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 역사를 만들다 - 예술이 보여주는 역사의 위대한 순간들 전원경의 예술 3부작
전원경 지음 / 시공아트 / 201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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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 역사를 만들다>는 예술 스토리텔러 전원경이 들려주는 ‘예술 3부작’ 중 첫 번째 이야기입니다. 단순한 예술의 역사가 아닌, 각 시대를 살아간 사람들의 이야기이자 그 사람들이 모여 만들어 낸 역사와 예술 이야기를 담은 책으로, 전문가 리뷰를 통해 좀 더 많은 분들에게 책의 내용을 설명하고자 의뢰한 리뷰 입니다. 첫번째 리뷰자는 문화예술 디렉터 조진의님입니다. 독자 여러분의 도서 선정에 도움이 되었으면 합니다. 



인문학이라는 것은 기본적으로 문학, 역사, 철학 등으로 구성되어 있지만 공부를 하고자 할 때는 딱히 한 분야만을 뚝 떼어 보는 것이 아닌 다양한 분야를 함께 보아야 되는 경우가 많다. 그도 그럴 것이 예술 작품을 감상할 때 역사적인 배경을 이해하지 못한다면 반쪽짜리 감상 밖에 될 수 없기 때문이다. 굳이 문화사조와 같이 커다란 역사적 흐름 뿐 아니라 작가의 소소한 개인사를 이해한다라는 것만으로도 작품을 훨씬 더 깊게 이해할 수 있는 요소들이 되기 때문이다. 역사는 있는 그대로의 사실이다. 그 역사를 알기 위해 예술로서 접근하는 것은 너무도 재미있는 과정이다. 시간의 흐름을 서사적으로 보는 관점에서 그 서사위에 예술을 독자들로 하여금 접근하기 쉽게 풀어놓은 마치 촘촘한 역사 그물망을 엮어 놓은 듯한 느낌의 책이다.


저자는 서두에서 알랭 드 보통의 ‘뾰족한 모서리’라는 말을 빌려 예술이 가진 위안의 역할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살면서 부딪히는 아픔의 모서리를 치유해주는 것이 바로 예술이라고 말이다. 명동성당 바로 옆 아주 오래된 삼일로 극장에는 이런 문구가 아직도 붙어 있다.


“예술이 가난을 구하지는 못하지만 위로 할 수는 있다.”


예술이 가지는 힘은 삶 속에서 부딪치는 다양한 현실을 반영하면서 동시에 위로하고 있다. 삶을 살아가는 민중들의 순간순간과 하루하루가 모여 하나의 역사가 되듯 그 치열한 삶 속에서 예술이 열어주는 공간과 시간 또한 바로 오늘의 역사를 이루었다.


적어도 교양으로서의 삶의 풍요로움을 위해서 예술을 접하고 싶다면 가장 기본적으로 권하고 싶은 저서임에는 주저함이 없다. 예술을 직접 접하고 학습하는 방법은 실로 다양해졌다. 일반적으로 우리는 도서와 강의 ,인터넷 강좌들 그리고 직접 보고 느꼈던 많은 작품을 통해 예술적 접하려고 노력하지만 역사라는 관점에서 예술이라는 관점에서 자연스럽게 정리해주는 책이다.


예술작품은 작가의 의도와 상관없이 역사를 만들어 갈 때가 많다. 후기 인상주의 화가 3인방(고흐, 고갱, 세잔)이 현대를 열고자해서 그림을 그렸을까? 그렇지 않을 것이다. 그들의 불꽃과 같은 열정으로 만들어진 작품들이 역사적 필연성으로 자연스럽게 현대미술의 토대를 마련해주었다.


이 책의 작가는 3인칭의 관점에서 예술이 만들어 가는 역사의 이야기들을 우리들에게 차분하게 이야기 해주고 있다. 자신의 감정과 역사적인 안타까움과 성취감은 잠시 접어둔 채 이야기 하듯. 설명하듯 예술로서 역사를 풀어주고 있다.


음악을 너무도 사랑하는 누군가로부터 이런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미술관에서 감상을 할 때 음악이 없어서 반쪽짜리 같다고. 그러자 사람들은 곧장 이야기 했다. 음악이 감상자의 의도를 방해할 수 있다고 말이다. 작가는 전시회장과 같은 공간을 열어준다. 작품만이 조명을 받으며 빛날 뿐이다. 우리에게 아주 자연스럽게 역사적인 사건들로 다음 전시장의 다음 작품을 하나하나 이어주고 있다.


