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세 2 : 1000~1200 - 성당, 기사, 도시의 시대 움베르토 에코의 중세 컬렉션 2
움베르토 에코 기획, 윤종태 옮김, 차용구.박승찬 감수 / 시공사 / 201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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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움베르토 에코 기획의 <중세>는 묵직한 볼륨감으로 인해 이벤트를 통한 서평이나 리뷰를 받기 어려워, 이 책을 좀 더 전문적으로  리뷰를 해 주실 수 있는 분들에게 리뷰를 요청 드렸습니다. 이번 편은 중세 1의 리뷰를 진행하셨던 유대칠 오캄연구소장님이 작성 해 주셨습니다. 독자 여러분의 책 선정에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었으면 합니다.



중세, 결코 조용하지 않은 인간의 이야기

- <중세>2를 읽고


흔히 ‘중세’라면 조용하고 조금은 어두운 공간을 생각한다. 검은 차림의 수사들이 줄을 지어 성당을 향해 걷는다. 거대한 대리석 기둥으로 만들어진 높디 높은 성당은 키작은 집으로 가득한 마을 중심에 하늘 높이 세워져있다. 조용하고 어둔 배경으로 알아들을 수 없는 라틴어 성가가 흘러나온다. 우리네 인간의 공간이라기 보다 무엇인가 우리 인간에게 어색한 그런 느낌이다. 사랑하는 연인과의 가슴뛰는 만남도 없고, 서로를 향한 사랑의 노래도 없을 듯 하다. 그저 신을 향한 노래와 기도만 가득한 곳이라 생각한다. 우리 인간에겐 어색한 곳, 그저 하늘을 향해 살아가는 지상에 있지만, 지상에 어울리지 않은 곳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틀렸다. 아니다. 중세는 그렇지 않다. 조용하지 않다. 우리 인간에게 어색한 공간도 아니다. 이런 저런 온갖 인간들의 이야기들로 가득한 조용하지 않은 시간이다. 움베르토 에코 기획의 <중세>2를 읽고 든 첫 생각이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중세 역시 우리 인간이 살아간 인간의 시간이었다. 성당도 우리네 인간으로 가득하며, 기사도 그저 우리와 같은 인간이고, 도시도 흔하디 흔한 우리 인간의 삶으로 가득했다. 이상하게 중세에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남녀의 사랑과 그 사랑를 노래한 달콤한 음악이 가득한 시간이었다. 그저 믿기만 하던 신앙이 아닌 인간의 이성으로 신의 말씀을 이해하기 위해 노력하던 시간이기도 했다. 인간이란 이성적 동물의 이해하는 신앙을 위한 애씀이 있던 시간이기도 했다. 중세란 이렇게 인간의 시간이었다. 우리와 같은 인간들이 살아가고 고민하고 해결하며 웃고 울던 그런 인간의 시간이었다. <중세>2가 보여주는 중세의 인간은 남성에만 한정되지 않는다. 여성도 마찬가지다. 이제까지 왠지 중세라는 역사의 주변부에 있을 것 같은 여인들의 철학과 권력 그리고 사랑과 그 사랑의 찬가들 역시 중세를 채우고 있다. <중세>2가 보여주는 중세는 오직 유럽인의 중세에 한정되지 않는다. 역사 속 중세는 유럽만의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슬람과 동유럽 그리고 중국 등의 중세 역시 분명한 중세다. 그 역시 조용하지 않다. 이슬람엔 천재 학자인 이븐 시나가 있었고, 그의 치열함으로 만들어진 그의 의학과 철학은 중세 무슬림 사회를 넘어 유럽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철학자들을 흥분하고 들뜨게 만들었다. 조용하지 않다. 수도원과 성당이 세워지지만 그 역시 인간 삶 속의 일부로 존재하던 시기다. 그 가운데 고민되던 철학과 신학도 결코 조용하지 않았다. 온갖 논쟁으로 가득했다. 그 열정적인 시끄러움이 중세를 채웠다. 중세의 활기가 되었다. 조용하고 어둡다는 분위기와 달리 인간으로 가득한 축제와 연극 그리고 예술가의 열정으로 가득한 공간, 그것이 바로 중세다. 이것이 바로 인간이 살던 ‘진짜’ 중세다.


중세란 수많은 인간의 삶으로 이루어진 삶의 총체다. 조용할 수 없다. 신을 향한 사랑만큼 연인을 향한 사랑도 당연했다. 신앙에 의한 영혼의 치유만이 아니라, 의학이란 인간 이성을 통한 질병의 치유가 당연한 시기였다. 천국을 향한 열망과 함께 물건을 더 팔기 위해 상인의 애씀 또한 당연했다. 풍년을 향한 농사꾼의 애씀과 예술가의 예술혼도 당연했다. <중세>2는 바로 그러한 중세를 우리에게 보여준다. 우리 인간에게 어색하지 않은 중세 말이다.


