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세 2 : 1000~1200 - 성당, 기사, 도시의 시대 움베르토 에코의 중세 컬렉션 2
움베르토 에코 기획, 윤종태 옮김, 차용구.박승찬 감수 / 시공사 / 201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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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움베르토 에코 기획의 <중세>는 묵직한 볼륨감으로 인해 이벤트를 통한 서평이나 리뷰를 받기 어려워, 이 책을 좀 더 전문적으로 리뷰를 해 주실 수 있는 분들에게 리뷰를 요청 드렸습니다. 이번 편은 정재웅 경제학 박사님이 작성 해 주셨습니다. 독자 여러분의 책 선정에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었으면 합니다.



“중세”하면 무엇이 연상되는가? 국왕, 영주, 기사, 교황, 추기경, 고딕 양식의 성당, 흑사병, 마녀사냥, … 대부분 우리가 상상하는 것은 이런 것들이다. 간혹 “왕좌의 게임” 혹은 “반지의 제왕” 같은 드라마나 영화를 떠올리는 사람도 있을지 모르겠다. 우리가 유럽의 중세에 대해 갖는 것들은 거의 대부분 이러한 “이미지” 들이다. 즉 사람들이 숨쉬고 살아간 총합으로서 역사를 포괄적으로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대중매체를 통해 전달된 이미지들이 우리가 일반적으로 인식하는 “중세”를 대표한다. 그 결과 이미 학계에서 오래전에 폐기된 “중세는 암흑시대”라는 개념이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인식되어 있다. 움베르토 에코가 책임 편집한 이 책은 이런 의미에서 신선하다. 우리가 단편적으로만 알고 있거나 혹은 암흑시대라는 관념에 사로잡혀 제대로 인식하지 못한 중세를 상세하게 개괄해준다. 이야기 형식이 아니라 역사, 철학, 과학과 기술, 문학 등 “인간 활동”의 각 부문별로 중요한 사건, 인물, 그리고 작품을 짧은 논문 형태로 서술하고 있기 때문에 당대의 모습과 그것이 후대에 끼친 영향, 그리고 그것을 현재 우리가 해석하는 방식에 대해 더 객관적으로 알 수 있다.


