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디슨 카운티의 다리
로버트 제임스 월러 지음, 공경희 옮김 / 시공사 / 2002년 10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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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매함으로 둘러싸인 이 우주에서,
이런 확실한 감정은 단 한 번만 오는 거요.
몇 번을 다시 살더라도, 다시는 오지 않을 거요.”

지난주, 뮤지컬 <매디슨 카운티의 다리>를 보고 왔습니다. 뮤지컬에 대한 세간의 평가와 화제성처럼 역시 굉장했습니다! 뮤지컬이 끝나자 관객들 모두 기립해서 아낌없는 박수를 보내더군요. 무대도, 음악도 훌륭했지만, 무엇보다 왜 뮤지컬계에서 옥주현과 박은태 두 배우의 주가가 그리 높은지를 실감했습니다. 6월 18일까지 상연되니 이제 막바지를 향해 달려가고 있습니다.


이 작품, 클린트 이스트우드와 메릴 스트립이 주연했던 1995년 동명의 영화도 큰 인기를 기록했던 바 있지요. 이번 뮤지컬은 2014년 미국 브로드웨이 작품의 라이선스 버전이라고 하네요. 작사와 작곡을 맡았던 제이슨 로버트 브라운은 이 작품으로 토니상 2관왕을 기록하기도 했습니다.



이런 <매디슨 카운티의 다리>가 미국 작가 로버트 제임스 윌러의 소설을 원작으로 하고 있다는 사실, 많은 분들이 알고 계실 거예요. 그렇지만 소설은 1992년, 무려 25년 전 작품인 만큼 책을 직접 읽지 않은 채 뮤지컬이나 영화를 감상하시는 분들도 많을 거고요. 도대체 원작이 어떠하기에 이처럼 스크린과 무대에서 변함없는 사랑을 받고 있는 것일까요?

     

여기서는 전 세계 5천만 부 이상이 판매되고, 국내에서도 100만 부 이상의 판매를 기록했던 책 『매디슨 카운티의 다리』의 명구절들과 함께 뮤지컬의 장면들을 다시 한 번 음미해 보겠습니다. 뮤지컬과 함께 보셔도 좋고, 뮤지컬을 감상하기 힘들다면 이 책을 읽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감동을 느낄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



※ 작품에 대한 일정한 스포일러가 포함될 수 있는 점, 양해 부탁드립니다.


1. “붓꽃 밭에서, 먼지 이는 수많은 시골길에서 피어오르는 노래들이 있다. 이것은 그 노래들 중 하나다.”

― 『매디슨 카운티의 다리』, 시작에 앞서, 9페이지

     

뮤지컬에서도 다양한 대도구와 소도구들로써 프란체스카가 살고 있던 ‘시골’이자 ‘농촌’ 아이오와 주의 배경들을 잘 묘사했습니다. 특히 프란체스카의 영혼을 짓누르던 거대한 ‘옥수수밭’이 기억에 남습니다. 원작 소설의 첫 문장처럼, 이 작품은 바로 그 흔하디흔한 시골길에서 피어오르는 노래입니다. 자연의, 우리 내면의 진정한 목소리를 들을 준비가 되어 있다면, 우리는 모두 로버트 킨케이드와 프란체스카 존슨이 될 수 있습니다.



2. “이제 쉰두 살의 나이에 그는 아직도 광선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는 소년시절 벽에 붙여놓은 거의 모든 장소에 가보았고, 래플즈 바에 앉아 있거나, 칙칙 푹푹 소리가 나는 배를 타고 아마존을 거슬러 올라가거나, 낙타를 타고 라자스탄의 사막을 건널 때는 그런 곳을 방문해 그곳에 있게 되었다는 사실을 놀라워했다.”

― 『매디슨 카운티의 다리』, 로버트 킨케이드, 31~32페이지


역시 뮤지컬보단 소설이 주인공들의 과거와 내면의 모습들을 더욱 상세하고 구체적으로 묘사해 줍니다.로버트 킨케이드가 프란체스카 존슨을 만나기 직전의 서술입니다. 그는 어릴 적부터 남달리 진지하고 섬세하며, 예술가적인 풍모를 갖춘 채 성장해 왔죠. 그의 진면목을 알아보는 이들에겐, 삶의 신비로움을 손에 쥔 ‘마법사’와 같은 인물입니다. 중년을 맞았지만, 여전히 완벽한 빛을 향해 전 세계를 누비는 사진가 소년. 



3. “프란체스카 존슨에게는 정말로 그를 끌어당기는 무엇인가가 있었다. 지성적인 면모가 풍겼다. 그는 그것을 알아차릴 수 있었다. 그리고 열정이 있었다. 비록 그로서는 그 열정이 어떤 방향으로 향해 있는지,혹은 방향이라는 게 있기나 한지, 정확히 알아차릴 수는 없었지만.”

― 『매디슨 카운티의 다리』, 프란체스카, 61페이지


이번엔 프란체스카의 차례입니다. 프란체스카는 소설에선 비교문학 학위를 따고 영어 교사로 활동했던 과거를 갖고 있습니다. 뮤지컬에선 화가의 꿈을 접은 것으로 나오고요. 뮤지컬에서 프란체스카가 ‘그림을 그린다’는 설정이 중요하게 다뤄진 것처럼, 소설에선 프란체스카와 로버트 둘 다 영문학에 조예가 깊다는 설정이 둘의 교감을 더욱 풍성하게 만들어 주는 소재로 쓰인답니다.