조용하지 않은 중세 1000-1200년

중세는 결코 조용하지 않다. <중세>2에 담긴 그 진짜 중세는 절대 조용한 공간이 아니다. 인간은 보다 더 선명하게 자신의 눈으로 신과 우주 그리고 인간 자신을 보려 했다, 예수 승천 이후 서서히 내려앉은 그리스도교는 이제 유럽의 종교가 되었다. 비록 동방교회와 서방교회의 분열이 있었지만, 유럽이 그리스도교의 공간이란 점은 달라지지 않았다. 지중해의 또 다른 곳엔 이슬람교가 서서히 자리를 잡아가고 있었다. 중세 많은 학자들은 자신들이 신앙을 두고 고민하였다. 신앙 자체에 대한 회의라기 보다 자기 자신이 믿는 것에 대하여 보다 더 합리적으로 이해하기 위하여 노력하기 시작했다. 당연하다. 인간은 이성적 동물이기 때문이다. 자신의 이성으로 신앙을 이해한다는 것은 자신의 언어로 자신의 신앙을 자신의 논리 속에 담아 말하려는 노력의 첫 걸음이다. 이러한 첫 걸음은 이성적 동물인 인간이 신을 향한 첫 걸음이기도 하다. 이러한 첫 걸음은 결코 도달할 수 없는 신이란 종착지를 향한 인간의 헛된 첫 걸음이 아닌 인간이란 존재가 처한 환경에서 최대한 신에게 다가가려는 신앙의 첫 걸음이기도 했다. 이제 그저 믿는 것이 아니라, 이해하며 믿으려 했다. 이것이 참 신앙이라 생각했다. 중세라면 떠오르는 신앙과 이성의 조화 혹은 이성화된 신앙은 모두 바로 이러한 이야기다.


이쯤에서 안셀무스(Anselmus)를 만날 수 있다. 참으로 훌륭한 신앙인이었다. 어쩌면 그는 신의 존재를 단 한번도 의심하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그가 자신의 이성으로 신의 존재를 논하기 시작했다. 바로 그 유명한 안셀무스의 ‘신 존재 증명’이다. 이러한 증명으로 신의 존재를 완전히 규명한 것은 아니다. 하지만 인간의 언어로 신의 존재에 대하여 논하기 시작했다. 그의 증명은 이성을 가진 이라면 누구든지 이해할 수 있다. 경우에 따라선 안셀무스의 증명이 실패했으며, 대안이 되는 새로운 증명을 제시할 수도 있다. 이렇게 두 개의 서로 다른 합리성이 서로를 마주하게 되면 논쟁이 일어나게 된다. 바로 이 때 논리학과 문법학이 필요하다. 성체성혈성사에 대한 합리화의 경우도 그렇다. 성체성혈성사에서 빵과 포도주가 과연 그리스도의 참된 몸과 피로 실체적으로 변화하였는가를 두고 논쟁한다. 그냥 믿는 것이 아니라, 인간 이성으로 어떻게 왜 그리스도의 몸이고 피인지를 궁리했다. 이 역시 서로 다른 입장들 등장한다. 너무나 자연스럽게 서로 논쟁한다. 이때다. 논리학과 문법학이 필요한 시점이다. 신앙에 대한 자신의 견해를 보다 더 합리적이고 체계적으로 조직하기 위해 논리학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에서 1000년에서 1200년 사이 중세논리학은 큰 발전을 이룬다. 이유 없는 발전이 아니다. 서로 다른 견해들, 즉 이성 대 이성의 논쟁에서 논리성은 각자 자신의 이론을 더욱 더 단단하게 만드는 수단이었다. 그렇게 중세는 논리학으로 무장한 논쟁으로 가득한 조용하지 않은 이성적 동물들의 공간이었다.


