한 기록을 찾아 읽습니다. 기록은 기억을 잃을 때를 대비해 자신이 남긴 것이었습니다. 엉크는 자신의 아내와 아들이 화성에 살고 있다는 사실을 압니다. 엉크는 우여곡절 끝에 탈영해 아내 비와 아들 크로노를 찾아갑니다만 곧 붙잡혀 지구침공 우주선에 태워집니다.
그러나 웬일인지 엉크가 탄 우주선은 수성으로 날아가고 수성의 지하동굴에서 동료 버즈와 함게 3년을 보냅니다. 그 사이 전 화성인들이 지구를 침공하지만 어이없게 격퇴 당하고 맙니다. 그런데 그 과정에서 사람들은 너무나 허약한 화성인들을 죽인 것에 양심의 가책을 받고 새로운 종교에 빠져듭니다. 종교의 이름은 "전혀 무관심한 신의 교회 " ! 이 종교의 창시자는 바로 럼푸드입니다.
럼푸드는 기존 종교를 조롱하고 새로운 종교를 만들기 위해 이 모든 일을 꾸민 겁니다. 엉크 즉, 콘스탄트는 수성에서 돌아와 잠시 이 종교의 전령 '우주의 방랑자'가 되고 베아트리스와 크로노와 함께 타이탄으로 갑니다. 콘스탄트와 베아트리스는 타이탄에서 신과 행운과 불운의 문제를 사색하며 인생의 의미를 깨닫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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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트 보네거트 주니어는 자신의 소설이 SF가 아니라고 강변했다고 합니다. 사실 그의 소설은 아주 정교한 SF의 형식을 띄고 있지만 그냥 과학소설이나 판타지라고 부르기엔 어딘가 부족한 느낌입니다. 전 우주를 상대로 진한 조롱과 풍자를 보여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농담조의 현란한 문체와 정교한 이야기만으로도 훌륭하지만 금기시 된 종교에 대한 조롱과 현대사회에 대한 풍자를 대담하게 펼치고 있습니다.
커트 보네거트는 우리나라엔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미국문학에선 독보적인 존재라고 하는데 조금도 과장이 아닙니다. 그의 문학은 보르헤스와 비슷하지만 훨씬 고차원적입니다. 보르헤스의 농담이 개그라면 커트 보네거트의 농담은 블랙유머입니다. 이 책이 어려운 통속 SF로 치부돼 독서계에서 소외된 것은 오로지 출판업자들의 마케팅 부재에 그 원인이 있습니다.
평소 SF는 유치한 통속소설이라고 생각하는 분들에게 일독을 권합니다. 그런데 이 책은 절판이네요. 얼마 전 이 작가가 타계했단 소식을 들었습니다. 안타깝습니다. 위대한 작가가 떠난 것이 아쉽고 그의 책이 팔리지 않아 절판되는 현실이 아쉽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