이 책을 마치 소설과 같이 처음부터 끝까지 차례대로 읽을 필요는 없어 보인다. 자신이 관심있는 분야를 보고 다음 관심 있는 분야를 보아도 전혀 무방하다. 그렇게 전체적으로 그려놓은 예술과 역사의 조각을 작품을 감상 할 때 마다 하나씩 꺼내어 다시금 역사의 조각을 맞추어 나간다면 더욱 더 재미있을 것이다.


1.고대 이집트, 그리스로마

- 고대이집트 : 영원을 꿈꾼 왕과 여왕들

인류문명의 시작은 이집트에서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많은 연구가 진행되어왔지만 피라미드와 스핑크스는 그 자체만으로 신비로울 따름이다. 오랜 역사만큼 다양한 이야기도 많지만 간결하게 이집트의 역사를 잘 정리해주었다. 그리고 이집트의 고고학적 부활에 나폴레옹의 역할과 루브르박물관에서 가장 큰 드농 관은 원래 도미니크 비방 드농(1747-1825)의 이름에서 따온 것으로 나폴레옹의 이집트 원정에서 고대 이집트 문명을 재발견하여 세상에 알린 인물이다. 더불어 로제타석의 해독과 이집트 미술의 관점, 투탕카멘과 네프르티티의 이야기, 이집트 최후의 왕이었던 클레오파트라의 스토리들은 오페라의 <아이다>, 모차르트의 <마술피리> 등 이집트 문화가 예술작품에 영향을 미치게 된다.


-그리스 로마 : 정복자 혹은 침략자

이집트의 이야기가 신화적인 느낌이라면 그리스와 로마이야기는 영화를 보는 것 같은 다큐멘터리 느낌이다. 그리스와 로마하면 전쟁장면이 가장 먼저 생각나듯이 그리스·로마의 호전성이 예술에 많은 영향을 미친다. 조각에서 많이 보이는 건강한 남자의 몸은 군사력을 상징했던 것이다. 이 당시의 예술은 종교를 위한 소도구의 역할을 하게 된다.

로마로 넘어오면서 예술은 실용성을 가지게 된다. 신보다는 귀족과 황제를 조각하기 시작했고 그들의 이야기는 예술가들 사이에서 아직도 변하지 않는 영원한 주제가 되었다.

나폴레옹이 로마 티투스 황제의 개선문을 따라 파리의 개선문을 세웠고 로마신전인 판테온은 르네상스 건축을 여는 모티프가 되었고 현재, 프랑스 국립묘지의 롤 모델이 되었다.



2.초대기독교, 비잔틴과 콘스탄티노플, 중세,십자군과 고딕

-초대기독교 : 영원한 삶에 대한 믿음

기독교가 어떻게 이렇게 오래까지 살아 남았는지 그리고 예술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설명하고 있다. 믿음만으로 영생을 유지할 수 있다는 기독교의 기본 교리는 아직까지도 그 존재 이유를 잘 설명해주고 있다. 천지창조, 노아의 방주, 다윗과 골리앗, 아담과 이브 등구약성서 이야기 들은 너무도 유명하고 상식적인 소재들이면서 동시에 수 많은 예술작품을 탄생시킨 모티프들이다. 신약의 수태고지, 예수의 부활, 최후의 심판 등의 이야기들 또한 313년 밀라노 칙령 이후 예술의 중요한 테마로 자리 잡게 된다.


-비잔틴과 콘스탄티노플 : 잊혀진 제국

고대 그리스 로마의 문화와 천년의 중세예술을 살펴보기 위해 반드시 건너야 하는 다리와 같은 역할이라고 이야기한다. 서로마는 476년 멸망이후 긴 중세의 시대로 접어들었지만 동로마로 불리우는 콘스탄티노플은 1000년을 더 제국을 지키면서 자신만의 비잔티움 문화를 키워나간다. 비잔티움 예술의 최고 걸작인 성소피아 성당의 건축이다. 지혜의 성당이라는 뜻으로 추후 오스만 제국의 콘스탄티노플을 침략했을 때도 성소피아가 기독교 성당임에도 불구하고 그 아름다움에 반해 파괴하지 않았고 오스만은 이슬람의 위대함을 알리고자 성소피아 성당 바로 맞은편에 이슬람의 성전인 블루모스코를 지었다.