<중세>2에선 아벨라르두스를 여러번 마주하게 된다. 어쩌면 그는 1000년에서 1200년을 살아간 수많은 중세 학자들 가운데 가장 중세인다운 중세인일지 모른다. 분명 자신의 이성을 통하여 신을 향하여 치열하게 고민한 신앙인이었다. 또한 한 사람의 인간으로 자신의 삶에 충실했다. 중세 가장 유명한 사랑 이야기의 주인공이기도 하다. 엘로이즈와의 사랑이야기는 지금도 많은 이들에게 읽혀지고 있다. 가문의 반대와 사제지간의 사랑이란 점 그리고 많은 나이 차이와 비극적인 종말로 끝났다는 점은 지금 읽어도 안타깝고 슬픈 사랑이다. 과연 현실에 있었을까 생각하게 하는 그런 사랑이다. 중세인 아벨라르두스는 사랑 만큼이나 철학도 강렬했다. 누구보다 치열하게 신앙을 두고 고민했다. 그냥 받아드리지 않았다. 권위로 받아드려지던 교부들의 가르침도 그냥 수용하지 않았다. 서로 모순되는 교부들의 여러 견해들을 ‘찬’과 ‘반’으로 나누고 이 모순을 종합하기 위해 노력했다. 이러한 방법론은 이후 중세 교육에 큰 영향을 주며, 이후 등장하는 토마스 아퀴나스의 <신학대전>의 논의 구조에 영향을 준다. 누구보다 더 논리적이고 합리적이길 원했다. 정과 반의 모순을 종합함에 있어 중요한 수단은 바로 인간의 이성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그가 논리학에 집중한 것은 당연하다. 중세 대표 논쟁인 보편논쟁에서도 무시할 수 없는 결실을 낳았다. 이 과정에서 자기 스승과의 논쟁도 마다하지 않았다. 철학에 비추어 비합리적인 모습을 보인다면, 스승이라도 논박하였다. 이러한 그의 태도는 그리스도교가 아닌 다른 종교의 철학자들에 대한 태도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그리스도교도가 아닌 철학자들이라도 해도 합리적인 구조를 가지고 있다면 긍정적인 태도를 보였다. 이러한 그의 이성에 대한 신뢰는 그리스도교에 한정되어 사유한 이들에게 이단이란 공격을 받았지만, 그는 멈추지 않았다. 인간을 신뢰했다. 인간의 이성을 신뢰했다. 그 이성은 신이 선물한 가장 소중한 인간의 본성이기 때문이다. 그 소중한 본성을 무시할 수 없었다. 이런 이유에서 아벨라르두스는 신앙의 문제에서도 이성을 충분히 활용했다. 이는 시대 정신이 되어 당시 많은 학자들이 삼위일체를 비롯한 많은 신앙의 문제들을 자신들의 이성으로 고민했다. 이것을 비신앙적인 것이라 생각하지 않았다.


중세, 이성은 남성만의 전유물이 아니었다. 이제까지 많은 중세철학사는 남성 철학자 중심의 철학자였다. 아니, 그런 말을 하기도 힘들다. 아예 여성의 자리가 없었다. 서점에서 접할 수 있는 거의 대부분의 중세철학사에서 여성 철학자의 자리를 찾을 수 없다. 하지만 <중세>2는 여성 철학자를 놓치지 않았다. 아벨라르두스의 연인이며 스스로도 독자적인 사상가인 엘로이즈를 비롯하여 빙엔의 힐데가르트 그리고 마르게리트의 포레트와 피장의 크리티안 등 많은 중세 여성 철학자들이 자신들의 이성으로 자신들의 철학을 일구었다. 그녀들 중 누군가는 성녀가 되고 누군가는 화형이란 비극적 상황에 빠지게 되었지만, 물러섬 없이 그 시대의 시대적 고민 앞에서 고민하고 고민했다. 그 고민들은 그녀들의 철학이 되었다. 특히 <중세>2는 빙엔의 힐데가르트의 음악에서 철학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성과를 소개하고 있다.


인간 이성은 그리스도교뿐 아니라, 이슬람교 역시 예외가 아니다. 그리스도교도뿐 아니라, 이슬람교 역시 중세의 인간이기는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이슬람의 철학과 의학 그리고 자연학의 발전은 실로 대단했다. 의학의 영역에서 이븐 시나의 <의학 정전>과 아부 알 카심 알 자라위의 외과 수술 교본 등은 유럽 의학계에 큰 영향을 준다. 이러한 영향은 철학에서도 마찬가지다. 중세 무슬림 철학자들의 결실은 라틴어로 번역되며 유럽에 소개되었다. 이는 중세 철학에 큰 영향을 준다. 토마스 아퀴나스, 둔스 스코투스와 같은 유럽의 중세 철학자들은 하나같이 중세 무슬림 철학자의 영향을 받는다. 유럽을 떠나 오랜 시간 근동 지방에서 번역 연구되던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이 중세 무슬림 철학자의 영향력을 배경으로 서유럽으로 다시 돌아온다. 예수의 존재조차 몰라던 철학자이지만 수많은 중세 철학자들에게 철학자의 모범으로 있던 아리스토렐레스의 모든 저작이 라틴어로 번역되었다. <중세>2는 이 장면은 소개한다. 이렇게 유입된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은 유럽의 수많은 중세 철학자들에게 있어 학문적 사유의 이성적 도구가 된다. 이는 근대에 이르기까지 계속된다.


<중세>2의 중세는 결코 조용하지 않은 인간의 이야기들도 가득하다. 연인의 사랑으로 가득했고, 그 사랑을 담은 노래로 가득했다. 교실에선 아벨라르두스와 같은 스승에게 배우는 학생들의 열정이 가득했고, 서로 입장이 다른 학자들 사이에선 논쟁의 소리로 가독했다. 번역가들의 번역에 대한 열정과 그 번역을 가지고 연구하는 이의 열정으로 가득했다. 시장과 들판엔 상인과 농부의 열심히 가득했다. 조용하고 무엇인가 말할 수 없는 엄숙함으로 왠지 우리 인간에게 익숙하지 않을 것이라 생각하는 중세, <중세>2는 그러한 중세가 아닌 현실적인 참 중세, 다양한 인간들의 열심히 가득한 조용하지 않은 중세를 우리에게 보여준다.


유대칠 오캄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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