4. “프란체스카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초지와 초원의 차이를 중요하게 여기는 남자, 하늘 색깔에 흥분하는 사람, 시를 약간 쓰지만 소설은 그다지 많이 쓰지 않는 남자에 대해 생각했다. 기타를 치는 남자,이미지로 밥벌이를 하고 장비를 배낭에 넣어 가지고 다니는 남자. 바람처럼 보이는 남자. 그리고 바람처럼 움직이는 남자. 어쩌면 바람을 타고 온 사람.”

― 『매디슨 카운티의 다리』, 길 혹은 떠도는 영혼, 83페이지


프란체스카가 바라보는 로버트에 대한 아름다운 묘사이죠? 뮤지컬에서 로버트 역을 맡은 박은태의 경우,훌륭한 가창력과 연기, 그리고 몸매(...)는 더할 나위 없었지만, 뮤지컬을 보며 안타깝게도 그가 지나치게‘젊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습니다. 소설 속의 설정은 로버트가 쉰 두 살, 프란체스카 마흔 다섯으로 나오는데요. 옥주현도 마찬가지였지만, 특히 30대 후반인 박은태에게 로버트가 가진 중년미, 시간이 빚어내는 원숙미를 기대하긴 조금 어려운 노릇이었죠. (클린트 이스트우드는 영화 개봉 당시 65세였던 것과 대비됩니다.)



5. “현대의 저주는, 장기간의 피해를 입을 수 있는 곳곳에서 남성 호르몬이 우위를 점하고 있다는 점이죠.국가 간의 전쟁이나 자연 파괴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더라도, 우리를 서로 이간시키고, 우리가 주의를 기울여야 할 문제에서 멀어지게 하는 그런 공격력이 존재한다는 게 문제죠.”

― 『매디슨 카운티의 다리』, 다시 춤출 수 있는 여유, 133페이지


1990년대 한창 이 소설의 열풍이 불 때, 미국에서도 작품이 ‘불륜을 미화했다’고 꽤나 논란이 되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작가 로버트 제임스 윌러는 왜 프란체스카가 로버트에게 빠져들 수밖에 없었는지를, 둘은 왜‘영혼의 동반자’가 될 수 있었는지를 아주 꼼꼼하게 묘사해 둡니다. 여기엔 로버트가 프란체스카와 달콤한 시간을 보낼 때 그가 펼치던 일장 연설 중 한 토막을 옮겨 보았습니다. 남성적이면서도 여성적인, 강인하면서도 섬세한, 따뜻하면서도 독립적인 로버트의 성격은 무척이나 매력 있습니다.



6. “당신은 낡은 배낭이고, 해리라는 이름의 트럭이고, 아시아까지 날아가는 제트 여객기예요. 내가 당신에게 바라는 것이 바로 그것이구요. 당신 말처럼, 당신의 진화 가지가 막다른 골목에 이르렀다면, 나는 당신이 빠른 속도로 그 골목을 치고 나가길 바라요.”

― 『매디슨 카운티의 다리』, 길 혹은 떠도는 영혼, 147페이지


프란체스카와 로버트가 이별을 할 때 프란체스카의 긴 대사 중 일부분입니다. 소설에서 둘의 사랑과 이별은 뮤지컬보다 진중하고 지적입니다. 뮤지컬에선 좀 더 감정적이고 격하죠. 점점 더 방랑자와 단독자를 인정하지 않는 이 현대사회에서, 로버트는 ‘마지막 카우보이’로 남아야 할 운명을 예감하고 있습니다. 그것을 알아봐 주는 프란체스카도 멋지고요.



7. “모순은 이런 점이야. 만일 로버트 킨케이드가 아니었다면, 나는 이 오랜 세월을 농촌에 머무를 수 있었을 것 같지가 않구나. 나흘 동안, 그는 내게 인생을, 우주를 주었고, 조각난 내 부분들을 온전한 하나로 만들어 주었어.”

― 『매디슨 카운티의 다리』, ‘나이트호크’ 커밍스와의 인터뷰, 205페이지


개인적으로 이 소설에서 가장 멋진 구절이라고 생각되는 프란체스카의 말입니다. 함께 떠날 수는 없었지만, 오히려 떠나지 못함으로써 더 큰 자유를 얻을 수 있었다는 삶의 역설…. 소설을 각색한 뮤지컬 대본에선 프란체스카의 고향, 이탈리아의 나폴리가 둘을 더 긴밀하게 이어주는 모티브로 형상화 되었는데요. 소설은 굳이 이탈리아라는 배경을 부각시킬 필요가 없습니다. 두 인물의 ‘온전한’ 영혼의 목소리가 더 훌륭하게 묘사되어 있으니.



8. “나는 단순하고 우아한 곡을 쓰고 싶었지. 복잡하게 하는 것은 쉬운 일이지. 단순함이야말로 정말 어려운 거요.”

― 『매디슨 카운티의 다리』, ‘나이트호크’ 커밍스와의 인터뷰, 205페이지


마지막 구절입니다. 이 장(章)은 뮤지컬에서는 전혀 찾아볼 수 없는 내용인데요. 작품의 여운을 더욱 깊게 각인시키는 작가의 훌륭한 에필로그가 아니었나 싶습니다. 소설을 읽으실 분들을 위하여 자세한 설명은 생략하겠습니다. :) 즐거운 독서 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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