-중세, 십자군과 고딕 : 기괴한 혹은 성스러운

중세 문화적으로 암흑의 시대였지만 프랑크 왕국의 카롤루스 대제는 문화적 꽃을 활짝 피운다. 자신의 궁정에 미술 아카데미를 열었고 장인들을 한곳에 모이도록 했다. 이때 처음으로 그리고 로마와는 다른 중세풍의 화풍들이 등장한다. 물론 내용은 모두가 신앙에 관한 것이었다. 이를 보고 ‘카롤링거 르네상스’라 부른다. 더불어 십자군 전쟁이 유럽의 문화와 예술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를 상세하게 설명하고 있다.


4. 르네상스, 오페라와 연극, 발레의 시작

- 르네상스 : 꽃의 도시에 찾아온 봄

이제 르네상스다. 새로움이 아닌 ‘재생’의 의미인 르네상는 피렌체에서 시작되어 본격적으로 예술이 그 꽃을 피우기 시작하며 인문학이 등장하기 시작한다. 단테가 베아트리체를 여신으로 표현하고 로렌초 데 메디치는 조각상의 위탁아로 있던 미켈란젤로를 양자로 삼았으며 부르넬리스키는 로마의 위대한 판테온을 모티브로 피렌체 두오모를 완성했으며 라파엘로는 율리우스2세 교황의 요청으로 그의 서재에 아테네 학당을 그리게 되었다. 드디어 인간에 눈을 뜨는 예술이 시작되었다.


- 오페라와 연극, 발레의 시작 : 무대가 열리다

드디어 무대 예술도 본격적으로 성장하게 된다 이탈리아에서 시작된 오페라는 독일지방으로 퍼졌고 런던에서는 매일 연극 무대가 열렸다. 세익스피어는 엘리자베스 1세 여왕 앞에서도 연극무대에서 ‘연약한 자여 그대이름은 여자’라는 대사를 자유롭게 읊을 수 있었다. 이런 무대 예술의 중심에는 기사들이 있었다. 독일 지역의 백조 기사를 토대로 이후 바그너는 <로엔그린>를 통해 중세 기사의 신비로움과 낭만을 표현했다. 또 가장 위대한 소설로 불리우는 <돈키호테>도 인간 스스로의 존재를 인식하며 이 당시에 만들어 진다.


5. 종교개혁, 절대왕정과 바로크, 로코코와 계몽주의,

- 종교개혁 : 분열된 유럽

종교개혁은 사회적으로는 혼란을 가져왔지만 예술에 있어서는 결과적으로 음악과 미술의 발전을 가져 왔다. 드디어 개인의 존재에 대한 자각이 시작되었으며 철학이라는 학문이 독일에서 탄생하게 된다. 인쇄술이 발전은 종교개혁을 가속화 시켰고 유럽을 소용돌이로 몰고 갔으며 민족정신을 일깨우기 시작했다. 그 불안속에서 매너리즘 사조가 유행하였고 간소함과 일상에충실하자라는 프로테스탄트 예술이 탄생 하게되었다.


- 절대왕정과 바로크 : 내주는 강한 성이오

국가라는 이념 확실하게 예술에 나타나게 된다. 회화에서는 극적인 표현들이 두드려졌고 16세기 지동설 등 과학이 회화의 발전에 영향을 미치게 된다. 프랑스에서는 루이 14세는 스스로를 예술가라 칭하면서 절대왕정과 예술을 결합한 프랑스 바로크를 탄생시킨다. 북유럽 네델란드를 중심으로 시민예술이 싹트기 시작했으며 최초로 신들이 아닌 시민의 삶이 그림속에서 표현이 되기 시작한다


- 로코코와 계몽주의 : 귀족과 시민들이 꽃피운 예술

드디어 예술사조 또한 각 지역별로 하나의 사조가 아닌 지역적, 경제적 상황에 맞는 사조가 등장하게 된다. 루이14세는 베르사유 궁에서 최고의 예술을 즐겼다. 왕실에서 시작되었지만 로코코를 주도한 것은 귀족들이었다. 예술의 향유층이 아래로 내려갔고 시민들 또한 예술을 즐기게 되었다. 영국에서는 시민혁명을 완성시킨 시민들은 예술의 주도권을 가지고 있었으며 이를 바탕으로 걸리버 여행기와 같은 대중문학이 탄생시켰다.