컴퓨터 게임 중에 “크루세이더 킹즈2”라는 게임이 있다. 영국을 정복한 후 정복왕 윌리엄 1세로 즉위하는 노르망디 공작 기욤이 1066년 영국을 침공해 벌이는 헤이스팅스 전투부터 비잔틴 제국이 멸망하는, 곧 중세가 끝나는 1453년까지 유럽의 유력 귀족 가문들 중 하나를 선정해 가세를 확장하고 작위를 높이며, 높아진 작위를 상속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게임이다. 게임이지만 중세의 정치적, 역사적 모습을 비교적 잘 재현한 이 게임에서 귀족-영주들은 우리가 지금까지 알고 있었던 것처럼 자신의 영지에서 절대적 권한을 갖고, 전쟁을 수시로 하는 무사집단이 아니다. 오히려 복잡한 주종관계로 얽힌 계서제에서 자신의 영향력을 확대하고 가문을 성장시키기 위해 노심초사하는, 어떻게 보면 현대 대기업의 중간관리자와 유사하다. 이 책에서 나오는 중세의 역사도 이와 마찬가지다. 지금까지 우리는 중세의 역사에 대해 교황권이 황제권에 승리한 카노사의 굴욕, 교황권의 절정이었던 십자군 원정, 아니면 노르만의 정복 등 단편적인 “사건”으로 그것을 알고, 이해했다고 생각했다. 이 책에서는 중세의 역사는 저런 몇몇 단편적인 큰 사건으로만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교황, 황제, 세속 군주들, 성직자들, 시민들 각각의 활동의 총합이 역사를 이루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예컨대 프리드리히 1세 바르바로사에서 시작되는 호엔슈타우펜 신성로마제국 황제의 영향력 확대와 황위 계승에 얽힌 황제와 교황 및 이탈리아 북부 도시국가들의 충돌, 혹은 황제권의 강화를 놓고 독일 내부에서 프리드리히 1세와 작센의 사자공 하인리히 그리고 다른 귀족들과의 충돌은 중세가 단선적이고 무미건조한 단색이 아닌, 복합적인 모습을 갖고 있음을 보여준다. 정치제도로서 봉건제도의 특성은 영토가 넓어질수록 전체 영토 대비 황제의 직할령 비율을 줄어들기 때문에 오히려 황제의 영향력이 감소할 가능성이 높아지고, 반대로 유력 귀족, 예컨대 사자공 하인리히 같은 경우는 오히려 황제와 대등한 영향력을 가질 수 있다. 이에 더해 신성로마제국의 내부인 동시에 외부인 이탈리아는 교황령이라는 독특한 정치적 특성과 일치감치 코무네를 만들어 시민 자치를 경험한 북부 도시국가, 그리고 남부의 양시칠리아 왕국이라는 복잡한 형태로 자신들만의 독특한 모습을 보인다. 그 대표적 예가 프리드리히 1세의 이탈리아 장악 시도에 맞서 북부 이탈리아 도시국가들이 롬바르디아 동맹을 결성해 맞선 것이나 중세 초기 노르만이 시칠리아와 남부 이탈리아를 정복하여 왕국을 세운 것이다. 이처럼 중세의 역사는 서로 다른 이익을 추구하는 다양한 집단들이 자신들의 이해관계에 따라 이합집산을 반복하는 모습을 보였기 때문에 오히려 르네상스 시기나 그 이후 국민국가가 확립된 근대보다도 오히려 더 역동적이고 현대와 가까운 모습을 보인다고 할 수 있다. 즉 국가권력뿐만 아니라 시민권력, 종교권력, 상인권력 등 다양한 이익추구의 모습이 역동적인 상호관계를 보였기 때문이다. 이는 무엇보다 경제활동에서 더욱 확실하게 나타나는데, 1,000년 이후 상업이 발달하면서 제노바, 베네치아 등 지중해를 무대로 이슬람과 교역하는 해양 무역 국가가 나타났고, 샹파뉴 정기시로 대표되는 정기시들이 생겨났다. 이러한 모습은 “상업혁명”으로 이어졌고, 상업혁명은 제조업의 성장뿐만 아니라 화폐의 활발한 사용과 어음 같은 신용수단의 성장을 촉진시켰고, 더 나아가 아라비아 숫자의 도입과 복식부기의 발명 등 수학과 경영학의 발달로 이어졌다. 정치체제와 경제체제가 연결되고 이것이 다시 학문과 연결되어 서로 발전을 이루는 이러한 역동성은 중세가 정체된 시기가 아니라 오히려 현대가 형성될 수 있는 기반을 만든 시기라고 할 수 있는 근거가 된다. 중세 신분제도 역시 마찬가지다. 우리는 중세의 신분에 대해 “성직자, 귀족, 평민”으로 고정된 신분제도라고만 인식하고 있었지만, 실제로 귀족이나 평민은 언제든지 성직자가 될 수 있었고, 성직자 역시 “백작 주교”라 일컬어지는 고위 성직자가 되어 성직자 겸 귀족이 될 수 있었다. 뿐만 아니라 평민들 중에서 귀족들의 생활에 꼭 필요하지만 귀족들이 해서는 안 되는 일을 하는 사람들, 즉 상인, 법학자, 의사, 공증인 등은 부르주아가 되어 부를 축적할 수 있었으며, 베네치아나 제노바 같은 이탈리아 도시국가나 뤼베크나 함부르크 같은 독일의 자치도시에서는 도시의 지배계급이 되기도 했다. 중세의 역사는 다양한 이해관계를 지닌 다양한 집단이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때로는 충돌하고, 때로는 협력하면서 진행되었고, 그 결과 현대를 형성하는 상당히 많은 요소들이 나타나서 무르익은 시기라고 할 수 있다.


