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픽 500 - 디자이너가 꼭 알아야 할
파이돈 편집부 지음, 김지현 옮김 / 시공아트 / 201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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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감은 어떻게 찾아올까?

『디자이너가 꼭 알아야 할 그래픽 500』 추천의 글

_디자인 칼럼니스트 김신



『디자이너가 꼭 알아야 할 그래픽 500』에 실린 가장 오래된 작품은 1377년에 제작된 고려의 『불조직지심체요절』이다. 세계 최초로 금속 활자로 인쇄된, 즉 대량 생산 기술이 적용된 첫 번째 작품이라는 상징성을 높이 산 듯하다. 물론 그전에도 일종의 대량 생산 기술인 목판화는 있었지만, 진정한 의미의 인쇄술은 가동 활자를 이용한 것을 기준으로 삼은 것 같다.



움직이는 금속 활자로 본격화된 그래픽 디자인은 20세기에 비약적으로 발전해 더 이상 금속 활자를 쓰지 않는 사진 식자 기술이 나왔고, 또 곧이어 컴퓨터가 출현해 디지털의 가상 세계에서 모든 것을 디자인하는 오늘에 이르고 있다. 그렇게 기술이 발전하는 가운데 반드시 언급되는 주요 작품들이 등장했다. 예를 들어, 인쇄술의 요람기라 불리는 인큐나불라 시기에 로만체가 태어났고, 16세기에는 지도를 그리는 메르카토르 도법이, 18세기에는 복잡한 정보를 그래픽적으로 한눈에 볼 수 있게 한 인포그래픽이 등장했다. 또 시대마다 새로운 양식이 탄생했고, 그 양식을 대표하는, 이른바 ‘레전드 급’ 작품들이 시대의 아이콘처럼 빛을 발했다. 이런 작품들은 그래픽 디자인 역사를 다룬 책에서 빈번하게 봐왔고, 잡지에서도 심심치 않게 등장한다. 옛날 노래라고 하더라도 당대를 대표하는 명곡들은 지속적으로 미디어를 통해 흘러나오듯이 위대한 그래픽 디자인 역시 다양한 통로로 우리 눈에 노출된다. 


그렇게 빈번하게 노출된 이미지들은 머릿속에 각인된다. 어떤 특정한 형태, 특정한 색채, 특정한 색채와 서체가 적용된 알파벳, 특정한 구성 등은 하나의 특정한 패턴 이미지가 되어 영구적으로 머리에 새겨진다. 그래서 우리는 처음 보는 이미지에서도 처음 보는 것이 아니라 어디서 본 듯한 인상을 받는다. 그것은 내가 과거에 했던 강렬한, 또는 지속적인 시각 체험으로부터 새겨진 바로 그 패턴화된 이미지와 지금 본 이미지가 겹쳐지는 현상이다. 지금 내가 본 이미지가 과거에 보았던 비슷한 패턴을 불러내는 것이다. 이것은 연상이다. 연상은 어떤 대상에서 전혀 다른 대상으로 뛰어넘는 것이다. 하지만 무작위로 뛰어넘는 것이 아니라 비슷한 속성을 가진 것으로 뛰어넘게 되어 있다. 이는 인간만이 가진 고유한 능력으로 바로 창조적 능력의 가장 중요한 부분이다. 작가는 이런 능력을 갖고 직유와 은유, 환유 같은 비유법을 만들어 내고, 그것을 읽는 독자는 놀랍게도 그 작가의 비유에서 큰 공감을 얻는다. 과학자들 역시 이런 연상 능력에서 출발해 과학 법칙을 만들기도 한다.


이 책은 바로 이런 연상으로 편집된 책이다. 그래픽 디자인의 역사를 순차적으로 나열한 것이 아니라 연상으로 구성하여, 태어난 시대 차이가 수백 년이 된 두 작품이 연결되기도 한다. 어떤 경우는 스타일로, 어떤 경우는 색채 구성으로, 어떤 경우는 포스터 속 인물의 자세로, 어떤 경우는 비슷한 것이 전혀 없지만 같은 서체를 썼다는 이유만으로 두 개의 작품이 병치된다. 도대체 어떤 속성으로 두 작품이 연결되었는지 모를 병치도 가끔 보인다. 그것은 겉으로 드러난 형식이 아니라 내용 속에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이런 연상에 의한 병치는 곧 ‘영감’이기도 하다. 영감을 받는다는 것은 맨땅에 헤딩하는 것도 아니고, 무엇을 모방하는 것도 아니다. 특정 문제의 해결에 이르는 단서를 다른 이미지로부터 찾아내는 것이다. 머릿속이 온통 어떤 문제를 해결하려는 치열한 생각으로 가득할 때에만 영감이 찾아온다. 그 영감은 하늘에서 뚝 떨어지는 것이 아니라 어떤 이미지를 봤을 때, 문제를 해결하려는 강렬한 욕망이 그 이미지에서 해결의 실마리를 발견하는 것이다. ‘바로 이런 방식으로 하면 되겠구나!’ 단지 스타일을 베끼거나 변형하는 것이 아니라 접근 방법에 눈을 뜨는 것이다. 어쨌든 그것을 봐야 한다. 그 시각 체험으로부터 연상이 일어나고 연상으로부터 영감이 터져 나오는 것이다. 이 책을 보는 재미는 바로 그런 연상의 즐거움을 누리는 것이다.




시공아트가 디자이너에게 권하는 책

『디자이너가 꼭 알아야 할 그래픽 500』 

당신의 영감을 채워 줄 500개의 그래픽 디자인


세계적인 아트 북 출판사 파이돈Phaidon이 직접 엄선한 500개의 그래픽 작품을 담은 책. 시간과 공간에 구애받지 않고 유사한 아이디어를 공유하는 작품들을 감상한 후에 연대순으로 다시 한 번 각 디자인 작품의 내용을 정리할 수 있어 그래픽 디자인을 이해하기 위한 완벽한 책이다.


아무 페이지나 펼쳐 보아도 상관없다. 눈에 보이는 그대로 받아들이며 즐기면 그만이다. 여기에서 한 걸음만 더 나아간다면, 각 작품이 어떠한 배경으로 만들어졌는지 궁금할 수 있다. 그 궁금증은 책의 후반부에서 해결된다. 500개의 작품을 시간순으로 배열하여 각각의 작품에 대해 설명하고 있어 이 부분만으로도 한 권의 디자인 입문서로 충분하다. 더불어 한국어판에는 특별히 디자인 칼럼니스트 김신의 ‘추천의 글’과 ‘간략한 그래픽 디자인의 역사’가 들어 있어 원서의 부족했던 부분을 채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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