6. 18세기의 유럽, 프랑스 대혁명, 독일 음악과 낭만주의, 이탈리아 통일과 오페라

- 18세기의 유럽 : 터키는 왜 예술가들에게 동경의 대상이었나

‘오스만 투르크’는 공포와 동경의 대상이었다. 콘스탄티노플을 침공한 오스만은 공포였지만 그들이 가진 문화와 예술은 서유럽인들에게는 경이로움이었다. 오스만의 군대는 ‘메흐테르’라는 군악대는 행진곡으로 유명해졌고 모차르트를 비롯하여 많은 <터키 행진곡>으로 발전하게 된다. 빈은 문화적으로 가장 중요한 도시가 되었고 커피가 처음 소개되기도 하였다.


- 프랑스 대혁명 : 혁명, 유럽에 퍼지다.

1789년의 프랑스 대혁명은 그 이념이 미술을 통해 전파되었다. 자크 다비드는 <호라티우스 형제의 맹세>를 통해 국가를 위해 목슴을 바치겠다라는 신념을 퍼트리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아직도 파리지엔들은 개인적으로는 이기적이지만 대의를 위해 기꺼이 죽을 수 있다는 생각을 가지고 살고 있다. 혁명의 불길은 번져나가고 불세출의 영웅 나폴레옹의 등장으로 유럽은 문화적 소용돌이로 접어들면서 낭만주의가 서서히 고개를 들게 된다


- 독일 음악과 낭만주의 : 검은 숲을 방랑하는 ‘겨울 나그네’

아이러니하게 당대 주요 예술가들이 흠모했던 영웅 나폴레옹의 야망이 휩쓸고 지나간 자리에 낭만주의는 싹트기 시작했다. 독일 대학생들은 통일 국가의 열망이 커져갔고 프로이센에 대한 저항운동은 낭만주의의 이념의 토대가 되었다. 좌절과 어두움 자살을 유행시킨 낭만주의는 슈베르트의 ‘겨울 나그네’를 탄생시켰고 괴테의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을 만들어 냈으며 바그너의 ‘니벨룽겐의 반지’를 창작시킨다. 음악은 낭만주의 정신에 가장 적합했고 미술을 제치고 가장 중요한 예술 장르가 된다.


- 이탈리아 통일과 오페라 : 비바 베르디!

17세기 이래로 르네상스를 꽃피웠던 이탈리아는 예술의 순례지였다. 그러나 18세기 이후 로마의 예술은 조금식 시들어 갔지만 오페라는 대중들에게 폭발적인 인기를 끌기 시작했다. 이 오페라는 ‘통일된 이탈리아’를 염원하는 촉매제 역할을 했으며 그 중심에 베르디가 있었다. 특히 오페라 <나부코>에서의 ‘노예들의 합창’은 그들의 염원을 마음껏 대변해주었다. 결정적으로 <리골레토>는 이태리인들이 가장 사랑하는 오페라로 손꼽히며 베르디를 민족의 영웅으로 만들어 주었다.


7. 산업혁명, 인상주의 미술과 표제음악

- 산업혁명 ; 파리의 보헤미안, 낭만에 빠지다.

산업혁명은 경제적인 안정을 가져왔고 철도의 발명은 전 유럽인을 하나로 만들어 주었다. 1848년 2월 혁명으로 프랑스의 첫 번째 대통령이 된 나폴레옹 3세는 파리 근대화를 통해 지금의 아름다운 파리를 만들었다. 몽마르트 언덕으로 예술가들이 모여들었고 형태를 파괴하고 빛에 의해 만들어진 색상을 강조는 인상파가 등장하였다. 모네는 원근법은 파괴하며 성스러운 비너스를 창녀 올랭피아로 치환하며 모더니즘 시대를 열기 시작했다.


- 인상주의 미술과 표제음악 : 햇빛과 물결을 예술에 담다

카메라가 발명되었다. 더 이상 사물을 똑같이 그릴 필요가 없어졌다. 튜브물감이 발명되었다. 이제 야외에서도 마음껏 그림을 그릴 수가 있게 되었다. 이런 바탕위에 인상주의는 탄생하게 되었고 세계적인 미술사조가 되어 버렸다. 모네에서부터 본격화된 인상파는 르노와르와 세잔느로 이어지면서 더욱 더 발전하였고 그 발전은 초기 인상파의 차원을 넘어 후기 인상주의 화가들인 고흐, 세잔, 고갱에 의해 현대미술의 시작을 열어가게 된다.


음악에 있어서도 작곡가의 감정이 보다 더 깊이 표현되었다. 쇼팽과 리스트는 작곡가의 위치를 더욱더 확고하게 만들었고 표제음악이 엑트로 베를리오즈의 <환상 교향곡> 의해서 본격화되었다. 드뷔시는 음악의 인상주의를 열었다. 모든 예술가들은 개인의 주관 그리고 발전한 도시의 역동성과 자유로움을 표현하였다.