철학에 있어서는 기독교가 중심에 있었던 시기이니 만큼 기독교 철학이 주류를 이루었는데, 우리가 흔히 알고 있었던 것처럼 “성경에 반하는 것은 모두 이단” 식의 꽉 막힌 연구가 이루어지지 않았다. 예컨대 성찬식에서 빵과 포도주의 본질이 변화하는가를 놓고 벌어진 투르의 베렌가리우스와 파비아의 란프랑쿠스 사이 논쟁은 기독교 교리의 철학적 해석에 있어 얼마나 자유로움이 보장되었는가를 알 수 있는 대표적 사례다. 뿐만 아니라 이 시기를 통해 플라톤 철학이 재발견되기도 했고, 이슬람과의 교류 및 수도원에서의 학문 연구로 고대 그리스 시대의 연구인 유클리드의 『원론』이나 프톨레마이오스의 『구체 평면도』 같은 저작들이 라틴어로 번역되기도 했다. 이러한 학문적 연구는 다시 파리 혹은 볼로냐에 있는 대학에서 강의되었다. 과학에 있어서는 이슬람의 영향을 많이 받았는데, 이슬람 수학자 알 콰리즈미가 계산 방식에 대해 저술한 『알 자브르』를 받아들였다. 이를 통해 유럽의 수학이 발달할 수 있었고, 알 콰리즈미는 현재 “알고리듬”의 어원이 되고, 알 자브르는 “알제브라” 즉 대수학이 되었다. 공학 및 기술 측면에 있어서는 생산력 증대를 위한 수력 방아가 보편적으로 사용되었는데, 잉글랜드 정복왕 윌리엄 1세 때 작성된 『둠즈데이 북』에는 5,264개의 물레방아의 존재가 언급되어 있었다. 철학, 과학, 공학 등 학문 영역에 있어서도 유럽은 자체적으로 혹은 이슬람 문화를 받아들여 끊임없는 발전과 혁신을 보여주었고, 이러한 성과 역시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다. 중세가 암흑시대가 아니라, 현대가 나올 수 있는 요람이었음을 이를 통해 알 수 있는 것이다.


문학에 있어서는 이 시기에 라틴어가 아닌 유럽 언어 즉 로망스어로 쓰인 최초의 작품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기록상 가장 오래된 것은 프랑스에서 연대기 작가인 니타르트가 그의 저서 『역사』에서 인용한 <스트라스부르 서약>이다. 그러나 최초의 문학 관련 문헌들은 1,100년 이후에 등장하는데 이 시기부터 점진적으로 유럽은 라틴어가 아닌 자신의 지역 언어로 문학을 서술하는 것이 증가한다. 또한 이 시기는 기독교가 우세했던 것과는 상반되게도 환상문학이 본격적으로 태동한 시기다. 11세기 초에 기록된 『베어울프』의 필사본이 현재까지 전해지고 있고, 『니벨룽겐의 노래』는 파사우의 주교인 볼프거 폰 에우라가 주문하여 12세기에 중세 고지독일어로 쓰인 것으로 추정된다고 한다. 물론 성인들의 행장을 기록한 성인전은 이것보다 더 활발하게 기록되고 출판되었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로망스어로 기록된 문학과 환상문학이 태동하기 시작한 것은 『반지의 제왕』 이나 『해리 포터』 시리즈로 대표되는 현대 유럽의 환상문학이 이미 1,000년경에 나타난 환상문학을 계승하고 있음을 알게 해준다. 건축에 있어서는 피사 대성당으로 대표되는 로마네스크 양식이 이 시기 대표적인 건축양식인데, 이것의 특징은 창문과 문에 아치를 많이 쓰고, 건물 내부를 지탱하기 위해 원통형 볼트와 교차 볼트를 사용한 것, 그리고 아치로 인해 생긴 밖으로 미는 힘을 지탱하기 위한 창문이 거의 없는 두꺼운 벽이다. 이는 나중에 고딕양식으로 계승된다. 이를 통해 성당은 웅장한 형태를 갖게 되는데, 이는 성당이 하느님의 집이자 사람들이 구원을 받는 터전으로 인식되었기 때문이다. 비록 건축은 현대 건축과의 연속성이 떨어지지만, 그렇더라도 로마네스크 양식이 이후 건축 양식에 끼친 영향은 무시할 수 없을 것이다.


움베르토 에코가 기획하고 각 분야별 학자들이 저술에 참여한 『중세』 시리즈는 이야기 형태의 역사책이라기보다는 전문가들의 짧은 논문을 통해 중세 각 분야에 대해 개괄하고 추가적인 독서를 할 수 있는 힌트를 주는 일종의 백과사전식 개론서라고 할 수 있다. 유럽 중세에 대해 개론서가 그렇게 많이 없는 한국의 현실에서는 역사 전공자 혹은 역사 애호가가 아닌 이상 책을 읽는데 다소간의 어려움이 있을 수는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럽 중세의 역사를 최신 연구 성과를 반영하여 종합적으로 이해하기에는 이 책보다 더 좋은 책은 없을 듯하다. 역사를 바탕으로 종횡으로 당대의 각 분야별 이슈를 엮어나가는 것이나, 각 분야별로 중요한 인물이나 사건, 업적을 난해하지 않게 잘 이해할 수 있도록 서술한 것은 단연 탁월하기 때문이다. 무르익어가는 중세, 1200년부터 1400년까지 성, 상인, 무역의 시대를 다룰 다음권이 벌써부터 기다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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