8. 예술 산업의 성장, 빅토리아 시대

- 예술 산업의 성장 : 직업 예술가와 컬렉터의 등장

예술이 본격적으로 시민의 주도로 넘어오게 되면서 예술품을 사고 파는 ‘시장’이 전 유럽에 걸쳐 형성되었다. 로시니는 최초의 국제적 작곡가로 이름을 알리며 <세비야의 이발사>를 만들었고 이 작품은 유럽은 물론 뉴욕에서까지 공연이 열리게 되었다. 한편, 파가니니는 전 유럽 예술가들의 마음을 뒤 흔들었으며 리스트는 1천회가 넘는 독주회를 단 9년간에 해치우게 된다. 본격적으로 지휘자의 위치가 공고해지고 오케스트라도 탄생하게 된다.


- 빅토리아 시대 : 섬나라 영국의 이상한 퇴보

해가지지 않는 나라의 영국의 수도인 런던이 세계 최고의 도시가 된 것은 너무도 당연한 일이다. 언론의 발전에 힘입어 찰스 디킨스와 같은 대중문학도 성장하였으며 셜록홈즈도 탄생하게 된다. 예술에 있어서는 낙후된 영국이었지만 인상파의 탄생에 가장 큰 영향을 준 터너의 작품도 탄생하였고 과거로 돌아가자며 진실한 아이디어를 작품으로 옮기겠다며 라파엘 전파가 등장하기도 하였다.


9. 미국과 러시아, 예술속의 제국주의

- 미국과 러시아 : 두 개의 변방

청교도들의 땅이었던 미국은 1783년 독립은 쟁취하였다. 그러나 절제를 강조하는 청교도 정신에 맞추다 보니 문화와 예술이 꽃피기는 힘들었다. 그러나 19세기 전반부터 풍경화를 필두로 미국 미술은 탄생하였으며 19세기 말에는 미국문화는 개인주의와 평등을 필두로 민주주의가 발전하였다. 이런 세상을 보고 놀라서 만든 것이 드보르작의 <신세계 교향곡>이다.


러시아는 경제적인 어려움에 처해있었다. 이런 이유로 역시 예술의 토양은 척박하기만 했다. 이런 가운데도 차이코프스키는 교향곡 뿐 아니라 발레와 실내악 그리고 오페라까지 다양한 분야를 아우르는 러시아를 대표하는 음악가가 되었다.


- 예술 속의 제국주의 : 먼 나라 일본에 대한 동경

동방 끝의 아주 멀지만 황금이 가득한 나라로 일본은 유럽인들의 마음을 뒤 흔들었다. 대항해 시대에 다다른 유럽의 강대국들은 일본의 교역을 통해 수입된 문화를 통해 더더욱 동경하게 된다. 이 동경은 단순함 동경으로 끝나는 것이아 아니라 자포니즘이라는 하나의 문화사조로서까지 자리 잡게 되고 일본의 목판화인 우키오예의 색감과 구도등은 인상주의 화가들에게 결정적인 영향을 끼치게 된다


10. 20세기 초의 예술, 1,2차 세계대전

- 20세기 초의 예술 : 1913년, 위대한 마지막 1년

마침내 근대시대가 저물고 현대시대가 움트고 있었다. 피카소는 3차원을 2차원에서 표현하며 입체파를, 마티즈는 강력한 색채로 야수파를, 뭉크는 휘몰아치는 붓터치로 표현주의를 탄생시켰다. 예술적으로는 획기적인 혁명과도 같은 폭발적인 발전을 보였으며 정치적으로는 새로운 세상에 대한 낙관이 넘쳤으나 1914년 세계대전이라는 참혹함을 경험하게 된다.


- 1,2차 세계대전 : 불안에 빠진 유럽

1차 대전과 2차 대전은 이전 인류가 경험해보지 못한 대전쟁이었다. 그 참혹한은 이루 말할 수가 없었다. 나치의 박해를 피해 많은 예술가들이 미국으로 망명했으며 그 결과 예술의 중심이 유럽에서 미국으로 넘어가는 계기가 된다. 2차 대전 후 현대 미술의 중심은 확실하게 미국으로 넘어갔으며 현실을 부정하거나 회피하는 살바토르 달리의 초현실주의와 마르셀 뒤상의 <샘>은 미술에 대한 혁명과도 같은 사고의 전환을 마련하는 계기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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